카페인 안받는 몸뚱이 그래도 두잔

커피 수혈 많이 할 수 없는 1인

by 글로다짓기 최주선


100일 글쓰기 챌린지 중이다.

블로그에 쓰면서 가끔 브런치에 기록하고 싶은 글은 이리로 가지고 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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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커피를 그렇게 좋아하는 편이 아니었다.

커피를 처음 마셨던 게 언제였는지 기억은 나지 않지만, 커피를 마실 수 있는 나이가 되면 어른이 되었다는 생각에 무척 뿌듯했던 것 같다.어렸을 때 어린이는 커피 마시면 머리 나빠진다고, 키 안 큰다고 했던 협박이 키가 작았던 나에게는 제대로 먹혔다.게다가 피부도 까매진다고 했던 말도 들었던 터라 먹으면 큰 일나는 줄 알았었나 보다. 엄마가 마시는 커피를 몰래 홀짝 마셔 본 경험 외에 아무 눈치 보지 않고 커피를 마실 수 있는 나이가 되었을 때는 카페에 가서 커피 한잔 시켜 놓고 허세 부린 적도 있었다. 아마도 대학생이 되고 아니었을까,


대학생이 되었을 무렵 내가 살던 강북구와 내 나와바리 성북구 지대는 거의 한 블록 건너에 카페가 있을 정도로 많이 들어섰다. 스타벅스, 커피 빈, 엔제리너스, 민들레 영토, 파스쿠찌 등 지금 기억해 보려니 당시 있었는데 기억이 안 나는 브랜드가 좀 있다. 특별히 그 당시 민들레 영토는 핸섬하고 예쁜 청년 직원들이 있어서 자주 갔었고, 한 때는 나고 민들레 영토에서 일해보는 게 소원이었던 시절이다. 그리고, 스타벅스와 커피 빈은 젊음의 상징, 청년의 수다 떠는 장소로 아주 적합했다. 그땐 커피 맛을 모르고 달달 맛에 먹었던터라 한약 같은 블랙커피, 아메리카노 말고 주로 카라멜 마끼아또, 카페라테, 카라멜 프라프치노를 즐겼다. 당시 하루에 커피 한 잔을 못 마시면 손발이 떨리고 기운이 없다고 한 친구가 있었다.이해가 안 가는 멘트였는데, 솔직히 지금도 그 말에 동의할 정도의 공감은 못한다.고로, 나는 커피가 좋아서 마신 게 아니라 분위기로 마셨고, 친구들이 마시니까 마셨고, 죽치고 있을 장소 사용료로 커피값을 지불하곤 했다.



20대 중반 몸이 좋지 않아 한약을 몇 차례 먹었다. 한약 먹을 때마다 카페인 금지령이 내렸다.주기적으로 커피를 끊어야 하는 상황이 생기자 커피를 멀리하게 됐다. (하지 말라면 안 하는 편) 그렇게 시간이 길어진 후에 한 번씩 커피를 마셔야 하는 상황이 생기면 그날 저녁에는 잠이 안 왔다. 그전에는 커피를 마셔도 잠이 안 온 적이 없었는데, 카페인에 대해 민감해졌다는 걸 알 수 있었다.

결혼 후, 남편이 커피를 애호가라는 사실을 알게 됐다. 남편은 커피도 꼭 에스프레소로 먼저 먹어보고 이집 커피는 어떻네, 저 집 커피는 어떻게 평가를 했다. 그러곤 맛있는 커피를 만났을 땐 환호를 할 정도였다. 주변에 커피 좋아하는 사람과 함께 골목 곳곳에 숨은 커피집을 찾아다닐 정도였으니 말이다.그 덕에 이게 탄 맛인지 신맛인지 구분도 잘 못했던 나는 한 번씩 맛 보라며 들이미는 통에 맛을 좀 구별하게 되었다.

고급 진 커피, 잘 로스팅 된 커피를 마시면 확실히 달랐다.음료를 별로 좋아하지 않는 나는 물도 많이 안 마셨다. 물이 안 먹힌다며 물 대신 온갖 종류의 차를 맛보기 시작했다.커피와 차가 놓여 있으면 무조건 차를 선택했다.tall 사이즈 커피를 사도 항상 남았다. 그래서 남편 커피를 한 입 두 입 뺏어 먹곤 했다. 그러던 내가 이제 1잔 가득 다 마실 수 있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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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년 한창 <삼남매와 남아공 서바이벌>에세이집을 쓸 때 꼭 커피가 그렇게 당겼다.굳이 먹지 않아도 되는 커피를 한 잔씩 옅게 타서 노트북 옆에 놓고 글 쓰다 막히면 한 입씩 홀짝거렸다. 때론 다 식어빠진 커피 버리기가 아까워서 두고두고 반나절 동안 마신 날도 있었다. 신기하게도 사람을 만나 이야기하면서 먹는 커피는 30분이면 사라졌다.

사람을 만나서 먹는 커피는 더 맛있어서일까?

여하튼,

어떤 커피든 어느 매장의 커피든 밖에서 커피를 한 잔씩 먹고 들어오는 날 밤이면 12시가 넘어서까지 눈이 말똥거렸다.가만히 누워 잠이 안 오는 날은 '내가 낮에 커피를 마셨구나' 하고 알 정도다.지금도 그렇다.

그 탓에 가능하면 Decaf coffee를 주로 먹는다.집에도 가루 커피로 디카페인 커피를 사다 놓았다.한 스푼에 머그 한잔 가득 물 채우면 오케이다. 밖에서 일보다 시간을 때울 곳을 찾을 때는 스타벅스나 다른 카페를 찾는다. 일반 음식점을 팁을 줘야 해서 웬만해서 잘 안 들어가게 된다. 둘이 가서 커피 2잔 시켜 먹으면 팁까지 해서 3잔 먹은 가격이 나오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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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아니 어제 낮에 MAll에 가서 볼일을 보고 있을 무렵, 남편이 어지럽다며 휘청거렸다.


"여기 잠깐 앉아서 쉴까?"

"아니 괜찮아. 이제 괜찮아졌어"


남아공은 지대가 높은 탓인지 가끔 이유 없이 하늘이 빙 돌기도 하고 현기증이 난다.더운 여름에는 운전하다가 그런 현기증을 느낄 때도 있는데 정말 아찔하다.



"당신, 당을 충전해야 될 거 같아."

"고뤠? 그럼 커피 한잔 달달한 걸로 마실까?"

아까 앉아서 쉬랄 때는 괜찮다더니 당 충전하라고 하니까 반색이다.그래서 스타벅스에 가서 남편은 잘 먹지도 않던 캐러멜마키아토를 시켰고,내가 시킨 자바칩 프라푸치노는 하필 이날 프라푸치노를 만들 수 없대서 카푸치노로 변경했다.역시 다른 커피를 2잔 시키면 맛은 봐야 된다.남편이 주문한 캐러멜 마키아토는 최근 몇 년 간에는 먹어 본 적이 없다.이날 오랜만에 먹어 그런가 엄청 달았는데 너무 맛있었다. 이날 카푸치노 한 잔을 2시간에 걸쳐서 먹었고, 반나절이 지나 남편이 남긴 캐러멜마키아토 1/3까지 홀짝홀짝 다 마셔버렸다.


결국,

나는 어제 낮에 마신 커피 탓에 새벽 2시까지 잠을 자지 못했다.하루에 커피 3리터씩 마신다는 지인은 저녁 8시만 되면 곯아떨어진다던데 내 몸뚱이는 어떻게 된 건지,


난 니가 하나도 부럽지 않아. 커피 잘 마시는 니가 부럽겠니 커피 못 마시는 내가 부럽겠니 (장기하 버전)

쓸데없는 개그 욕심으로 글을 마쳐본다.



이참에 장기하 노래도 한번 들어보시길. ^^

https://youtu.be/5oPQtzZYVEQ