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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로다짓기 최주선 Apr 14. 2022

미싱과 손바느질 사이

기술이 있어도 사용하지 않은 미련함 




별이 교복 치마 지퍼 헤드가 떨어졌다. 어제는 교복 치마허리가 커서 꿰매 주었는데 뜯어졌다고 투덜거렸다. 오늘은 또 다른 교복 치마 지퍼 헤드가 빠졌다면서 들고 들어왔다. 지퍼 위에 지퍼 헤드를 끼워 넣을 수 있는 금속 부분이 달려 있어야 하는데 아무리 치마를 봐도 보이지가 않는다. 아마도 치마 허리춤에 같이 끼워 넣고 박음질해버린 것 같다. 누가 치마를 만들었는지 참 잘도 만들었다 싶었다. 이 상태로는 지퍼 헤드의 지퍼에 끼우는 부분을 펜치로 억지로 벌려 끼워 넣어야 하는 방법밖에는 없었다. 원래 달려있던 지퍼 헤드를 힘껏 벌리려고 구멍 사이고 뾰족한 니퍼를 끼우자 똑. 하고 부러져버렸다. 


시계를 보니 4시 30분. 

남아공은 오후 5시면 웬만한 상점뿐 아니라 마트도 문을 다 닫는다. 마음이 급해졌다. 얼른 차를 타고 부품을 사러 다녀왔다. 혹시 몰라 지퍼 헤드 하나와 아예 지퍼를 교체하게 될지 모를 상황을 대비해 지퍼가 달린 줄 하나를  집어 들고 왔다. 집에 오자마자 아까와 같은 방법으로 지퍼 헤드 사이를 벌려 지퍼 톱니에 살살 끼워 넣으려던 찰나에 두 동강 나면서 앞뒤가 분리돼버렸다. 


"아, 나 진짜 시간 없는데 이거 왜 이래. 지퍼 교체 안 하고 그냥 헤드만 갈아보려고 했더니 안 도와주네." 


쉽게 가려다 더 일이 커지게 생겼다. 이제 남은 방법은 아예 지퍼 라인을 뜯어내고 새로 박음질하는 방법뿐이었다. 저녁 할 시간은 다 되어가고 할 일은 내 앞에 쌓여있고, 교복 치마 하나는 빨았으니 내일 입고 가려면 얼른 고쳐줘야 하는데 마음이 바쁘다. 결국 뾰족한 가위로 지퍼를 뜯어내기 시작했다. 

재봉틀로 드르륵 박으면 금방 끝나겠지만, 이사하면서 창고 안쪽으로 넣어버린 재봉틀을 다시 꺼내고 싶지 않았다. 매우 귀찮은 일이다.  서랍에서 반짇고리를 꺼냈다. 바늘에 검정실을 끼우고 뜯어낸 지퍼 자리에 새 지퍼를 달기 시작했다. 반쯤 달았을 때 손 박음질한 자국을 보니 삐뚤빼뚤, 분명 똑바로 바느질했는데 왜 허리 꺾인 지렁이가 됐는지 알지 못할 일이다. 잘못된 박음질을 다시 가위로 뜯으면서 한숨을 내쉬었다. 


"아, 진짜. 이거 언제 하냐? 결국 미싱 꺼낼 것을 왜 바느질을 한다고 했을까,  아악! 귀찮아."




혼자 중얼거리며 2층에서 1층으로 내려가 창고를 열었다. 의자 가져다 놓고 꺼내면 힘들이지 않고 꺼낼 수 있는 위치에 있었다. 그것마저 귀찮고 마음이 바빠 의자 가지러 갈 시간도 없었다. 까치발로 한쪽 팔을 위로 쭉 뻗어 재봉틀 박스 모서리를 손가락으로 건드려 앞으로 빼냈다. 그리곤 다른 한쪽 팔도 같이 사용해서 재봉틀 탈출시키는 데 성공했다. 

시간이 넉넉할 때는 즐거운 마음으로 천천히 할 일인데, 마음이 급하고 시간에 쫓기니까 다 귀찮고 신경질이 가득했다. 재봉틀 꺼내 놓고 지퍼를 다는 데 걸리는 시간은 1분. 양쪽 두 줄 박고 총 정리하는 시간까지 5분 걸렸다.  



100퍼센트 완벽하지는 않지만, 새로 달은 것이 크게 티 나지 않게 원상복귀시켜놨다. 


"아... 나 지금까지 뭐한 거냐, 5분이면 끝날걸 20분을 이미 버렸어." 

혼자 또 구시렁거리면서 정리를 하고 저녁을 준비했다. 


나는 재봉 기술을 가지고 있다. 어디 가서 정식으로 배운 것은 아니지만, 강아지 옷을 만들어 선물하고 마스크를 만들어 팔 정도로 재봉틀을 사용할 줄 안다. 용이한 기술이 있지만 귀찮아서 안 쓰려고 하다가 결국 바보같이 길을 빙 돌아왔다.  바느질로 삐뚤빼뚤 오랜 시간 걸려서 한 것보다 훨씬 짧은 시간에 제법 퀄리티 높게 수정했다. 그저 일상생활의 보잘것없는 에피소드지만 오늘 겪은 일에서 기술이 있어도 사용하지 않으면 무용지물이라는 것을 피부로 느꼈다.


"우와, 역시 엄마! 엄마 고맙습니다." 

별이의 인사를 받고 나니 조금 기분이 나아졌다. 

아마 삐뚤빼뚤한 상태로 완성해서 별이에게 줬다면 내 마음이 편치 않았을 거다. 


"역시, 내가 너네 엄마는 해낼 줄 알았지." 

남편 역시 혼자 구시렁거리면서 내내 혼자 씨름할 때는 아무 말도 안 하다가 다 끝내고 나니 칭찬을 해주며 엄지를 치켜줬다. 처음부터 뚝딱 착착 잘 끝내고 엄지 받았어도 기분이 좋았겠지만, 이래저래 용쓰다가 해내고 나서 받는 엄지 인덕에 더 기분이 좋았다.


오늘 얻은 교훈, 

쉽게 가려다 2배로 돌아간다. 뭐든 쉽게 하려고 하지 말자. 그리고 귀찮은 일도 효율적이라면 기꺼이 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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