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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로다짓기 최주선 Nov 22. 2021

영혼은 사진에 안 찍히는 거  맞지?

꿈 이야기 


첫째 별이가 놀러 왔다. 분명 별이었다. 친구들과 하하호호 웃으면서 사진을 찍어 달랬다. 휴대폰을 들고 사진을 찍은 후 사진을 보려고 확인한 자리에는 아무것도 찍혀 있지 않았다. 아이들이 앉았던 의자만 덩그러니 남아 있었다. 엉엉 울었다. 다시 만날 수 없다는 생각에 소리 내서 엉엉 울었다. 

맞다. 꿈이었다.

어젯밤 꿈에 별이는 정말 하늘의 별이 되었다. 만져볼 수 있고 안아 볼 수 있던 아이가 꿈속에서는 뒤돌아서면 사라지고 없었다. 아이를 찾느라 밤새 끙끙 앓았다. 눈가엔 눈물이 입으론 흐느끼는 소리를 내면서 반 수면상태로 울고 있었다. 영화나 드라마에서 접했던 소재로 꿈을 꾸고 나니 어안이 벙벙했다. 가까운 사람이 죽는 꿈, 떠나는 꿈, 잡히지 않아서 계속 같은 자리를 맴도는 꿈은 자라면서 수없이 꿨다. 

갑자기 의문이 들었다. 실제로도 영혼을 보는 사람(?)이 있나? 점술가들은 볼까 모르겠다. 암튼, 꿈에서 깨어서 남편에게 주저리주저리 말도 안 되는 말을 하면서도 꿈에서 느꼈던 아이를 잃은 슬픔이 애잔하게 남아있었다. 반나절 동안 그 느낌이 지워지지 않았다. 


엄마가 전화를 했다. 

"별일 없재? 바퀴 조심해라." 

느닷없이 바퀴를 조심하라니 또 무슨 말인가 싶었다.  엄마는 꿈을 자주 꾼다. 불길한 꿈을 꾸면 항상 연락을 해서 뭔가를 조심하라고 말한다. 교회 권사님이 그런다고 나는 가끔 뭐라고 하지만 평생 살아오면서 꿈을 꾸고 나면 늘 무슨 일이 생긴다고 자주 말하곤 했다. 그럴 때마다 사실 나는 귓등으로 듣고 흘리곤 했다. 그래도 들었던 말이 종종 생각나 한번 더 뒤돌아보게 되는 일도 왕왕 생겼다. 


내 꿈은 거의 개꿈이다. 얼마 전에는 몇 달 전 돌아가신 외할머니가 꿈에 나왔다. 꿈을 꾸면서도 꿈인 걸 알았다. 할머니는 내가 어렸을 적 봤던 주름 하나 없고 기운 팔팔한  젊은 할머니 모습이었다. 할머니가 항상 쓰던 안경을 쓰고 기운찬 모습으로 나와 함께 걸었다. 나를 어떤 집으로 데리고 갔고 기억이 정확히 안나지만 엔딩은 '아직도 내가 네 할머니로 보이니?' 뭐 이런 얼토당토않은 꿈을 끝나버렸다. 비록 개꿈 같았지만 그동안 보고팠던 할머니가 꿈에 나왔고 천국에 가면 내 살아생전 가장 아름다웠던 모습으로 살게 될 거라고 어디선가 주워 들었던 말이 떠올랐다. 할머니 잘 계신가 보다. 그걸로 위안을 삼았다. 


꿈은 무의식의 지배를 받는다고도 하고, 자기 전에 했던 생각이나 평소에 자주 하는 생각들로 꾼다고도 많이들 말하는데 고리타분한 이론이나 학자론적인 말들은 나는 어려워서 못하겠다. 다만, 내가 무슨 생각을 하던 안 하던 자의적으로 꿔지는 건 아닌 게 확실하다. 평소에 아이들이 다치거나 갑자기 내 앞에서 사라지면 어쩌나 하는 불안이 내 안에 있다.  아이들이 아프면 의도치 않은 그런 생각에 문득 무서워지기도 한다. 그런 생각에 지배를 받는 걸까, 그저 이런 꿈을 꾸고 나면 보고 싶었던 사람, 내 사랑하는 가족과 지인들이 더 소중하게 느껴진다. 매일 하루하루를 감사한 마음으로 살아야겠다는 생각이 더 진하게 든다고나 할까, 


저녁 내내 옆에서 종알거리면서 시끄럽게 굴던 세 녀석이 모두 굿 나이트 볼 키스를 날리고 들어가서 잔다. 종알거리는 소리가 꽤나 귀찮은데 오늘은 그 소리가 좀 더 정겹게 들렸다. 하하 웃는 아이들 소리가 아이들이 커갈수록 줄어들겠지.

내일도 시끄럽겠지만, 즐길 수 있을 때 즐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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