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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로다짓기 최주선 Jun 03. 2022

남의 떡이 커 보이는 날

망할 노무 기억을 더듬어 




나는 어렸을 적부터 비교의식을 많이 갖고 자랐다. 오빠의 큰 키와 비교했고, 똑똑한 오빠 머리가 부러웠다.

친구들의 외모와 비교했다. 초등학교에 들어간 후 생긴 비교 의식은 틈만 나면 나를 괴롭혔다.  나에게 없는 것들에 집중했고, 다른 사람에게 있는 것에 주목했다. 다른 사람과 비교할수록 내게 없는 것들이 더 크게 보이기 시작했다.


지금 글을 쓰려고 보니 기억나는 친구가 한 명 있다. 초등학교 때였는데, 그 여자 친구는 키도 컸고 덩치도 있었다. 성격도 시원시원했고 이목구비마저 큼직했다. 손은 또 얼마나 큰지, 그 친구와 손바닥을 대어 보면 나는 일곱 난쟁이 중의 한 명이 된 기분이었다. 힘도 셌다. 그 당시 집에 피아노가 있으면 꽤 부자였는데, 집에 검은색 영창인지 삼익인지 모를 피아노가 있었고, 좋은 집에 살면서 피아노를 배워 무척 잘 쳤다. 나도 윗집 언니에게 피아노를 배웠었는데 나는 그 친구에 비하면 택도 없는 실력이었다. 그 친구는 학교에서 대표로 합창을 할 일이 있을 때 앞에 나가 피아노를 쳤다. 지금 생각해보면 너는 너, 나는 나, 그렇게 비교할 일도 아니었는데, 외모부터 시작해 당시 나의 성격까지 정반대였던 그 친구가 부럽다 못해 신기했던 기억이 난다. 가장 신기했던 건 그 친구는 예쁜 외모는 아니었는데 늘 자신의 외모에 자신감이 철철 넘치다 못해 흘렀다. 


또 한 친구가 기억난다.

남자 친구였는데, 그 아이 집도 꽤 잘 살았다. 그 당시 생일 파티를 패밀리 레스토랑에서 친구들을 불러서 하는 아이는 그 아이가 처음이었다. 이름도 기억난다. 재경. 성은 기억이 안 난다. 재경이네 집도 꽤 잘 사는 집이었다. 항상 깔끔한 차림에 간혹 세미 정장 차림을 하고 학교에 왔다. 다시 한번 언급하지만, 초등학교 시절이다. (당시 국민학교) 생일 파티에 초대를 받아서 간 곳은 난생처음 가 본 COCO's 였다. 친구들이 준비해 온 선물들 몇 개씩 받아 들고 엄마 아빠가 준비해 준 장소에서 주인공이 된 재경이는 행복해했다. 덕분에 나도 새로운 경험을 했고 나는 언제 그런 곳에서 생일파티를 해보나 생각했던 기억이 난다. 


벌써 30년도 더 된 기억이다. 


그 당시, 그리고 그 후로도 수많은 사람을 만나고 사건을 겪으면서 비교의식을 나를 따라다녔다. 같은 위치에 있는 것 같지만 삶의 질이 다른 사람, 같은 실력인 것 같지만 다른 배경을 가진 사람을 만났다. 우리 엄마 아빠가 학교 선생님 혹은 대학 교수님, 아니면 의사, 판검사의 직업을 가지지 않은 게 속상하기도 했다. 혹은 지금의 나의 아이들이 우리 엄마 아빠는 왜 부자가 아니지?라는 생각을 하지는 않을지 궁금할 때가 있다. 실제로 그런 대화를 종종 나누기도 한다. 결과는 늘, 우리에게 주어진 환경은 우리 노력으로 된 것이 아니다로 끝난다. 지금도 충분히 감사할 것 천지라고 말이다. 주입은 아니다. 아이들도 자유롭게 이야기하며 동의한다. 





그래도, 남의 떡이 커 보이는 건 불변의 법칙일까?


나는 나에게 없는 것들을 가졌었더라면의 상상을 종종 하기도 했다. 성인이 되고 나서도 종종 비교 선상에 놓게 된다. 누가 나더러 비교해보라고 하는 것도 아닌데 나를 자연스럽게 그 비교 선상에 올려놓곤 한다. 누가 그러라고 가르쳐 준 것도 아닌데 이런 생각은 참 스스로 잘도 형성되는 듯하다.  
스스로의 목을 옥죄며 다그치는 날도 많다. 예전에는 비교의식에 시달려 자존감이 바닥을 쳤던 적도 있었다. 요즘에도 사실 종종 그런다. 아니 오늘도 그랬다. 나보다 잘하는 사람, 똑같은 위치에서 시작한 듯한데 나보다 먼저 뛰어가는 사람을 보면 조바심이 난다. 그러나 이제는 좀 다르다. 나이를 먹어보니 그 비교 선상에 놓는 게 절대 나에게 득이 될 게 없다는 걸 알게 됐다. 단지, 그런 감정이 들 때는 좀 더 발을 구른다. 어떻게 하면 지금 놓인 이 상황에서 벗어날 수 있을지 말이다. 덕분에 나는 발전할 수 있다. 

부정적인 감정을 긍정적이고 건설적이게 바꾸는 훈련을 스스로 참 많이 해온 것 같다. 너와 나의 다름을 인정하기 시작했고, 세상 모두는 특별하다는 마음을 가졌다. 세상에 다 똑같은 사람만 있다면 얼마나 재미가 없을까? 세상 어디에도 나와 똑. 같. 은 사람은 없다. 


이런 감정 자체는 이제는 건강하다고 본다. 아무것도 하지 않은 채로 남들 사는 모습만 쳐다보면서 부러워만 하고 있다면 병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잘 살아보려고 노력하고 좀 더 나은 내가 되려고 애쓰면서 살기 때문에 성장하는 과정에서 겪어내는 통증이 아닐까. 


갑자기 떠오른 어린 시절의 친구 기억과 오늘의 질문이 만나 여기까지 데려다 놨다. 

사실 오늘 하루 엄청 바빴는데 그 와 중에도 수십 번 이 모양 저 모양으로 나를 잘랐다가 붙였다가 접었다가 펼쳤다가를 반복했다. 


남의 떡이 커 보이는 날엔 그거 뺏으려고 하지 말고 나도 큰 떡 가지면 된다.  


그냥, 빨리 먹어 치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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