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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로다짓기 최주선 Mar 10. 2023

다시는 니 머리 안 잘라줄 거야.

네가 아니라 엄마가 사춘기인가 봐. 



성질나는 날, 기분이 좋지 않은 날, 황당한 날, 어이가 없는 날. 

어렸을 때는 연중 기분 좋은 행사나 좋은 일이 있을 때 '나 오늘 일기 써야지' 라며 기록을 했던 일이 종종 떠오른다. 성인이 되고 글을 쓰기 시작한 뒤로는 좋은 일도 글감이 될 수 있지만, 기분이 사납거나 일진이 순조롭지 않은 날 키보드를 두드리고 싶어 진다. 오늘이 딱. 그날이다. 




현지에서 미용일로 부업을 한지 약 3년이 됐다.  자격증 있는 전문가는 아니지만 단기속성으로 배워서 있는 손재주, 없는 구르는 재주 다 굴려가면서 가족 및 지인들 머리를 해준다. 종종 모르는 사람도 건너 건너 소개받고 오기도 한다. 전업이 미용이 아니기에 시간 맞추기도 어렵고 새로운 두상을 만날 때면 긴장 탄다. 일단 조심스러운 마음으로 해내고 나면 뿌듯함 반, 아쉬움 반 그렇다. 매일 예약이 들어오는 건 아니지만 잊을만하면 들어오거나 잠잠하다가 한꺼번에 몰리는 때도 있다. 그럴 땐 가능한 만큼만 한다. 내 주업은 다른 일이기 때문이다. 

암튼 오늘은 오전에 지인 C컬 파마와 샤기컷으로 층을 잔뜩 내어 잘라 예쁜 머리를 완성했다. 결과는 대만족이랬다. 아니래도 상관없다. 내가 보기에도 만족스러웠다. 이번에 한국에서 올 때 바리바리 싸 온 짐에 파마약 딱 4개를 들고 왔다. 벌써 3개를 썼다. 이제 1개 남았는데 아껴두려고 한다. 그리고 오늘 나는 이제 그만해야겠다고 생각했다. 이번주에는 벌써 예약이 2명씩 5개가 들어왔는데 오늘 오전에 한 명 오후에 3명을 커트하곤  사이사이 집안일이며 이런 저런 일 하다 진이 다 빠졌다. 밥 하고 반찬 만들고 상치운 후 내일 아침 먹을 국하고 밥 다시 안쳐놓고 설거지까지 다 하고 방으로 오니 개켜야 할 빨래가 산더미다. 거기다 코칭도 해야 하고, 매일 하고 있는 챌린지와 영어 훈련도 쉴 수가 없다.

 

"아니, 이게 안 보여? 왜 다들 빨래가 쌓여 있는 걸 보고 그냥 지나다녀? 눈이 없나들 왜 안 보이는 거야? 나만 보여?" 


이해가 되질 않아 앉아서 빨래를 개키며 구시렁거렸다. 


"그러니까 그만하라고." 


말리는 시누이가 더 밉다고, 적당히 거절도 하라며 남편이 방 안에서 소리 냈다. 

너 들으라고 한 소리야! 내가 지금 애들 보고 한 소리가 아니고, 너 들으라고 한 말이라고! 

내 이너보이스가 외치고 있었다. 거절을 잘 못하는 내게 필요한 조언이다. 그러나 타이밍이 틀렸다. 빨래 개키는 거나 도와주면서 말하던가. 

다시 이야기로 돌아와 거절보다도 앞으로의 스케줄에는 다른 사람 시간에 맞춰 움직일 수 없을 일이 기다리고 있어서이기도 하다. 그러니까, 할 일이 지금보다 더 많아진다.  

 

애니웨이. 

오늘 오후에 별이와 1살 차이 나는 6학년 여자 아이 머리를 잘라줬고, 바로 이어 5학년 딸, 별이의 머리도 잘라줬다. 아는 언니인데 마침 둘 다 머리 자를 시기가 되어 타이밍이 맞았다. 머리가 너무 길면 끝이 엉켜서 아침에 머리를 묶어 줄 때마다 여간 성가신 게 아니다. 잔소리 끝에 별이는 머리를 잘라달라고 요청했고 그게 오늘이었다. 먼저 S의 머리를 약 10센트 그러니까, 등 허리에 중간을 넘어선 치렁하고 숱 많은 머리를 브래이지어 선보다 살짝 윗선에 맞추어 잘라주었다. 

"어? 단발..? 나는 단발 안되는데...?" 

이미 S의 엄마가 보는 자리에서 S와도 합의 하에 잘랐는데 생각보다 짧아진 기분이었나 보다. 머리가 짧아졌다며 울상을 짓기 시작했다. 솔직히 예상보다 좀 더 짧게 잘라지긴 했다. 그래 인정. 

그런데 얘가 단발이 뭔지 모르나 보다. 저렇게 긴 단발도 있나. 참나. 나도 저 때는 머리가 참 중요하다고 생각했으니 충분히 이해한다. 

"머리는 또 자라. 금방 자랄걸? 잘라줘야 또 예쁘게 자라. 얼마나 가벼워! 가볍지? 가볍도 좋네."

S의 엄마가 거들었다. 나도 옆에서 얼씨구나 금방 자란다며 추임새를 넣었다. 일단락 지어 집으로 보내고 바로 별이를 앉혔다. 

"얼마나 자를 거야?"

"3-5센티?

"그 정도 자르면 티도 안 날걸? 지금 네 머리 허리가까이야 무겁지 않아? 묶을 때도 불편하고 여기까지 잘라줄게." 

"음 그럼 거기까지만 잘라야 해요. 단발은 싫어요." 

"아까 S가 자른 만큼보다 좀 더 길게 잘라줄게. 봤잖아 괜찮지?" 

"네......" 

마지못해 하는 대답인 건지 동의하는 건지 흔쾌하지는 않은 대답이었지만 것도 짧은 길이는 아니다. 

일을 마치고 머리를 다 자른 후 입을 삐쭉거리며 머리가 짧아진 느낌이란다. 얼른 뛰어 들어가 거울을 보더니 비명이 들린다. 그 비명은 점점 통곡하는 울음소리로 바뀌었다. 

먼 거리에서 들으니 흐느끼는 소리도 들리고 엉엉거리는 소리도 들려서 설마......? 하는 마음을 방문 앞에 가니 누가 죽었을 때 나는 소리다. 대성통곡 중이다. 매우 당황스러웠다. 순간, 내가 큰 잘못을 저질러 별이에게 큰 실수를 한 거 마냥 상황이 이상해졌다. 한편으론 미안하기도 했지만 이해되질 않았다. 

그래, 지금 니 시기가 외모에 민감한 나이인 건 알겠다. 그리고 아주 미세한 차이까지 느끼며 반응하는 사춘기를 향해 가고 있다는 사실을 인정한다. 남아공에서 사는 아이들은 한국 아이들보다 사춘기 시작이 좀 더디다. 한편으론 좋고 한편으론 걱정도 된다. 그냥 무난히 지나갔으면 좋겠다고 생각하는 게 모든 부모의 마음이 아닐까,  방문을 열고 울지 말라고 다독이다가 점점 나는 목소리가 커졌다. 


"아니, 그니까 내가 아까 이 만큼 자른다고 설명했잖아. 나는 약속을 지켰고, 이건 단발도 아니야. 이렇게 긴 단발이 어딨냐? 단발이 어디까진지 몰라?" 머리는 또 자란다고 금세 자랄 거야. 그러니까 진정하고 그만 울어."


엉엉 울면서도 이제 좀 컸다고 할 말은 다 한다. 


"어. 엉엉.. 근데 묶으니까 이상해요. 예전에 잘랐던 모습이 아니에요. 엉엉.. 머리가 너무 짧아..." 


계속 무슨 말인지 정확이 알아듣지도 못하겠는 소리인데 울면서도 할 말은 다한다. 몇 번이고 같은 말만 되풀이하면서 울음을 그칠 기미를 보이지 않는다. 다시 또 달래다가 그 칠기새가 없는 별이 앞에서 결국 폭발했다. 내심 나도 오늘 하루 너무 힘들었고 나름대로 신경 쓰는 거 아니까 예쁘게 잘라준다고 자른 거다. 내가 머리를 어깨 위로 올려 자른 것도 아니고 이상하게 자르지도 않았다. 나한테 머리 한 번이라도 한 분은 또 온다. 뭐 전문가도 아닌 내가 얼마나 기술이 좋겠냐만은, 아쉬운 대로 온다 한들 정말 맘에 안 들면 또 오겠나 싶다. 근데 얘는 대성통곡을 하니 심장이 벌렁거리고 기분도 썩 좋지 않았다. 큰 죄를 지어서 애가 누가 죽은 거 마냥 대성통곡을 하니 당황스럽기 그지없었다. 


"너! 다시는 나한테 머리 잘라달라고 하지 마! 나 이제 니 머리 안 잘라 줄 거야. 내가 너랑 한 마디 상의 없이 내 맘대로 한 것도 아니고 너도 대답해 놓고 이렇게 반응하면 내가 너무 잘못한 거 같잖아. 그만하자." 




결국 대화의 끝은 나 안 해.로 끝났고 분위기는 냉랭해졌다. 

그렇게 저녁 식사 시간에도  마주 보고 앉은 식탁자리에서 서로 대화는커녕 눈길 하나도 주지 않은 채로 밥만 먹고 일어나 각자 일을 했다. 분명 나를 당황시키거나 내 탓을 하려고 시작한 울음이 아닐 거란 건 너무 잘 안다. 그러나 그 상황에서 나는 일말의 내 실수가 있었을까 싶어 의기소침해졌다. 이제 내가 딸 눈치를 봐야 할 시기가 온 건가 싶어 기분이 이상해졌다. 내 안에서 작은 자존심 뿌리가 올라오면서 금세 싹을 냈고 삽시간에 자라서 내 표정과 말투로 다 뿜어져 나왔다. 내가 그냥 다른 말 말고 칭찬만 해줬다면 별이의 기분은 금방 풀렸을까? 예쁘다. 키 커 보인다. 어떻게 해도 넌 예쁘다고 백번 천 번 말했으면 아이기분이 금방 풀렸을까? 오만 생각을 하다 끝은 내가 좋은 엄마가 못된다는 생각으로 자리 잡았다. 그러면서도 또 한편으로는 다시는 머리 잘라주나 봐라, 내일 아침 머리는 네가 묶어, 나한테 머리에 대해서는 한 마디도 하지 마.라고 속으로 계속 말하고 있었다. 




위에까지 글을 써서 브런치 서랍에 고스란히 모셔두고 오늘 다시 꺼냈다. 

여기까지 썼구나. 종종 글을 쓰다가 닫아서 서랍에 넣어둔다. 마무리가 안되거나 갑자기 손을 놓고 일어나야 할 상황이 생길 때는 거기서 멈춘다. 이 날이 그날이었다보다. 


저때의 단상은 "잔소리하지 말고 우는 아이 앞에서 내가 칭찬을 더 해줬더라면 아이는 빨리 울음 그치고 속상한 마음을 가라앉혔을까?"이다. 

그다음 날, 별이는 혼자 머리를 묶고 갔고 학교에 다녀온 후 기분이 좋아 하루 종일 실실거리며 돌아다녔다. 기분이 풀린 건지 오버 반응을 보여 내게 미안했던 건지 이유가 어쨌는 결론은 별이의 기분이 풀렸다는 사실에 나도 안도했다. 학교에서 친구들이 별이의 머리카락을 만져보고 부러워하면서 예쁘다고 칭찬했을게 뻔하다. 또 그 다음날 아침, 별이는 내게 머리빗을 내밀었다. 

"엄마, 머리 묶어주세요." 

"네가 묶어" 여태까지도 뾰롱통 했던 나는 딸보다 못한 엄마였다. 마음이 좀처럼 풀리지가 않았고 내 암에 두 가지 마음이 계속 오갔다. 

"네가 묶어! 너 잘 묶잖아." 

"제가 묶으면 자꾸 다 빠져요....." 

그 이후로 머리를 빠지지 않게 단단하게 묶어 주는 것으로 더 이상 이번 일은 입 밖으로 꺼내지 않았다. 머리에 대한 어떤 언급도 없이 지금까지 잘 묶어주고 있다. 


엄마로서 때론 참 부끄럽다. 심리학 공부도 했고 아이들과 수많은 시간을 보내면서 가르치고 생활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 아이에 대한 심리적인 갈등은 왜 내 맘대로 안 되는 걸까. 


글을 쓰기 시작했던 이유는 화가 나서였고 그렇게 글을 쓰다 보면 내 마음이 누그러질까였다. 

그러나 글을 맺으면서 나를 되돌아보고 반성하게 된다. 

이게 건강한 글쓰기의 매력이 아닐까 싶다. 


글쓰기 코치, 책 쓰기 코치로 활동을 시작하기 위해 훈련 중이다. 

매일 반복의 힘. 그리고 다른 사람에게 주기 위한 나의 혼을 담은 노력을 바탕으로 한번 뛰어보자. 

오늘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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