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 생각
은별이가 없다. 벌써 4일이 지났다.
셋째 요엘을 낳고 몸조리할 때, 별이는 폐렴으로 인해 일주일간 병원에 입원했었다. 조리원에서 데리고 온 신생아 보호를 위해 나는 병원에 하루도 아니, 단 한 시간도 갈 수 없었다. 둘째 다엘이는 외가로 피신을 했고, 남편은 별이 간호로 퇴근 후 병원에서 지켰다. 시어머니와 남편이 돌아가면서 별이를 간호했다. 또 한 번은 다엘이가 수신증과 요로감염으로 병원에 입원해서 돌볼 때 1주일간 외가에 보내던 일, 그렇게 딱 2번 말고는 4일 동안 아이들과 떨어져 지냈던 때가 없었다. 그저 신생아를 끌어안고 할 수 있는 거라곤 전화 너머로 들려오는 아이들의 상황을 듣는거였다. 엄마로서의 한계를 느끼는 시간이었다. 아빠가 있어서 얼마나 다행인가 생각했던 순간이다. (아이를 혼자 낳고 키우는 게 아님에도)
캠프기간이다. 학교에서 처음으로 캠프를 갔다. 초등 5학년이 4박 5일간의 캠프라니 참 길다. 우리 집은 딸 하나에 아들 둘, 집안에 삼 남매 소리로 늘 북적거린다. 이전에는 거실에 모여서 떠들고, 다닥다닥 붙어 떠들었는데 이제는 그런 시간이 꽤 줄었다. 하나 둘 방문을 닫고 들어가서 노는 시간이 늘었다. 초등 5, 6학년 정도 되니 친구와 폰 메시지를 주고받고, 영상 통화하고 전화하면서 일상을 공유한다. 엄마 아빠와의 시간이 보다 친구들과 함께 하는 시간이 좋은 시기가 왔고, 또 오고 있다.
자리를 비운 별이 방에 괜히 한번 들어가 보고, 이미 정리해놓은 이부자리와 책상을 한번 훑어봤다. 보고 싶고, 잘 있는지 몹시 궁금하다. 4박 5일 이라니 길어도 너무 길다. 게다가 내일은 오자마자 아마도 얼굴만 반짝 보고 차를 타고 콰이어 콘서트에 참석해야 해서 밤 10시나 되어야 만날 수 있을 듯하다. 그러니 5일 꼬박 아이를 떨어뜨려놓는 거다. 그런데 아이러니하게도 별이가 없는 데도 사실 그냥 의식하지 않을 때는 크게 빈자리를 못 느끼는 나를 발견했다.
그냥 요 며칠이 없다는 걸 알면서도 학교에서 늦게 오는 날 같다. 방에 들어가 있는 것 같다. 그러고 보니 학교 다녀와서 간식 먹고 씻고 방에 들어가 숙제하다가 저녁 먹고 잠시 이야기를 나눈 후 다시 방으로 들어가는 일상을 살아왔다. 그 이유인듯하다. 그저 함께 있지만 서로의 시간을 공유하지 못하는 비율이 점점 커지는 탓이란 생각이 들었다. 한편으론 나 되게 무디고 무심한 엄마라는 생각이 들었다.
얼마 전, 식탁 대화에서 이야기를 하다가 별이가 눈물을 흘렸다.
"너 나중에 독일로 가서 학교 다녀. 거기 고모랑 언니들 있잖아. 너는 안 가고 싶어? 엄마는 놀러 가고 싶은데."
그 말이 처음도 아니었고, 이전에도 잊을만하면 '독일에 가보고 싶다'라고 말했던 별이다. 그런데 이 날은 말이 떨어지기가 무섭게 고개를 도리질하며 얼굴이 금세 붉게 달아올랐다. 젓가락으로 밥알을 세다가 닭똥 같은 눈물을 뚝 떨어뜨렸다.
"나는 엄마 아빠랑 떨어지는 거 상상만 해도 싫어. 고모도 좋고, 언니들도 좋고 , 독일도 궁금하지만...... "
그냥 그 모습이 귀여워 웃음이 났다. 그리곤 안 가도 된다고 툭툭 어깨를 치고 이야기가 마무리 됐다. 그랬던 녀석이 학교 캠프를 4박 5일간 간다고 어찌나 흥분했던지, 전날 밤 잠도 설쳐가면서 얼마나 기대를 했는지 모른다. 가방에 보따리보따리 넣을 짐을 체크리스트를 만들어 꼼꼼히 챙겨가면서 바쁘게 움직였다. 내가 어렸을 때 그랬던 것처럼 말이다. 아주 꼬맹이였던 시절 이외에 초, 중고등학교 수련회, 교회 수련회를 자주 갔던 터라 나는 부모님과 떨어져 있는 것에 대한 두려움이나 걱정은 적었다. 그냥 엄마가 보고 싶지만 친구들과 단체 생활하고 잘 짜인 프로그램에서 몸을 섞는 게 즐거웠다. 경험이 쌓일수록 그 담 수련회는 준비물을 더 잘 준비했다. 1년에 1번 있는 수련회는 늘 기대이상이었다. 지금도 잊지 못할 추억이 가득이다.
별이는 생애 처음으로 엄마 아빠를 오랜 시간 떠나 제대로 단체 생활 경험 중이다. 다녀오면 이야기 나누겠지만 어땠을지 몹시 궁금하다. 다행히 아직 앵무새같이 자기 일을 미주알고주알 조잘거리며 이야기해주는 편이라 분명 다녀오면 이야기보따리를 풀어놓을 거다. 주말에 좀 들어봐야겠다.
그런데, 이 놈의 학교에서는 아무 연락도 없다. 출발한 날 잘 도착했다는 학교 사이트에 올라온 전체 공지가 전부였다. 무소식이 희소식이라고 아무 일 없이 잘 지내다 오리라 생각하지만, 부모 입장에서는 알턱이 없으니 몹시 궁금하다. 별이 친구 엄마에게 혹시 학교로부터 받은 연락은 있는지, 지금까지는 캠프에 가면 연락을 해줬는지 왓츠앱으로 연락을 해서 물었다. 친구 엄마말은 예전에는 연락을 해줬는데 언제부턴가 연락을 안 한다고 했다. 선생님이 떠나면서도 무소식이 희소식이니 걱정 말고 있으라고 했단다. 그 말을 듣는데 순간 욱하는 마음이 올라왔다.
"아니, 이게 말이 돼? 1박 2일도 아니고 4박 5일을 집에서 4시간이나 떨어진 곳으로 캠프를 갔는데 아무런 연락도 안 해준다고? 와... 이거 한국에서 이렇게 했으면 국민 청원감이야! "
남편에게 우스갯소리인 양 볼멘소리를 했지만 진짜 그런 마음이 들었다. 궁금한데 어디다 연락을 해야 하는지 알림도 없었다. 그러다, 나 어렸을 때 수련회 갔을 때는 학교 측에서 부모님한테 연락을 안 했던 것도 같고, 내가 너무 오버했구나 싶은 생각도 들었다. 학교에 따진 건 아니니까 그냥 그렇게 접어 두기로 했다. 그렇지만, 외국에서 처음 보낸 캠프가 어딘지 좀 불안해서 자꾸 궁금해지기는 한다.
부모로서 아이를 놓아주어야 할 시기가 올 거다. 아이가 스스로 선택하고, 결정하고, 실행할 시기가 멀지 않았다. 물론 지금도 나는 음식, 옷, 신발, 학용품, 장난감 그리고 모든 개인이 선택해야 하는 영역에서는 아이들의 선택을 존중한다. 그러나 앞으로는 이런 자잘한 것들 말고 진로와 인생에 대해서 나의 관여는 그저 참고 사항 밖에 안 되는 시간이 올게 분명하다. 아이를 키워보니, 아이가 부모를 놓지 못하는 게 아니라 정작 부모가 자녀의 손을 못하는 순간이 숱하게 많다. 아이의 빈자리를 보면서 여러 가지 생각이 드는 밤이다. 내일 돌아오면 좀 따뜻하게 안아줘야겠다.
무소식이 희소식이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