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등 6학년이 싸주는 도시락
우리 집은 2층 집이다. 집이 2층에 있는 게 아니고 1층, 2층 듀플렉스 구조다.
잘 살아서 2층집이 아니고, 이곳 집들 구조가 심플렉스와 듀플레스 두 가지고 구조로 되어있는다.
아침에 눈이 일찍 떠졌다. 누운 상태로 책 몇 장을 읽고 주일 예배 갈 채비를 했다. 아래에서 달그락거리는 소리가 들린다. 별이가 주방에 있나 보다. 시간을 보니 8시, 배고파서 뭔가 하나보다 했다. 얼른 내려가서 뭐 하나 보니 빈 프라이팬의 옆면에 스크램블 에그 흔적이 있다.
"배고파서? 벌써 뭐 해 먹었니?"
별이는 13세다. 2년 전부터 전기스토브 사용을 허락했고, 요리도 제법, 베이킹도 제법 한다. 케이크 제누와즈 시트도 뚝딱 만들어내고 오트밀 쿠키도 잘 만든다. 그 외의 다른 초콜릿이 들어간 디저트 만들기도 좋아한다.
요즘엔 시간이 없어서 잘 못하지만 나중에 카페 사장이 되고 싶고 파티시에가 되고 싶은 꿈이 있다. 지금 성장 중이라 꿈도 변하는데 생각이 많은지 나중에 하고 싶은 일을 진진하게 생각하나 보다.
"다 먹은 거야? 이제 치우면 돼?"
"아니, 아니요. 그게 아니고, 어......"
말을 끝까지 못 한 채 허둥지둥 주변에 흘린 스크램블 에그 조각을 휴지로 주워 담는다. 설거지거리를 정돈하고 더 말을 안 한다. 이럴 때면 속이 터진다. 왜 끝까지 말을 안 하는지 궁금해서 다시 묻는다.
"그래서 밥 다 먹은 거야? 참치? 양파? 참치마요 덮밥 해먹었어?"
"아니, 그게 아니고, 어, 그러니까. 그게."
그러더니 뭔가 후다닥 정리를 하곤 화장실로 들어간다. 말 끝도 안 맺고 밥을 먹었다는 건지 안 먹었다는 건지 대체 알 수 없는 표정으로 축지법을 쓰듯 사라져 버렸다. 이내 다시 나온 별이에게 또 물어봤다.
"너 밥 먹은 거야? 안 먹어도 돼? 너만 먹었어? 다엘이 유엘이는?"
또 물으니 이제 대답한다.
그게 아니고, 엄마 아빠 도시락 쌌어요.
엄마 아빠 맨날 주일날 교회 갔다 올 때
점심도 못 먹고 집에 오기 전에 밖에서 패스트푸드 사서 오잖아요.
집밥도 못 먹고, 그러니까.
깜짝 놀랐다. 이 녀석, 속이 참 깊다. 평소에도 알고는 있었지만 오늘 감동했다. 그 순간 나는 폴짝 뛰며 호들갑스럽게 감동받은 티를 냈어야 했는데, 이미 몇 번이나 물어봤는데 대답을 똑바로 안 해서 답답한 상태였다. 호들갑스럽게 놀라기에는 나도 내 감정을 살짝 누르고 있었다.
그제 밤, 저녁을 먹은 게 잘 못 됐는지 속이 안 좋다고 밤새 낑낑거렸다. 전기가 나가 캄캄한 새벽 2시경 화장실 변기 바닥, 벽까지 토사물로 초토화시킬 정도로 컨디션이 좋지 않은 상태였다. 어제부터 조금 나아진 듯하더니 아직도 완전히 개운치 않은 모양이다. 화장실로 또다시 금세 사라진 덕분에 사실 호들갑 떨 겨를이 없다. 교회 갈 준비 한다고 옷 갈아입으러 올라간 사이 아침 준비를 하며 도시락통을 열어봤다.
손 편지다. 녀석 쪽지까지 써서 도시락 통에 넣었다. 내가 별이 도시락통에 아주 가끔만 넣어줬던 쪽지처럼.
쪽지에 적힌 별이 글씨를 보며 여러 감정이 교차했다. 아침에 일어나서 마치 매 주일 도시락을 싸겠다는 다짐이 담긴 쪽지를 보니 별이 마음이 가득 느껴졌다.
교회에 갈때는 아이 셋은 한인 교회로 가고 나와 남편은 흑인마을로 간다. 아이들을 미리 교회로 데려다주고 가야한다. 하필 시간이 늦어서 남편한테 애들 먼저 내려주고 다시 집으로 오라고 했다. 그 김에 별이도 후다닥 나갔다. 기회를 놓칠까 싶어 큰 소리로 말했다.
“고마워 딸, 엄마 아빠 잘 먹을게. 근데 숟가락이 없더라.”
“아! 숟가락!!!”
밀고 빨리 나가야해서 급히 나갔지만 방긋 미소를 보이며 나갔다.
엄마로서 아이를 키우면서 많은 걸 느낀다. 때로는 아이가 나보다 낫다고 느낄 때도 많다.
나는 살가운 엄마는 아니다. 살가운 딸도 아니다. 그러고 보니 살가운 아내도 아니구나. 필요할 때는 없던 애교까지 다 끌어올려 남편에게는 대하지만, 부모님과 아이들에게는 잘 안 나온다. 내리사랑이라고 아이가 셋이다 보니 막내에게는 애정 표현이 자연스러운데, 첫째, 둘째 아이에게는 그게 잘 안될 때가 많다. 그저 내 방식대로 사랑을 표현하기는 하지만 어쩌면 아이들이 느끼기에는 턱 없이 부족하지 않을까 생각도 된다.
도시락을 열었다. 꼭 자기 같이도 쌌다.
그러고 보니 어제 별이가 나에게 물어봤던 게 기억났다.
"엄마, 유부는 어떻게 써요? 그냥 유부에 있는 물기 꽉 짜내고 안 씻어도 되는 거예요? "
대답만 해준 채 얘가 뭘 하려는지 깊게 관심 갖지 않았다. 이유 없는 질문이 없겠지만 이유 있는 질문이었구나를 뒤늦게 알았다.
아침에 나가서 집에 돌아오는 오후 4시경, 차 안에서 도시락을 먹었다.
남편과 둘이 별이 이야기를 나눴다. 부모로서 아이들에게 어떻게 해야 하는지 종종 대화를 나눈다.
우리 아이들은 행복할까?
집에 돌아와서 인사도 잊지 않았다.
“별아, 네 덕에 엄마빠 오는 길에 도시락 다 먹었어. 어우 배불러.”
아이와 독후활동을 한다. 책을 읽고 내가 적어준 독후 양식에 맞춰서 후기를 써온다.
그럼 나는 몇 가지 질문을 한다.
오늘은 < 오헨리의 단편 소설 크리스마스 선물>이었다.
책을 다 읽고 내가 던진 질문은 '사랑이 뭘까? 사랑하는 방식은 다 같을까? 너의 사랑 방식은?' 이였다.
별이는 대답했다.
그리고 별이의 사랑 방식은 행동이었다.
오늘 싸주었던 도시락 싸주기처럼.
"사랑해요"라고 말하지 않으면 모를 수 있다.
때론 말하지 않아도 느껴지는 게 사랑이다.
별이는 도시락으로 말한 거다.
"엄마 아빠 사랑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