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사를 그만둔 지 2개월, 백수가 된 지 두 달이 지났다.
한 달이 지나는 동안은 하는 일 없이 시간은 바쁘게 흘러갔다.
놀면서 지나간 두 달은 게으름의 시간이었고 혼자만의 시간이었다.
어느 날 '무작정 놀아도 되나?' 하는 생각이 문득 뇌리를 스쳤다.
갑자기 많아진 시간에 뭐라도 해야 할 것 같은 불안함, 무의식 속의 자각이었다.
빈둥거리는 한가함이 좋다가도 바쁘게 살아야 된다는 강박에 문득문득 떠오르는 불안함은 어쩔 수 없는 본능일런지도 모를 일이다.
직장인으로 보냈던 시간들은 바쁘고 빠르게 지나갔다.
바쁜 업무 속에서 하루는 정신없이 지났다. 하루를 어떻게 보내었는지 모른 채 일주일도 순간처럼 지났고
그런 시간들 속에서 한 달 또한 쉬 바뀌어 버렸다.
쳇바퀴 돌듯 빠르게 지나간 시간들은 기억되지 못한 기억의 부재가 되었다.
시간은 각자의 나이만큼의 km로 간다는 말처럼 기억도 못할 만큼 빠른 속도로 지나간 날들은 한 달이 되었고 일 년이 되었으며 그렇게 세월이 되어 10년이라는 직장생활이 되었다.
되돌아보니 순간이고 찰나 와도 같은 시간들이다.
추억도 없는 기억 속에서 나는 또 무얼 바라 그렇게 아등바등했던가?
바쁘게 보낸 시간만큼 빠르게 지나던 시간 속에서 무얼 하고 있었던 걸까?
무엇 때문에 그리 열심히 살았는지 모를 일이다.
그때의 나는 왜 그렇게 FM 이였을까? 과거의 그 시간 속에서 그때의 나를 만난다면
'걱정하지 않아도 시간이 다 해결해 주는 일들이니 너무 조바심 내며 잘하려고 하지 않아도 충분히 넌 잘하고 있으니 너무 애쓰지 않아도 된다'라고 말해주고 싶다.
지나고 나니 다 부질없음에 혼자 헛웃음 짓게 되는 덧없음인 것을...
백수가 되면 빈둥거림과 귀차니즘이 심해지는 걸까?
요즘 난 아무것도 하고 있지 않지만 그 무엇도 하고 싶지 않아 본능이 나를 다잡고 있다.
추워진 날씨에 아침 운동가던 공원을 이젠 오후에 공원으로 산책을 간다.
조용한 공원을 한가롭게 산책하노라면 오후의 햇살이 더없이 따스하다.
꽃들은 시들어 고유의 채색을 잃어버렸고 나무의 잎들이 다 내려앉으면 곧 하얀 눈이 올 것이다.
계절도 시간만큼 천천히 갔으면 좋으련만 하루하루가 다르게 공원은 모습을 달리한다.
일을 그만두고 아침운동으로 가기 시작한 10월의 공원은 짙은 가을이었다.
12월이 다가오는 11월 공원은 가을색이 사라진 겨울 초입이다.
두 달 사이 완연히 변한 모습이다.
공원의 모습은 빠르게 달라졌지만 나의 시간만큼은 더디게 간다.
혼자만의 시간은 더디게 가고 더디게 가는 이 시간이 난 참 좋다.
지금의 하루는 느긋하고 스트레스가 없는 고즈넉하고 정적인 하루이다.
아직 월요일이고 토요일은 한참이나 멀리 있듯 하여 더디 가는 시간이 여유롭다.
하지만 양날의 검이라고 했던가?
아무것도 하지 않고 있는 이 게으름은 바쁘게 지냈던 시간만큼이나 문득문득 스치는 불안함은 어쩔 수 없나 보다. 그러나 어찌하랴, 조용하고 혼자만의 평온한 시간들이 좋은 것을...
넘치면 나쁘다 하지 않던가!
더디게 가는 시간의 편안암과 그 익숙함이 한편으로 치우침의 결과를 만드는 것 같아 걱정되기도 하지만
'즐길 수 있을 때 즐겨라'라는 말처럼 더디게 가는 시간 속에서 지금은 조금 더 즐겨도 나쁘지 않을 것 같다.
백수의 이 더딘 시간은 계획된 시간이 아니므로 해야 할 일들을 미처 준비해두진 못했다.
더디게 가는 시간이니, 하고 싶은 일들은 천천히 계획해도 좋을 것 같다.
시간의 빠르고 더딤을 좋고 나쁨으로 구분하기는 어렵다.
직장인의 바쁜 삶이 더 나은지, 백수의 더딘 시간이 더 나은지 그에 대한 판단은 못할 것 같다.
바쁘게 살면서 빠르게 지나온 그 시간들이 안타까워서 또는 더디게 가는 현재의 이 시간들이 너무 좋아서
그것에 대한 판단은 살아가는 매 순간 느끼는 감정들이 판단할 것이다.
백수의 시간과 직장인의 시간은 다르게 흐르기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