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전에 일찍 집을 비워야 일이 생기게 되어 카페를 가기로 했다.
카페 오픈시간이 오전 8시 30분이라는 것에 새삼 놀라며 키오스크로 아이스아메리카노를 주문을 하고 카페 2층으로 올라갔다. 2층엔 노트북을 뚫어져라 노려보고 있는 여학생 한 명과 그리고 나, 손님은 둘 뿐이었다.
창가에 자리를 잡고서 가지고 간 노트북을 켜고 브런치 새롭게 업로드된 글들을 읽기 시작했다.
휴대폰으로 음료 픽업하라는 알람에 커피를 가지고 와서 글을 쓰기 시작했다. 차가운 커피를 빨대로 쭉 빨아올릴 때 목으로 전해지는 그 느낌이 없어 들어 올린 커피잔엔 어느새 다 마셔버린 건지 빈 잔에는 얼음만이 남아있었다. 아이스커피를 마신 탓인지, 난방이 약한 탓인지 아니면 아직 햇살이 들지 않아 그런 것인지 몸이 서늘해졌다. 자판을 두드리던 손이 시리고 따뜻함이 그리워 벗어둔 외투를 입으며 점심을 일찍 먹자고 친구에게 전화를 했다.
뭐 하고 있냐는 나의 물음에, 요즘 촉촉한 빵에 빠진 친구는 빵집을 다녀오는 길이라고 한다.
카페 투썸에 혼자 있다는 나의 말에 친구는 방금 거기를 지났다며 이쪽으로 온다고 했다.
통화를 마치고 도착할 시간이 될 즈음에 친구에게서 전화가 왔다.
"도착했는데, 니 어디라?" 물으며 유료주차장에 주차를 했다고 한다.
"나? 2층인데?" 하고 대답하다가 "근데 왜 유료주차장? 여기 모전인데"
"뭐?" 한숨 같은 탄식과 함께 "나는 시내인데"
저도 나도 어느 쪽 투썸이냐고 묻지도, 말하지도 않고서 친구는 시내를 지나고 있었으니 당연 시내 쪽 투썸이라 생각하였고, 나는 내가 있는 곳을 지났다고 하니 당연히 이곳이라고 생각한 탓에 이름이 같은 투썸, 장소가 다른 투썸에서 나는 기다리고, 친구는 나를 찾는 웃픈 해프닝이 생긴 것이다.
나와 친구는 중학교2학년 같은 반이 되고 앞 뒤로 앉게 되면서 지금까지 함께하고 있는 40년 지기이다.
얼굴이 예쁘서 인기가 많았고 지금도 몸이 약한 친구는 아버지가 반바지를 못 입게 했을 만큼 다리가 가늘고 외형적인 모습은 아주 가녀린 여성이지만 최강 무뚝뚝함의 소유자이다.
경상도에서 나고 자란 우리는 살갑지 않은 갱상도 특유의 무뚝뚝한 말투를 가졌다.
서울에서 태어난 조카들은 무뚝뚝한 나의 말투에 "이모, 근데 왜 우리에게 화를 내?" 하며 가끔 상처받기도 한다. 그런 무뚝뚝함의 소유자인 우리는 술을 좋아하고 수다스러운 사람을 싫어하며 취향도 같아 비슷한 시기에 오래된 가전제품을 바꾼 게 같은 제품이고 후드티를 즐겨 입는다. 전화는 거의 안 하는 편이고 매일 만나 점심을 먹다가도 만나지 않을 때는 한 달 가까이 만나지 않기도 한다.
커피를 마시자는 약속보다는 술약속을 좋아하는 친구와 나는 사는 집도 걸어서 3분 정도 지척에 산다.
질풍노도의 시기를 같이 보내고 학창 시절을 공유하고 성인이 되면서 서로의 연애에 관여도 하였다.
지금의 남편, 그 시절 남자친구와 연애할 때도 친구와 셋이 같이 만났고 나도 친구의 데이트에 함께 하였다.
내가 남자친구와 싸운 후 만나주지 않으면 남자친구는 내 친구에게 연락해 도움을 요청하곤 하였다.
그 당시 7살 많던 남자친구에게 친구는 아저씨라고 호칭하였고 지금도 남편을 여전히 아저씨라고 부른다.
내가 먼저 결혼을 하였고 나보다 늦게 결혼한 친구가 다른 지역에서 살게 되면서 우리는 멀리 떨어지게 되었다. 편지를 일주일에 한통씩은 주고받으며 그리워했고 친구가 첫 아이를 낳고 고향인 이곳으로 이사를 왔을 땐, 외로웠던 나는 천군만마를 얻은 기분이었다. 아기를 같이 키우면서 세 살 위였던 짓궂은 아들이 친구집에 놀러 가면 친구아들 장난감을 항상 빼앗는 바람에 늘 울고 하여 한동안 만나지 못하기도 하였지만, 아이들이 자라면서 여행도 같이 가고, 외동인 아들이 친구의 아들들과 형제처럼 지내는 모습이 마냥 좋기도 하였다.
아이들이 자라고 사춘기를 겪으면서 속 썩이던 그 시절 힘들어하던 서로를 위로하였고, 친구의 아이가 대학에 입학을 하고 공무원 시험에 합격하였을 때도, 결혼을 하고 또 그 아이가 아기를 낳아 친구가 할머니가 되던 모든 순간순간을 축하해하며 함께 즐거워하였다.
우린 아들만 낳아 딸이 없음을 슬퍼했기에 딸 같은 며느리를 본 친구가 못내 부럽기도 하였다.
중년을 지나 장년이 되어가는 우리는 갱년기도 시작되었다.
호르몬 저하로 갑자기 열이 올라 얼굴과 몸에 순간 땀이 흐르고 그로 인해 잠 못 이루는 불면의 밤을 안타까워하며 갱년기에 좋다는 보조식품을 먹어보기를 권하는 갱년기 동지이기도 하다.
살아오면서 즐거움도 슬픔도 아픔도 함께한 나의 친구는
10대에 만나 50대가 된 지금까지 인생을 함께 한 친구이고
어렵고 힘든 시기에 늘 곁에 있어서 위로가 되었던 친구였고
속내를 가감 없이 드러내고 하소연할 수 있는 친구이며
회사에서 힘들 때 울면서 전화하던 유일한 친구였기에
힘들 때 연락하면 언제라도 술 한잔 같이 할 수 있는 친구로
부족한 나를 늘 응원해 주며 언제나 내편인 찐친이다.
만나서 얘기하다 보면 우린 할머니도 아니고 갱년기 여성도 아닌 아직도 20대 같이 맘은 청춘이지만, 가끔은 사소한 단어들을 기억하지 못하고, 카페에서 메뉴판 보는 걸 잘하지 못하여 커피주문이 어려운 초로의 나와 친구. 삶이 계속되는 동안에도 건강하게 오래오래 함께 할 수 있는 영원한 친구 이길 바라본다.
<사진-24.01_친구와 여수여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