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람이 분다.
어쩌자고 쉼 없이 봄바람은 저리 지칠 줄도 모르고 잠잠해질 수도 없는 듯, 봄이 찾아온 내내 봄꽃이 피고 지는 동안 바람은 꽃잎들을 떨구고 사방팔방 날리우게 한다.
5월 초입에 피기 시작한 봄산기슭에 핀 아카시아꽃의 향기가 봄바람에 실려와 온천지가 아카시아향이다.
봄바람은 아카시아꽃향을 모두 모아 산아래까지 짙은 아카시아꽃향을 실려 보내온다.
하이얀 아카시아꽃송이송이들이 초록이 싱그런 봄산에 또 다른 그림을 그린다.
진달래가 지고 산벚꽃이 지고 철쭉이진 자리에 핀 아카시아꽃은 거친 봄바람을 타고 꽃향기 짙게 코끝을 간지럽피운다.
여름내음 물씬 풍기는 온풍에 아카시아꽃송이들이 일제히 작은 꽃잎을 터뜨렸나 보다.
봄바람은 모질게 아카시아나무를 흔들어 짙은 꽃향기를 실어 멀리멀리 날리 운다.
봄은 찬란한 초록의 다채로운 봄산을 만들다가 짙은 아카시아향을 끝으로 이제 곧 머잖아 봄이 가버릴 것이다고.그의 마지막을 알리는듯하다.
아카시아꽃이 질 때쯤 시작되는 여름과 함께 짧디 짧은 봄은 지나가리라.
파릇파릇 물오르던 봄산은 녹음이 짙푸르게 되고 봄은 빨리 찾아온 여름에게 곧 잊힐 것이다.
서늘한 봄의 기운도 저리 불어대는 봄바람에 지쳐 더운 여름 기운을 몰아오고 꽃이 진 산은 녹음으로 짙푸르게 바뀔 것이다.
계절이 변하고 쉼 없이 바뀌는 동안에 그 속에서 우리도 모습이 바뀌어 간다.
아이에서 청년이 되었다가 또다시 중년이 되고 나이를 먹어 장년이 되면 그 나이가 때론 살아가는데 걸림돌이 되고 제약이 되기도 하다.
경험치가 많은 나이가 아니라 핸디캡이 되는 나이가 되는 것이다,
초록이 물오르던 봄산이 녹음이 푸르게 짙은 여름산이 되고 뒤이어 찾아와 아름답게 물드는 가을의 산처럼 나이도 그렇게 변회 되어간다. 계절이 바뀌는 산처럼 우리도 겉모습이 바뀌어 나이가 들어 익어가는 과정인데 허나, 지금의 내 나이는 이젠 서글픈 나이가 되어버렸다.
살아오면서 처음으로 나이가 발목을 잡는 일을 겪게 되면서 최근에 나이 듦에 깊은 좌절을 맛보아야만 했다.
짧았던 봄처럼 아름다웠던 나의 봄은 계절이 바뀌는 그 시간 속에서 언제 지나온 것일까?
봄이 지나 녹음이 짙푸른 나의 여름은 또 어떻게 지나온 것일까?
치열하게 살아온 여름을 보내고 이제는 아름답게 물 들어가는 가을처럼 그런 아름다운 나이가 되었음인데 현실은 그렇지가 못함이 아픔이다.
유행가 가사처럼 "내 나이가 어때서? 사랑하기 딱 좋은 나이"인데 말이다.
오늘 비가 내리고 나면 이제 아카시아꽃이 지리라.
아카시아꽃진자리 따가운 햇살과 더불어 잎들이 무성해지고 여름은 본격적이게 될 것이다.
짧았던 봄이 순간처럼 지나듯이 찬란하였던 나의 지나간 봄이 앞으로 살아가는 동안은 그리움이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