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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목 Jul 06. 2020

고기가 되지 않을 자유

어쩌다보니 시작된 일 … ①

사실은 요즘 개식용을 주제로 짧은 다큐멘터리를 만드는 중이다. 누군가 어쩌다 하게 된 거야? 라고 물으면 어쩌다보니 하게 됐어. 라고 답한다. 물론 어쩌다보니 하게 된 건 맞지만 그렇다고 가벼운 마음으로 시작한 건 아니었다. 개를 먹는 문제를 다루겠다면서 그런 마음이 될 리가 없잖은가. 그나저나 인생을 이렇게 어쩌다보니 살아도 되는 걸까 매번 걱정스럽기는 하다. 그걸 이제야 걱정하느냐고 하면 또 할 말이 없지만 …


2017년, 어쩌다보니 재개발 지역의 유기견 문제를 다룬 반려동물 다큐멘터리 <개와 고양이를 위한 시간>을 만들기 시작했다. 다큐작업은 그 다음해까지 이어졌고 또 한 해가 바뀐 2019년에야 비로서 완성이 됐다. 뭐 엄청나게 대단한 기록을 남기기 위해 계절이 바뀌는 걸 두 번이나 지켜본 건 아니었다. 그냥 틈틈이 제작비가 모자랐고, 그 와중에도 본업(?)에는 충실해야 했고 또 최소한의 경제활동을 해야만 했고 그러다보니 다큐 작업은 정말 따로 짬을 내야만 할 수 있는 작업이 됐다. 그러다보니 조금씩 늦어졌던 거다. 별 일은 아니었다.  


<개와 고양이를 위한 시간>은 2019년 늦여름부터 가을에 걸쳐 두 세 차례 일반관객과 만날 기회를 얻었다. 그해 8월에 열린 ‘순천만세계동물영화제’와 이어 가을 문턱에 열린 ‘카라동물영화제’를 통해서였다. 


관객의 반응은 … 

음 … 나쁘지는 않았다. 물론 영화제의 특성상 미리부터 호의를 챙겨 온 관객이 많았을 가능성은 있다. 그렇더라도 애초에 만드는 과정에서 목표했던 것 중 일부는 어느 정도 달성한 것처럼 보였다. 일테면 후반부를 장식하는 음악회 장면이 뜻밖에 너무 좋아 힐링이 되었다는 리뷰나, 기대했던 것과는 다른 다큐였는데 그래서 좋았다는 (도대체 뭘 기대했기에) 소감도 접할 수 있었다. 그 중에서도 유기견과 길고양이를 다루는 다큐는 대부분 보는 거 자체가 힘들어서 (마음이 아파서) 미리 거른다는 분이 이건 의외로 그렇지 않아 좋았다고 했을 때 그 말이 가장 큰 칭찬으로 다가왔다. 



종종 세상 사람들을 <그것이 알고 싶다>를 즐겨보는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으로 나눠 볼 때가 있다. 그중 후자의 사람들은 또 둘로 나눌 수 있다. 애초에 관심이 없어 보지 않는 사람과 관심은 있지만 이 사회의 어둡고 은밀하고 추악하고 때론 공포스런 현실을 굳이 눈으로 확인하고 싶지 않은 사람들. 굳이 따지자면 난 후자의 후자에 가까웠다. 

반려동물을 좋아하지만 도시의 반려동물을 다룬 다큐멘터리는 왠지 보면 가슴 아파질 거 같아 보고 싶지 않다는 사람들. 나 역시 그랬다. 그러다보니 <개와 고양이를 위한 시간>에는 자극적인 장면이 최대한 빠졌다. 개가 좋아 버려진 개들에게 밥을 주며 키운다는 아저씨 집 뒷마당에는 한때 개를 도살한 흔적이 있었지만 다큐에는 굳이 그때 찍힌 장면을 포함시키지 않았다. 그런 아저씨가 그 아저씨 한 사람이 아닐텐데 하필 내가 그 아저씨를 만나게 됐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영상으로 고발하는 게 과연 어떤 변화를 줄 수 있는지 그럴 자격이 내게 있는지 확신할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대신 그 마을 가장 높은 곳에서 음악회를 열자고 했다. 버려진 개와 길 위의 고양이를 위한 음악회. 어떤 사람들은 뜬금없어 했고 그게 무슨 의미가 있냐고 물었다. 그래봤자 인간들의 자기 위로일 뿐 아니겠냐고. 물론 멋진 아이디어라고 힘을 보태준 이들도 많았다. 그러니 결국 할 수 있었지. 아무튼 난 그냥 그런 식이었던 거 같다. 그리고 그런 식의 다큐멘터리가 어떤 이들에게는 치열해 보이지 않았던 게 아닐까. 영진위가 주관하는 독립 다큐멘터리의 제작과 개봉 관련 지원 사업에 선택되는 작품들을 보면서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이 사회에 더없이 중요한 일들이 얼마나 많고 많은데 고작 버려진 개들과 길고양이 얘기라니. 게다가 그마저도 이렇게 소프트한 접근이라니. 아마도 그들은 그렇게 보지 않았을까. 물론 매번 지원 사업에 떨어진 주제라서 하는 얘기다. (참고로 <개와 고양이를 위한 시간>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올 가을에는 반드시 정식 개봉하기 위해 노력중이다. 물론 여전히 넘어야 할 벽들이 많다. 응원이 필요하다. ㅜㅜ)   



아무튼 그런 와중에 또다시 개(정확히는 개식용)와 관련한 다큐를 만들고 있다. 그런데 이번에는 아무래도 잔인한 현실을 피해가기 어려울 것 같다. 매년 복날만 되면 광장에서 개를 먹지 말자고 외치는 사람들과 그 곁을 무관심하게 혹은 눈살을 찌푸리며 지나는 사람들, 그리고 개를 먹는 게 뭐가 문제냐며 문화와 전통을 들먹이는 사람들. 또 나는 안 먹지만 먹는 사람들보고 이래라 저래라 하지 말라고 쿨하게 일침을 놓는 사람들. 그 모든 모습들에 대해 이야기를 해보려고 한다. 어쩌면 개에 관한 이야기를 하려고 했는데 결국 인간들에 대한 이야기가 될지도 모르겠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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