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부를 화형 시킨다고요?
바라나시가 장례의 도시라고 설명을 했을 때
라고 언급한 적이 있다.
그래서 오늘은 '사티 프라타'가 무엇인지 이야기해보려고 한다.
많은 분들이 알고 있겠지만 인도 또한 가부장 사회이며 인도 내에서 여성의 위치는 좋은 편은 아니다.
어떤 곳(사람들)은 여성을 존중하고 보호하지만, 어떤 곳(사람들)은 여성을 자신의 소유물, 성적 대상, 폭력의 대상으로 보기 때문에 좋은 편이 아니라고 이야기하겠다.
(혹여 이 글을 보고 일반화의 오류는 하지 말았으면 한다.)
나는 인도를 여행하면서, 그리고 지금 살고 있으면서 내가 여성이라는 이유로 받는 차별이나 불합리함, 폭력의 대상이 되었던 일은 여태 없었다.
사실 사티 프라타에 대해 알아본 이유는 따로 있는데,
2020년 홀리 때 우리와 트러블이 있었던 그분.
(이 부분은 따로 적을지는 모르겠지만 궁금하신 분은 블로그에서 확인 가능.)
그분이 자신의 아내를 살해했다는 소식...
그분은 평상시에도 술을 먹으면 폭력적인 성향이 있었다고 들었기에 고인께서 얼마나 힘들었을지 상상이 가지 않았다.(그분은 종신형을 선고받았다.)
이 이야기를 듣고 많은 생각을 하게 되었고,
가장 먼저 든 생각은 내가 눈앞에 있지 않는다고 해서 없는 것은 아니구나라는 생각이었다.
거의 3년 동안 인도를 왔다 갔다 했고 지금은 살고 있지만 친구들만 보더라도 이런 경우가 없었고, 심한 경우(추행, 강간, 살인 등)는 뉴스에서만 보던 일이었기에 약간 동떨어져 있다고 느꼈었다.
이 사건 이후로 여러 인도의 여성에 대한 악습을 알아보았지만
오늘은 바라나시 이야기에서 언급한 '사티 프라타'를 이야기해보려고 한다.
남편이 죽으면 화장을 할 때 같이 화장당하는 관습.
Sati Pratha(사티 프라타), 사티라고도 불리는데
여기서 사티는 힌두교의 신 쉬바의 아내인 사티에서 가져왔으며, 산스크리트 어로 순결한 여성, 좋은 아내로 해석된다.
보통 쉬바 신의 아내를 이야기할 때 파르파티를 이야기하는데, 그의 첫 번째 아내인 사티가 죽은 뒤 환생한 것이 파르파티이다.
왜 사티 여신의 이름을 가져왔는지는 사티 여신의 죽음에 대한 힌두 신화를 볼 필요가 있다.
사티(쉬바 신의 아내)의 아버지인 Daksha(다크샤)는 한 나라의 왕이었다.
그는 Yaksh(야크쉬_왕이 자신이 성공을 위해 여는 행사)를 하기 위해 세계의 모든 사람들을 초대한다.
(천국과 지옥 포함)
하지만 그는 자신의 딸인 사티와 사위인 쉬바는 초대하지 않았다.
이에 사티는 아버지에게 왜 자신들을 초대하지 않았는지 물어보러 가야겠다고 하지만 쉬바는 가게 되면 모욕을 받게 될 거라며 가지 말라고 말린다.
사티는 자신의 아버지이니 괜찮을 것이라고 쉬바의 말을 듣고도 아버지를 만나러 가버린다.
사티가 왕궁에 도착하자 거기에 모인 모든 사람들이 그녀를 무시하고, 모욕했으며 쉬바 또한 모욕을 한다.
이에 분노한 사티가 남편과 싸우면서까지 왔는데 이럴 수 없다며, 모든 것이 부서질 거라는 말을 남기고 자신이 몸을 불태워 버린다.
사티가 분신을 하자 화가 난 쉬바는 자신의 머리카락에서 태어난 존재를 왕궁으로 보내 모든 것을 부숴버리고 사티의 아버지의 목을 잘라버린다.
이에 사티의 어머니는 쉬바에게 다가와 용서를 구하고, 쉬바는 이를 받아들여 사티의 아버지의 머리가 있던 곳에 숫양의 머리를 붙여 살려준다.
인도에서 과부를 남편과 함께 화장하는 방법을 Sahagamana(함께 가다), Sahamarana(같이 죽다)라고 하며 사티 프라타는 과부를 산 채로 불태우는 관습을 나타내는 용어이다.
또한 사티 프라타를 한 과부를 존경의 뜻을 담아 Satimata라고 부른다.
사티 프라타는 자발적으로 하는 사람이 있기도 했지만 강제적으로 행해지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악습이라 할 수 있다.(자발적인 것 또한 마찬가지이다.)
과부가 된 여성이 사티 프라다를 거부하는 경우 Bhang(마리화나)나 아편을 먹여 의식을 잃게 만든 뒤 화장을 시키기도 했다고 한다.
'여성이 살아 있는 동안 남편을 보호하고 남편이 죽으면 함께 죽는 것'을 미덕으로 삼았기에 많은 여성들이 남편이 죽으면 같이 화장을 당했다고 한다.
이 관습은 인도가 영국의 식민지배를 받고 있을 시기, Raja Rammohan Roy(인도 사회 종교 개혁자)의 노력으로 William Canvendish-Bentinck(영국 군인, 정치가_인도 총독) 아래 폐지되었다.
이후 사티 프라타의 폐지는 1856년의 과부 재혼 법으로 이어지는데, 힌두교에서 여성은 재혼을 할 수 없었으며 하더라고 상속권이 박탈되었기에 이는 위법이라 판명, 과부 재혼 법이 생겨 났다.
현재는 사티 프라타가 이루어지고 있지 않으며 보통 장례식 때 여성이 자신이 결혼할 때 받은 뱅글(인도식 팔찌)를 부스는 것과 빈디를 하지 않는 것만을 하고 있다고 한다.(이것은 원래부터 하던 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