답답한 벽 앞에서 운명의 지도를 펼쳐보던 시간들
한동안 답답하던 때가 있었다. 어렵사리 다시 밑바닥부터 시작한 심판생활에서 또다시 예전에 이걸 그만두기로 결정하는 데 계기가 되었던 것들을 맞닥뜨리게 되어서였다.
물론, 고집스러울 만큼 강한 마음을 먹었던 인생결정이었기에 그만큼 헤쳐나갈 준비가 되었다고 생각하고 있었지만 내가 떠나 있던 사이에 나를 가로막는 벽들은 더 견고했고 두꺼워져 있었다.
우리 모두는 이렇게 답답할 때 취하는 태도나 방식이 다르다. 누구는 종교에, 또 누구는 새로운 것에, 여행, 가족, 쇼핑 등등 나열하기에도 너무 다양하다.
나는 누구에게 속마음을 잘 보이질 못한다. 그리고 상대를 좀 더 섬세하게, 그리고 짧지 않은 시간을 지내야만 받아들이는 편이다. 그래서 좀 더 이 '사주를 보는 것'을 어렵지 않게 해 본 것 같다.
말을 많이 하지 않아도, 나에 대해 어떤 정보나 예측이라도 듣게 되면 내 마음속의 공간이 좀 더 커진 느낌이 들었다. (이건 아마도 무엇에 빠지거나 쉽게 믿고 싶어 하는 성향과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이다)
신기하기도 하고 재미도 있었다.
북서쪽 방향으로 자야 한다, 2년 내 귀인을 만난다, 이 일이 맞으니 이 걸해라 등등.
물론 혹자는 사주가 기본적으로 통계학이기에 근거가 있다고도 한다.
그러나 나에게 사주나 점사가 얼마나 맞고 틀리다는 통계나 확률의 개념이 필요한 것은 아니었다. 다만, 몇 년간 연례행사처럼 사주를 본 그때를 돌이켜보면 무언가를 마냥 믿고 싶고 기대고 싶은 마음보다는 내 속의 또 다른 공간을 새로 만들 기회로 활용하고 싶었던 것 같다. 조금 덜 답답해질 수 있는 또 다른 시각정도?
이제 알게 된 게 있다면,
이렇게 글을 끄적이며 나의 책을 쓰겠다는 결정을 하고 매일을 의미 있게 보내고자 하는 것만이 내 실제 인생을 만들어 간다는 것이다.
누가 알겠는가? 이런 삶의 결정과 방식으로 시간이 어느 정도 흐른 뒤 다시 사주를 본다면 '딱 나에게 주어진 사주팔자대로 살고 있다'라고 들을지.
아직도 기억나는 사주가 있다. 나는 '역마살'이 있는 사주인데 '살'이라고 해서 무조건 부정적인 것이 아니라 그 사주대로 산다면 결국 좋은 사주라는 거다. 지금 내가 어렵게 어렵게 다시 복귀한 심판이라는 직업의 삶은 말 그대로 '사주대로 사는 삶'이 되는 것이고, 그럼 나는 아주 좋은 결정을 한 게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