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별'은 꼭 사람사이에만 존재하는 것은 아니다.
주차장에 세워진 차의 뒷모습을 마지막으로 눈에 담았다. 10년이라는 세월 동안 늘 익숙하게 보아온 뒷모습이었다. 최근 들어 내가 해외 투어를 나갈 때마다 투정 부리듯 몇 번 말썽을 부리더니, 결국 ‘그럴 때가 되었다’는 진단을 받았다. 한 달간의 투어 일정을 앞두고 서둘러 정리를 마쳤지만, 그 서두름만큼 마지막 순간의 섭섭함은 더 깊게 배어 나왔다.
이 차를 처음 만났을 때, 첫째 아이는 갓난아기였다. 그리고 나는 다시 코트 위로 돌아가 심판의 삶을 본격적으로 시작하겠노라 마음먹던 무렵이었다. 일 년의 절반 가까이를 집 밖에서 보내야 하는 직업. 내가 곁에 없을 때도 가족을 태우고 아무 일 없이 달려줄 만큼 안전한 차를 찾는 것이 가족들에게 줄 수 있는 나의 유일한 약속이었다.
시간은 별다른 표시 없이 흘렀다. 아이들은 자랐고 이 차는 늘 같은 자리에 있었다. 그래서일까, 아이들에게 이 차는 그냥 ‘엄마 차’라고 불렸다. 내가 없는 동안 아내가 아이들을 태우고 병원에 가던 날들, 유치원 앞에서 아이를 기다리던 나른한 오후, 주말마다 떠났던 여행들. 굳이 기억하려 애쓰지 않아도 우리 가족의 모든 시간 곁에는 늘 이 차가 있었다. 큰 사고나 고장 한 번 없이 묵묵히 우리의 손발이 되어준 듬직한 존재였다.
나는 종종 다른 나라에 있었고, 밤을 넘기며 다음 경기를 생각했다.
그동안 이 차는 집 근처에서 아이들을 태우고, 내려주고, 다시 돌아왔다. 마치 각자 맡은 역할이 있는 것처럼 서로의 동선은 겹치지 않았고, 그래서 흔들리지도 않았다. 내가 비운 자리의 공백을 ‘엄마 차’라는 공간과 그곳을 가족이 채워주고 있었던 셈이다.
차를 보내고 돌아오는 길, 잠시 걸음을 멈췄다. 딱히 할 말이 떠오르지는 않았다.
섭섭함과 짠함이 뒤섞인 묘한 감정이 올라왔지만 굳이 정리하려 들지 않았다. 10년 동안 이 차는 그 자리에 있었고, 나의 가족은 그 시간을 안전하게 건너왔다. 그것만으로도 충분했다.
주차장에 빈자리가 하나 생겼다. 이제 아이들은 더 이상 그곳을 보며 ‘엄마 차’라고 부르지 않겠지만, 그 빈 공간이 생각보다 크게 느껴지지는 않았다. 아마도 후회 없을 만큼 충분히 서로를 지탱하며 그 시간을 통과했기 때문일 것이다.
이별은 꼭 사람 사이에만 존재하는 것이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