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화. 가시 돋친 약초의 자리

<애매한걸 정리해주는 사전_한근태 지음>을 읽다가 마주한 내 모습

by 남발

아침에 읽던 책의 이 페이지에서 작가는 독초와 약초의 차이를 '드러냄'의 의도로 구분한다.

왠지 독자들에게 한 번 생각해 보라고 물어보는 것 같았다.

심판으로 코트에 설 때, 들을 수 있는 ‘최고의 찬사’는 역설적이게도 나에 대한 망각이다.


코트 위에는 화려한 독초를 닮은 선수들이 산다. 그들은 자신을 의도적으로 드러낸다. 형광색 유니폼, 터질 듯한 포효, 라켓을 내던지는 과격한 몸짓까지. 생물학에서는 이를 '경계색'이라 부르지만, 인문학적으로 보면 이는 '나를 보라'는 강렬한 자기 증명이다. 그들의 화려함은 관중을 매혹하고 경기를 축제로 만들지만, 그 안에는 종종 타인의 에너지를 갉아먹는 독(毒)이 묻어 있다.

시선을 빼앗는 데 성공할지는 몰라도, 그 끝이 늘 치유는 아니다. 반면, 그 소란의 한복판에서 심판인 나는 철저히 '약초'의 자리를 지킨다. 약초는 눈에 띄지 않아야 한다.

심판들 사이의 격언처럼, "심판이 기억나지 않는 경기"가 가장 완벽한 경기이기 때문이다.

존재하지만 존재감이 없는 상태, 철저히 평범함 뒤로 숨는 것. 그것이 약초 같은 심판의 숙명이다.

그런데 책은 약초의 속성으로 한 가지를 더 보탠다. 바로 '까칠하고 가시가 있다'는 점이다. 나는 이 대목에서 비로소 심판이라는 자리의 고독을 이해받은 기분이 들었다. 약초가 평범하다고 해서 그저 유순하기만 한 것은 아니다. 약초의 가시는 누군가를 공격하기 위한 무기가 아니라, 자신의 '약성(藥性)'을 지켜내기 위한 최소한의 방어기제다.


심판의 판정도 그렇다. 나는 코트 위에서 괜히 웃지 않는다. 판정의 근거를 구구절절 설명하지도 않는다. "아웃(Out)!" 혹은 "폴트(Fault)!"라는 짧고 단호한 콜, 그것이 나의 가시다. 때로는 그 가시가 누군가에게 상처를 주거나 오해를 사기도 한다. "너무 까칠한 거 아니야?"라는 눈총을 받으며, 이미 판단된 채로 심판석에 서 있는 기분이 들 때도 있다.

하지만 그 까칠한 가시가 없다면, 경기의 공정함이라는 약성은 금세 오염되고 만다. 모두에게 좋은 사람이 되려 애쓰는 순간, 심판은 약초의 기능을 잃고 만다. 그래서 나는 기꺼이 오해받는 쪽을 택한다. 시간이 지나 소란이 가라앉고 나면, 그 단호했던 가시가 결국 모두를 살리는 약이었음을 코트의 기록이 증명해 줄 것이라 믿기 때문이다. 독초가 나쁜 것도, 약초가 대단히 착한 것도 아닐 것이다. 그저 누군가는 먼저 눈에 들어와 축제가 되고, 누군가는 나중에 기억되어 안도가 될 뿐이다.

오늘 하루, 나는 누군가에게 화려한 장면이었을까, 아니면 기억나지 않아도 괜찮은 뒷모습이었을까. 테니스 코트 위에서 공의 궤적을 쫓을 때나 그 이후에 조용히 스스로 복기할 때에도 나는 늘 자문한다.


때로는 나를 몰라주는 세상이 야속하게 느껴질 때도 누구에게나 있을 것이다. 하지만 누군가에게 기억되지 않았다는 건, 당신이 그만큼 완벽하게 그 자리를 지켜냈다는 뜻일지도 모른다. 굳이 답을 내릴 필요는 없다.

다만 오늘 하루, 잊혀도 좋을 만큼 묵묵히 제 자리를 지켜낸 당신의 ‘약초 같은 하루’는 어땠는지 묻고 싶다. 내가 오늘 누군가에게 쌉쌀하지만 꼭 필요한 성분으로 존재했다면 그것으로 충분하다.

화려하지 않아도 괜찮다. 조금 까칠해도 상관없다.

당신의 가시 끝에 묻은 것이 타인을 해치려는 독이 아니라 진실을 지키려는 진심이었다면, 그것으로 이미 당신은 누군가에게 가장 귀한 약초였을 테니까.

수, 토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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