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준이 흔들린 뒤, 내가 보낸 침묵의 시간_담마코리아에서의 위빠사나 코스
나는 어떤 결심으로 그곳에 간 건 아니었다. 더 정확히 말하면, 더는 미룰 수 없어서였다. 오랫동안 믿어온 한 사람의 판단이 그 믿음을 저버렸고, 그 순간 내가 기대고 있던 기준이 생각보다 바깥에 놓여 있었다는 사실과 일방적인 착각이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상처는 개인적인 일이었지만, 흔들림은 생각보다 깊었다.
나는 한동안 시합배정을 거부했고, 세상과 의도적으로 분리되어 있길 원했다. 누군가의 경기를 판단하는 자리에 다시 나를 올려놓을 자신도 없었을뿐더러, 모든 것이 흔들리는 상황에서 내가 최우선으로 생각할 수 있는 것부터 찾아야 했기 때문이다.
그때 대기자 명단에서 연락이 왔다. 담마코리아 명상센터의 위빠사나 열흘 코스. 운이라고 생각했지만, 지금 돌아보면 그건 도망이 아니라 정지에 가까운 선택이었다. 나를 찾고 싶었고, 나를 위로해주고 싶었고, 그렇기에 아무도 나를 평가하지 않는 공간도 필요했다. 어떤 기록도 남지 않는 시간, 어떤 판단도 요구되지 않는 자리. 나는 그 자리에 가서 그저 앉아 있기만 하면 되었다.
센터에 들어간 날, 규정에 따라 휴대폰을 제출하고 완전한 침묵을 시작했다. 잠시 앞으로의 시간들이 두려웠으나 시계를 내려놓자 시간 감각도 흐려졌다. 새벽 네 시 종소리에 맞춰 일어나 수행장으로 걸어가 방석 위에 앉는 일상이 시작되었다. 열흘 동안 반복된 건 거창한 깨달음이 아니라 아주 단순한 감각이었다. 다리가 저리고, 허리가 굳어가고, 숨이 거칠어졌다. 통증은 설명이 필요 없었다. 그냥 매번 견디기 힘들 만큼 아팠다.
“지켜보라. 반응하지 말라.”
그 문장은 처음엔 수행 지침처럼 들렸다. 그러나 몇 시간이 지나고, 몇 날이 흐르면서 그 말이 나를 향해 있다는 걸 알게 되었다. 나는 늘 반응해 온 사람이었다. 누군가의 평가에 안도했고, 예상과 다른 선택에는 오래 매달렸다. 사건보다 내 반응이 더 오래 나를 붙들고 있었다.
방석 위에서 나는 도망칠 수 없었다. 통증이 올라오면 그것을 밀어내고 싶었고, 생각이 떠오르면 다른 생각으로 덮고 싶었다. 하지만 할 수 있는 일은 하나뿐이었다. 그냥 두는 것. 감각을, 생각을, 감정을 잠시 붙잡지 않고 지켜보는 것. 그 단순한 태도가 생각보다 어려웠다. 나는 늘 무언가를 고치거나, 정리하거나, 결론을 내려야 마음이 놓이는 사람이었기 때문이다.
어느 날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내가 그 사건을 붙잡고 있었던 건 상처 때문이 아니라, 그 상처가 만든 의미 때문이었는지도 모른다고. 나는 누군가를 통해 나를 세워두고 있었고, 그 구조가 흔들리자 나 자신까지 흔들리고 있었다. 방석 위에서 다리가 저려오듯, 내 기준도 바깥에 오래 두면 저려온다는 걸 그제야 체감했다.
열흘 동안 나는 아무 결론도 내리지 않았다. 대신 아주 작은 간극을 배웠다. 감정이 올라오는 순간과,
그 감정을 곧장 행동으로 옮기는 순간 사이에 얇은 틈을 두는 법. 상처가 사라진 건 아니었지만, 그 상처에 즉각적으로 반응하지 않을 수 있다는 경험. 그 틈이 생각보다 컸다.
명상은 나를 더 강하게 만들지 않았다. 대신 나를 조금 느리게 만들었다. 반응을 늦추고, 해석을 미루고, 판단을 잠시 보류하는 태도. 심판으로서 나는 늘 즉각적인 결정을 내려야 했지만, 그 열흘 동안은 결정을 내리지 않아도 괜찮았다. 그 경험이 이상하게도 나를 단단하게 만들었다.
열흘이 끝나고 다시 체어에 앉거나 VR부스에서 여러 모니터들을 마주했을 때, 나는 여전히 완벽하지 않았고 여전히 긴장했다. 다만 한 가지는 분명해졌다. 나는 그들이 조직이라고 주장하는 틀 안에 있지만, 내 기준을 그 안에 두지는 않겠다는 마음. 누군가의 확신을 빌려 나를 세우기보다, 흔들려도 다시 돌아올 수 있는 지점을 조금 더 안쪽에 두겠다는 태도.
그 사람이 옳았는지, 그 선택이 정당했는지는 지금의 나에게 크게 중요하지 않다. 더 중요한 건 내가 무엇에 기대고 있었는지를 알게 되었다는 사실이다.
심판이라는 직업은 여전히 고독을 동반하고, 나는 여전히 혼자 판단한다.
다만 이제는 안다. 판단 이전에, 잠시 앉아 있을 수 있는 시간이 필요하다는 것을.
열흘의 침묵은 구원이 아니었다.
그것은 재정렬이었다. 기준을 밖에서 안으로 옮겨오는 과정. 완전히 끝난 일은 아니지만, 적어도 어디에서 다시 시작해야 하는지는 알게 되었다.
나는 그 열흘을 기억한다.
기준이 흔들렸을 때, 내가 할 수 있었던 일은 결국 앉아서 호흡하며 나 자신을 마주하는 것이었다는 사실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