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화. 오늘은 판정 안 합니다.

백만 년 만에 친구들과 테니스 치러 가기(feat. 기차여행)

by 남발

오늘은 심판이 아니라, 그저 테니스를 치러 가는 사람이다. 아침 일찍 라켓 가방을 메고 기차역으로 향했다. 시합 배정을 받은 도시가 아니라 친구들을 만나러 가는 길. 기차는 생각보다 느릿하게 달렸고, 그 느린 속도가 팽팽했던 마음을 기분 좋게 늘어뜨려 주었다. 이런 식으로 설레며 코트로 향하던 때가 분명 있었다.

20대의 나는 선수가 아닌, 그저 테니스가 좋았던 사람이었다. 수업이 끝나면 자석에 이끌리듯 코트로 갔고, 약속이 없으면 또 코트로 갔다. 실력이 제자리여도 상관없었다. 랠리가 길게 이어지면 그것만으로 충분히 행복했다. 공이 어디로 오는지, 어떻게 받아칠지 고민할 뿐, 공이 떨어지는 지점이 선의 안쪽인지 바깥쪽인지는 그리 중요하지 않았다.

기차역에 도착하니 갓 구운 단팥빵 냄새가 코끝을 간질였다. 친구들에게 줄 빵 몇 봉지를 사고, 시간이 조금 남아 카푸치노 한 잔을 시켰다. 부드러운 거품 위로 올라오는 온기를 즐기는데, 소풍을 앞둔 아이처럼 설레는 마음이 스스로도 우스웠다.

플랫폼에서 기차를 기다리다 문득 찍은 사진 한 장이 있다.

기차가 들어오기 직전, 노란 안전선을 아슬아슬하게 넘은 사람들과 그들을 예의 주시하는 역무원의 뒷모습. 아직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지만, 이미 무언가 시작된 것 같은 팽팽한 공기. 나는 그 장면에 '일촉즉발'이라는 단어를 붙였다.

매치 중에도 그런 순간이 있다. 선수와 나 사이의 공기가 단숨에 달라지는 시간. 점수는 팽팽하고,

다음 한 포인트가 전체 흐름을 뒤바꿀 수 있다는 걸 모두가 직감하는 상태. 우리는 그걸 ‘모멘텀’이라 부른다. 보이지 않지만 선명하게 실재하는 힘. 체어(Chair)에 앉아 있든, 리뷰 화면을 뚫어지게 보고 있든, 나는 늘 그런 경계 근처에서 날을 세우고 서 있다. 플랫폼의 역무원 또한 비슷했을 것이다. '지금 경고를 해야 하나? 아니면 조금 더 기다려야 하나?' 나는 그 찰나의 갈등을 본능적으로 알아본 것이다. 직업병은 이토록 끈질기다.


아이러니하게도 테니스가 직업이 된 뒤부터 나는 테니스를 거의 치지 않는다. 일이 끝나면 테니스장에서 최대한 멀리 벗어나는 게 우선이었으니까. 좋아서 하던 일이 '역할'이 되면 감정의 결이 달라지기 마련이다.

내적 동기로 시작한 일이 책임과 구조를 만날 때 발생하는 '과잉 정당화 효과'. 몸은 학술 용어보다 먼저 반응했다. 예전엔 그냥 놀았지만, 지금은 관리하고 판정한다.

그래도 좋아하는 마음이 사라진 건 아니다. 다만 그 위에 다른 층이 겹겹이 쌓였을 뿐이다. 오늘 코트에서 정말 오랜만에 친구들과 공을 주고받다가 문득 이상한 기분이 들었다. 점수를 세지 않고, 판정을 하지 않으며, 그저 공이 오는 방향만 바라보는 시간이 낯설고도 달콤했다. 날아오는 공의 궤적에 가슴 뛰던 예전의 나로

돌아간 기분. 공을 치던 사람에서 경기를 다루는 사람이 되었지만, 오늘만큼은 다시 예전으로 돌아간 것이다.

오늘 나는 아주 잠깐, 아무 판단도 하지 않았다. 그리고 그 무구한 감각이 생각보다 긴 여운을 남긴다.

다음 대회에서 나는 다시 엄격한 역할을 수행하겠지만, 코트 위에 서기 전 한 번쯤은 오늘을 떠올릴 것 같다. 공이 날아오던 그 단순한 순간의 감각들과, 어떤 부담도 없이 터져 나오던 우리들의 웃음소리를.


수, 토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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