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화. 닫힘 버튼을 누르는 손가락의 정당방위

타인을 지움으로써 서로를 존중하는 엘리베이터의 인문학

by 남발

어떤 경기는 코트 위가 아니라 좁은 금속 상자 안에서 비로소 완성되기도 한다.

2미터 조금 넘는 체어 위에서 수천 명의 시선을 내려다보며 내뱉던 어나운스먼트의 권위는, 경기가 끝난 뒤 호텔 엘리베이터의 닫힌 문 앞에서 속수무책으로 휘발된다. 방금 전까지 코트 위에서 옥신각신하던 선수와 2평 남짓한 공간에 갇혀 서로의 땀 냄새와 긴장의 잔여물을 공유하게 된다. 가끔 심판과 선수들의 셔틀버스를 분리해 주는 대회도 있지만 대부분은 같은 버스를 타고 같은 숙소에 묵는다. 이런 순간은 생각보다 자주 찾아온다. 보통은 가벼운 인사나 눈인사 정도로 지나간다. 하지만 그날 내가 심판으로 마주했거나 곧 마주할 선수와 같은 엘리베이터 안에 서 있을 때면, 이 좁은 소우주 속에서 빳빳했던 유니폼 깃이 목을 조여 오는 듯하다. 서로의 숨소리만이 정적의 해상도를 또렷하게 끌어올린다.


엘리베이터는 가장 밀착되어 있으면서도 심리적으로는 가장 멀리 도망쳐야 하는 기묘한 공간이다. 인류학자 에드워드 홀이 말한 ‘친밀한 거리’, 연인이나 가족에게만 허용된다는 그 한 뼘의 영토를 우리는 낯선 사람에게 강제로 내어주어야 한다. 그 물리적 폭력 앞에서 사람은 본능적으로 방어기제를 작동시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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