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번 더 열어보게 되는 것들에 대하여
대회가 끝난 다음 날이나 그날 밤, 호텔 침대 옆 바닥에 주저앉아 캐리어를 닫는다. 무릎으로 가방 한쪽을 누르고 지퍼를 당기면, 모서리에서 한 번 꺾이며 멈추는데 금속이 천을 씹는 느낌이 손가락 끝에 남는다. 한 번 더 힘을 주면 올라갈 것 같다가도, 그대로 두면 금방 벌어질 것 같아서 멈췄다가 결국엔 다시 여는 이 상황은 예외 없이 반복되는 것 같다.
게다가 캐리어 안을 들여다보면 옷가지들이 서로 밀린 채 모양을 버티고 있는데, 어디가 문제인지 찾기보다는 자동적으로 무엇을 빼야 하는지 생각하게 된다. 손이 먼저 가는 건 결국 한 번도 펼치지 않은 두꺼운 책 한 권이다. 이번 대회만큼은 이 문장들을 다 삼키겠노라 다짐하며 챙겼지만, 호텔 천장을 보며 잠들기 바빴던 밤들 사이에서 책들은 그저 종이 뭉치이자 무겁지만 버릴 수 없는 짐으로 퇴화했다. 가방에서 빼내 침대 위에 올려두면 손목이 가벼워질 걸 알면서도, 이걸 빼는 순간 이번 여행의 지적 허영마저 포기하는 것 같아 차마 내려놓지 못한다. 결국 다시 가방 가장 깊숙한 바닥, 지퍼가 가장 비명을 크게 지르는 그 모서리 쪽으로 책을 밀어 넣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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