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이지 않는 조정으로 유지되는 것들
춘천으로 향하는 아침 첫 시외버스 안, 발바닥을 통해 전해오는 엔진의 진동이 일정했다.
어랏? 밖에서 볼 때와 다르다는 생각에 문득 운전석 옆 계기판의 숫자가 궁금해졌다. 보통의 승용차라면 수명을 다했을 법한 80만 가까이 되는 킬로미터라는 숫자가 저 기계의 몸 안에는 새겨져 있었다. 매일 같은 길을 수없이 왕복하며 거대한 하중을 견뎌내는 이 기계는 어떻게 매번 새것 같은 탄성을 유지하며 도로 위에 서 있는 걸까.
알아보니 시외버스나 고속열차 같은 거대 장치들은 '상태 기반 정비(Condition Based Maintenance)'라는 정교한 시스템으로 관리된다고 했다. 부품이 완전히 마모되어 멈추기 전에, 진동의 미세한 변화나 열의 흐름을 미리 읽어내어 선제적으로 조율하는 기술이라는데, 질베르 시몽동이 말했듯, 기계는 단순히 죽어있는 도구가 아니라 인간과 상호작용하며 자신의 상태를 끊임없이 발신하는 '기술적 대상'인 것이다. 그 숫자는 단순한 누적이 아니라, 무너지지 않기 위해 안간힘을 쓰는 '조율의 역사'라고 해도 되겠다.
그 리듬은 테니스 코트 위에서도 똑같이 흐른다. 사람들은 흔히 테니스를 '공을 치는 스포츠'라고 생각하지만, 코트 위에서 내가 목격하는 고수들의 진짜 기술은 '회복하고 유지하는 기술'에 가깝다.
강력한 서브나 화려한 스매시보다 중요한 것은, 매 포인트가 끝난 뒤 거친 호흡을 가다듬고 자신의 리듬을 영점으로 되돌리는 찰나의 정비다. 라켓 스트링의 텐션을 손가락으로 매만지며 미세한 이격을 맞추고, 베이스라인 뒤에서 신발 바닥의 흙을 털어내며 지면과의 마찰력을 다시 확인하는 행위. 그것은 소모되는 체력을 관리하는 '상태 기반 정비'의 시간이다. 스피노자가 말한 '코나투스', 즉 자신의 존재를 유지하려는 본능적인 힘이 코트 위에서는 그런 사소하고도 집요한 루틴을 통해 발현된다.
다시 버스 안을 둘러본다. 반질반질해진 손잡이와 닳아버린 바닥 판은 이 버스가 통과해 온 치열한 거리의 증거다. 기사님은 기어를 변속할 때마다 기계의 숨소리를 듣는 듯했다. 무리하게 엔진을 몰아붙이지 않고, 관성을 이용해 미끄러지듯 속도를 줄이는 모습에서 노련한 테니스 선수의 '슬라이스'를 보는 것 같았다. 춘천 요금소를 통과하면서는 버스의 속도가 줄어드는데 브레이크가 걸리는 느낌조차 없이 부드럽게 멈춰 서는 동작에서, 완벽한 발리 한 번을 성공시키기 위해 몸의 모든 근육을 이완시킨 선수의 뒷모습이 다시 겹쳤다. 근래 타본 버스들 중 단연 베스트 드라이버이셨다.
사람의 삶도 결국 '운행 거리'의 문제 아닐까. 우리는 모두 저마다의 계기판을 달고 '삶'이라는 고속도로를 달린다. 누군가는 엔진이 타들어 가는 줄도 모르고 속도를 올리지만, 어떤 이는 미세한 소음에도 민감하게 반응하며 스스로를 보살핀다. 말이 길어지려 할 때 입을 닫는 법을 배우고, 감정이 격해질 때 호흡의 속도를 늦추는 것. 그것은 나약함이 아니라, 더 먼 거리를 달리기 위한 고도의 '정비 기술'이다.
결국 산다는 건, 대단한 가속도를 내는 일이 아니라 매 순간 내 안의 텐션을 확인하며 목적지까지 나를 온전히 데려다 놓는 일일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