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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남봉 Oct 30. 2024

엘리베이터 속 작은 선물

주중의 꼭대기에 있는 수요일 출근길은 늘 힘겹다. 오늘 아침 아이도 나도 맥반석 오징어처럼 어깨를 구부린 채 엘리베이터에서 멍때리고 있었다. 조금 전 놓친 엘리베이터가 사람들을 한가득 싣고 갔는지, 13층에서 우릴 태운 엘리베이터는 멈추지 않고 한방에 내려갔다. 1층에 곧 도착하려나 싶은 순간 3층에 멈추었다. '혹시, 그분이?' 머릿속에서 자동으로 배경음악이 깔린다.


"문이 열리네요~ 그대가 들어오죠~" 


문이 열리자, 휠체어를 탄 할머니가 함박웃음을 지으며 들어오신다. 안녕하세요라는 인사가 끝나기도 전에 할머니는 마치 이 순간을 기다렸다는 듯 딸아이에게 급히 말을 쏟아내기 시작했다.

"어머, 너는 어쩜 이렇게 이쁘니."

"세상에 콧날은 어떻게 그리 오뚝하고." 

"눈썹은 그리지도 않았는데 저렇게 진하게 이쁜 거야?"

"눈이 꼭 진주알처럼 빛나네."

"어머나, 저 보조개 들어가는 것 좀 봐. 하늘에서 내려온 선녀가 따로 없네."

"나중에 커서 미스코리아에 나가야겠다~~"

3층에서 내려오는 찰나의 순간 동안, 할머니는 래퍼 뺨치는 속도로 딸아이를 쉴 새 없이 칭찬하셨다.


3층 할머니는 우리 아파트에서 유명 인사다. 단순히 예쁘다, 멋지다가 아니라, 마주치는 사람마다 정성스레 '옷이 참 멋스럽게 잘 어울리네'라거나 '미소가 정말 아름답네' 같은 구체적인 칭찬을 내놓으신다. 내 아이들을 칭찬하라고 해도 매번 세세하게 다른 칭찬을 하는 것이 힘든데, 할머니는 여든이 훌쩍 넘은 연세에도, 남의 자식들에게도 이걸 해낸다. 


아침 출근길, 등굣길 사람들은 대부분 경직된 듯 보인다. 지각한 사람들에게선 옷깃이라도 스치면 툭 터질 것 같은 날 선 초조함까지 배어 나온다. 모두 말 한마디 없이 전장에 나선 군인들처럼 근엄한 표정으로 있다가, 3층 할머니의 등장에 이내 수줍게 미소를 짓게 된다. 몇 초 후, 엘리베이터를 나서는 사람들의 뒷모습이 한결 부드러워져 있다. 


며칠 전, 나를 닮아 쌍꺼풀이 없고 눈이 크지 않은 딸아이가 근심을 털어놓았다.

"엄마, 나는 눈이 작아서 안 이쁜 거 같아." 

너만의 매력이 충만해서 아름답다고 해도 아이는 여전히 시무룩했다. 엄마 눈에는 당연히 이쁜 거라고 하면서 말이다. 학교에서 친구들이 너는 왜 쌍꺼풀이 없냐고 물어본 모양이었다. 


오래간만에 마주친 3층 할머니 덕분에 딸아이는 입꼬리가 반달 모양이 돼서 등교했다. 눈썹처럼 아주 작은 부분이라도 귀하게 바라봐 주며 좋다 좋다 해주는 이가 곁에 있다는 것, 그 힘으로 우리는 오늘도 한 발짝 더 나아갈 수 있다.


퇴근길에 할머니를 만나게 되면 나도 할머니를 기운 나게 해 드리는 말을 한마디 해드려야겠다. 바로 생각나지 않는 걸 보니 갈 길이 멀긴 하지만. 하다 보면 할머니 나이쯤 되면 세상을 바꾸진 못하더라도 나도 우리 아파트 사람들 자존감 지킴이는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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