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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남봉 Mar 13. 2023

글 쓰며 생긴 기이한 습관

감정의 데시벨이 낮아지는 과정

지난 12월, 처음 브런치 세계에 입장하며 꽤 웃긴 특이한 습관이 생겼다.

바로 시도 때도 없이 '~다.'라고 끝맺는 생각을 해대는 것이다.




상황 1

예전 같으면 아이 둘이 다투고 있을 때 부정적인 감정이 차올라 생각은 고사하고 이런 말부터 튀어나왔다.

"너희 또 왜 싸워. 그만 좀 해!"

요즘은 생각이 먼저 앞선다.

'아이들이 또 다툰다. 싸우면서 큰다는데 도통 어디로 큰다는 것인지 알 수가 없다. 오늘은 어느 지점에서 개입해야 하는 걸까'


상황 2

일터에서도 마찬가지이다. 몇 달째 나와 내 동료들을 괴롭히고 있는 작자가 있다. 그가 우리를 해코지할 때면 감정 먼저 화산처럼 폭발했다.

'미친 거 아니야? 아오 열받아' 이런 말을 내뱉으며 앞에 앉은 동료와 신나게 욕을 주거니 받거니 했다.

그런데 요즘은 이렇게 시작한다.

'그가 또 우리를 곤경에 빠뜨렸다. 언제까지 저 사람의 만행을 지켜봐야 하는 것일까. 나와 내 동료들의 인권도 이제는 생각해야 할 때다.'


상황 3

젖은 머리를 말릴 때는 보통 멍 때리거나 그날 처리할 일들을 머릿속으로 쭉 나열해 가며 기계적인 생각을 하곤 했다. 하지만, 지금은 거울 속 나를 응시하며 종종 이런 마음속 글을 써본다.

'새치가 손가락 한마디만큼 올라왔다. 잊을만하면 찾아오는 이 불청객을 뽑아 버릴 까 확 염색약에 묻어버릴까.'




처음에는 이런 내가 당황스러웠다. 낮이고 밤이고, 운전 중에도, 잠들기 직전에도 '~다'로 끝나는 생각의 꼬리는 의식하지 않아도 계속되었다. 몇 달간 적응이 되고 나니 다소 특이해 보이긴 해도 좋은 점이 더 많다는 것을 깨달았다.


이 습관은 모호하고 날 것인 감정을 매만져 준다. 옷매무새 다듬 듯 말이다. 아이들이 싸울 때 화를 낼 상황은 아닌데 싸우는 소리가 듣기 싫다 보니 분노로 감정을 표출하게 된다. 가만히 들여다보니 노여워할 일이 아니었다. 사유의 과정 없이 감정을 그대로 배출하니 때로는 잘못 선택된 야생마 같은 감정이 툭 튀어나왔다. 속으로 되뇌는 습관이 생긴 뒤부터는 내 감정 상태가 인지된다. 날뛰던 감정을 내가 알아차림으로써 이 녀석은 바닥에 사뿐히 가라앉아 나의 처분을 기다린다. 지금은 분노의 타이밍이 아니라 훈육의 타이밍이구나 하며 "얘들아, 한 명씩 얘기해 봐."라는 말이 나온다.


또 한 가지 장점이 있다. 글을 쓰는 것처럼 '~다.'라는 말투로 생각하다 보면 상황을 객관적으로 바라보게 된다. 누군가가 몹시 미운 순간이 와도 '저 시키 뭐야. 완전 미친놈이네'와 같은 폭풍의 감정이 아니라(그래도 때로는 찰지게 뱉어 줘야 속 시원하긴 하다.) '어이없는 그의 행동에 이제 헛웃음만 나온다. 어처구니가 없다.'라는 식의 생각이 먼저 나오기도 한다. 그래서  뱉어 놓고 후회하는 일이 조금씩 줄어들고 있다. 감정의 데시벨이 낮아지고 있는 것이다.


은유 작가의 글쓰기 상담소에 이런 구절이 나온다.

남이 알아주길 바라지 말고 내 마음 나부터 알아주자는 데 이른 어른스러운 해결책이 내겐 글쓰기다.


나도 내 마음을 정확하게 모르면서 남이 알아주길 바란 적이 많다. 글쓰기를 통하여 내 마음을 들여다보며 어른스럽게 상황을 헤쳐 나가는 법을 배워 나가고 있다. 이토록 내 마음의 소리에 귀 기울여 본 적이 있을까. 무엇인가 중요한 것을 결정해야 할 때 말고는 거의 없었던 것 같다. 아니면 단편적인 감정 표현들만 난무했다. '매우 좋다', '싫다' 등의 수준 말이다.


막연하게 어린 시절부터 글을 쓰고 싶다고 생각했다. 그렇지만 글쓰기가 주는 의미는 깊게 생각해 본 적이 없다. 그간의 삶에서는 육체를 제외하고 나를 상징하는 것들이 희미했다. 아직은 다소 거칠고 투박한 글들이지만 글쓰기는 내 생각과 삶이 형상화되어 흐릿했던 '나'라는 인간에 색을 더해준다. 선명해진 색을 입은 나는 감정을 조절할 수 있고 상황을 객관적으로 바라볼 수 있는 진짜 어른으로 자라나고 있는 듯하다.




*사진출처: Pixab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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