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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남봉 Apr 21. 2023

내리사랑이라는 말 들어봤니?

 우리 가족은 주말 저녁이면 일사불란하게 움직였다. 엄마가 거실 바닥에 신문지를 몇 겹씩 넓게 펼치면 아빠가 그 위로 부르스타와 고기 불판을 설치했다. 엄마는 반찬을 식탁 착착 올려 두었다. 사과, 귤, 단감을 한입 크기로 잘라 마요네즈에 걸쭉하게 버무린 사라다. 액젓과 고춧가루 넣고 대충 섞은 파채, 알맞게 익어 적당히 숨이 죽은 새빨간 김치, 오동통한 새송이버섯이며, 동그란 모양으로 잘려 겹겹이 속살을 드러낸 양파와 각양각색의 모둠쌈. 나와 오빠는 준비된 반찬들을 신문지 위로 옮기며 눈치껏 움직였다. 모든 준비가 끝나고 엄마가 까만색 봉지를 냉장고에서 꺼내오면 삼겹살 파티가 시작되었다. 아니, 정확히 말하자면 삼겹살과 목살 파티다. 나는 삼겹살 비계를 먹지 못하는 아이였다. 삼겹살 비계 부분 떼어내 버리고 살코기 부위만 먹었다. 지저분하게 먹지 말라며 엄마에게 등짝을 몇 번 맞는 모습을 보더니 언제부터인가 아빠는 목살을 함께 끊어왔다.


 우리는 삼겹살과 목살이 지글지글 나란히 구워지는 모습을 나이아가라 폭포 구경하듯 넋 놓고 구경했다. 자신의 고기를 찜해놓고 파채로 입안을 씁쓸하게 만들며 빠짝 구워져 갈색으로 변하는 시점을 기다렸다. 요리와 고기 굽기는 전혀 다른 영역이었다. 라면도 잘 못 끓이던 아빠는 고기 구울 때만큼은 날카로운 눈매와 날렵한 손목 스냅을 장착했다. 정확한 타이밍에 고기를 뒤집어 새어 나오는 육즙을 사전에 차단했다. 가장 적당히 익었을 때 솜씨 좋은 재단사처럼 숭덩숭덩 고기를 잘라내어 불판 끄트머리에 상추 한 장을 놓고 그 위에 가지런히 늘어놓았다. 참기름에 푹 절인 소금에 고기를 콕콕 찍어 성급하게 입안에 넣자마자 쫀득한 고소함이 밀려 들어왔다.


 우리 남매는 주말마다 돌아오는 고기 파티를 손꼽아 기다렸다. 엄마는 다 먹고 난 후 기름 처리가 귀찮다고 매번 투덜거렸지만, 가족들은 아랑곳하지 않았다. 살짝 경사가 있어 흐르는 기름을 종이컵 안에 모을 수 있는 신기한 불판은 어느새 전기 그릴로 바뀌고, 삼겹살 파티는 10년 남짓 계속되었다.      






 주말마다 돌아오던 고기 파티는 나와 오빠가 성인이 되어 친구들과 소주 한 잔에 삼겹살을 먹고 들어오기 시작하며 점점 뜸해졌다. 우리는 엄마, 아빠 둘이서 프라이팬에 간단히 고기 구워 먹은 흔적을 이따금 발견했다. 그러던 어느 날, 엄마가 갑자기 뇌출혈로 쓰러졌다. 의식이 돌아올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병원에서는 고개만 저을 뿐이었다. 중환자실에 엄마를 홀로 남겨놓고 아빠, 오빠와 나는 드럼통이 놓인 허름한 삼겹살집에서 다시 마주했다. 평온한 가족 주말을 책임지던 삼겹살이 눈앞에서 여전히 지글거리며 타올랐지만 모두 고기 앞에서 침 대신 슬픔을 뚝뚝 떨어뜨리고만 있었다. 침묵 속에서 소주잔에 투명한 소주가 채워졌다. 아빠는 술잔을 부딪치지 않고 혼자 한 잔을 쑥 들이켜고 삼겹살 한 점을 무심히 입에 넣었다. 그리고 어렵게 준비한 이야기를 시작했다. “엄마는 걱정하지 마라. 아빠의 아내니까 내가 책임질 거야. 그러니까 너희는 학교 잘 마치고 나중에 돈 벌면 그때 엄마 병원비만 조금씩 보태주면 좋겠다.” 엄마의 뇌수술에 큰돈이 들었고 앞으로도 수술이 남아 있다고. 중환자실에서 나오면 다달이 몇 백씩 간병인비와 병원비가 필요할 것이라 담담히 전했다. 우리 남매는 앞다퉈 당장 일을 해 살림을 보태겠다고 외쳤다. 그러자 아빠가 말했다.     



“너희, 내리사랑이라는 말 들어봤니? 부모는 자식을 조건 없이 사랑할 수 있지만 젊은 너희가 그렇게 부모를 위해 청춘을 바치는 것은 생각보다 쉬운 일은 아니야. 아빠는 엄마 쓰러지고 밥도 안 먹고 몇 날 며칠을 술만 마셨어. 그러다 어느 날 아침 일어났는데 이러다 죽겠다 싶더라. 아빠마저 쓰러지면 너희가 어떻게 살아갈까 생각하니 정신이 번쩍 들더라. 그 길로 나가 요리책을 사서 태어나 처음 국을 끓여 먹었어. 살아 보려고. 아빠도 엄마와 너희를 책임지며 열심히 살아갈 테니 너희도 너희가 해야 할 일을 하는 거야.”     



 아빠는 늘 자상했지만 진지한 얘기에는 소질이 없었다. 그런 그가 용기를 내어 같이 살아가자고 힘주어 얘기하고 있었다. 얘기하는 동안 선택받지 못한 삼겹살이 타닥타닥 타들어 갔다. 신나게 삼겹살을 구워주는 아빠는 없었지만 한 가정을 그 어느 때보다 더 무겁게 책임지려는 아빠는 있었다. 따뜻했던 시절을 함께했던 삼겹살은 그렇게 기름처럼 좀처럼 지워지지 않는 슬픔의 자국에 새로이 자리했다.     






 그날 이후 우리는 삼겹살을 함께 구워 먹지 않았다. 엄마는 그때까지도 차도가 없었지만, 아빠의 바람대로 일상은 슬픔을 조금씩 덮어갔다. 첫 월급날, 나는 퇴근길에 삼겹살을 샀다. 내 손에 들린 검은색 봉지를 보더니 아빠는 잠시 모호한 표정을 지었다. 이내 창고를 뒤져 먼지 쌓인 전기 그릴을 발굴해 냈다. 그날 아빠는 미소를 띠며 삼겹살을 구웠고 부녀는 소주잔을 부딪쳤다. 차갑게 식어 빠진 고기 같았던 냉담한 집에 훈기가 돌기 시작했다.     



 엄마가 외로이 누워 있는 동안 우리 남매는 결혼하고 아이도 낳았다. 그렇게 일상이 흘러갔다. 투병 후 10년이 되던 해 엄마가 돌아가시고, 아빠는 경기도 외곽에 평생 로망이었던 작은 전원주택을 지었다. 그곳에 처음 방문한 날 나는 마당 한 편에 놓인 검은색 대형 그릴을 발견했다. 아빠는 자녀와 손주들을 위해 전기 그릴이 아닌 진짜 그릴로 다시 고기 파티를 시작했다. 새로운 세대와 함께한 삼겹살 파티에서 모두 웃었다. 다 큰 딸은 아빠가 구워주는 삼겹살 비계를 이제는 떼어내지 않고 넙죽넙죽 받아먹었고, 아빠는 딸을 닮아 비계를 못 먹는 손녀에게 정성스레 비계를 분리해 호호 불어 입에 넣어주었다.    





  

 매캐한 연기 속에서 아빠가 어렵게 내뱉었던 내리사랑이란 단어는 마음에 와닿지 못하고 내 귓가에서 흩어졌다. 내리사랑은 들어서 이해되는 말이 아니었다. 이제 알아간다. 엄마, 아빠가 내어준 사랑은 감히 돌려줄 만한 사랑이 아니었다. 철없는 아이였던 내가 자라서 우리 아이들을 바라본다. 아이들을 보며 드는 마음으로 감히 헤아려 본다. 두 분이 우리에게 무한히 내려준 내리사랑을. 주말 저녁마다 분주히 고기 파티를 준비하던 사랑, 애통함에 휩싸여 생을 놓고 싶을 때 누군가를 위해 다시 일어선 사랑. 그 위대한 사랑으로 아이들은 지금 여기에 존재하여 그들을 기억한다. 그리고 다음 세대 아이들에게 그 사랑을 온전히 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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