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남봉 May 14. 2023

우리 사이엔 다정한 말들이 있다.

따스한 주말 오후, 아이는 놀이터에서 메뚜기처럼 폴짝거리고 놀고 있고 나는 놀이터가 한눈에 보이는 카페테라스에 앉아 마음껏 고요를 즐기고 있었다. 잠시 후, 옆 자리에 내 또래로 보이는 엄마들이 삼삼오오 짝지어 앉았다. 그들도 아이들을 놀이터에 풀어놓고 한껏 자유로워졌는지 사춘기 소녀들같이 한껏 흥이 올랐다. 멍 때리고 있다 나도 모르게 그들의 대화에 귀를 기울이게 되었다. 선글라스 뒤로 시선을 감춘 채. 아이들 친구 엄마들인지 학교 얘기, 학원 얘기, 양육 이야기가 주를 이룬다. 남편흉도 빠질 수 없다. (여기선 나도 끼어들고 싶은 충동이 들었다.) 곧이어, 다른 옆자리에 동창들인 듯한 일행이 자리를 잡았다. 40대 후반 정도 되어 보이는 그들도 역시 자녀, 남편 이야기도 하고 맛집이야기도 한다. 이처럼 사람 사이에는 늘 말이 오고 간다.





나도 하루에도 여러 번 각양각색의 사람들과 이야기를 나눈다. 가족들이나 친구들과 시시콜콜한 가벼운 이야기부터 가끔은 인생을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심오한 이야기도 나누어 본다. 회사에서도 일 얘기뿐 아니라 또래 동료들과는 일상도 기꺼이 나누게 된다. 상대에 따라 주로 하는 대화가 정해져 있고, 거기에서 얻는 이득도 다 다르다. 아쉬운 점은 한 조직의 직원이 되고, 아내가 되고, 또 엄마가 되어 가면서 누구와 대화를 하던지 '내'가 중심이 아닌 타인에게 중심이 맞추어져 있는 경우가 많다는 것이다. 



올해 초, 브런치 작가에 도전하면서 맺게 된 인연들과 함께 사브작 북클럽을 시작했다. 처음에는 제대로 참여할 수 있을까 걱정이 되었다. 책을 혼자 읽고 나면 이해 여부와 상관없이 덮으면 끝이다. 하지만, 북클럽은 다른 이들의 말을 경청하고, 내 생각도 잘 정리해 말해야 하는 곳이니 부담스러웠다.(내 어릴 적 별명이 괜히 사오정이 아닌 것을) 부담스러운데 왜 발을 담갔냐고 묻는 이들도 있겠다. 영유아기를 지난 아이들이 스스로 밥도 먹고 옷도 입고 하게 되며 '나'에 대해 사유하게 되는 시간이 아주 조금 늘어났기 때문이리라. 나만을 위한 행위를 한 가지라도 의미 있게 하고 싶었다. 아무리 책을 좋아한들 인형을 앞에 세워놓고 책에 대해 얘기할 수는 없는 노릇이니. 



걱정도 잠시. 우리들의 대화는 단순한 의견 나누기 그 이상이었다. 꽉 끼는 옷을 입은 듯 서툰 줌세상 안에서 우리는 서로를 보듬어 주었다. 따스한 포용에 용기를 내어 주저하지 않고 나만의 소리를 내는데 집중했다. 평소에 다른 이들과 나누지 못하는 말들이 오고 갔다. 가장 좋았던 구절이 무엇인지. 책 속의 주인공이라면 어떤 남자 주인공을 택할 것인지. 그리고 앞으로 '나의' 꿈이 무엇인지. 






우리는 40여 년을 다른 지역과 문화 속에서 살아왔다. 각자의 소중한 경험을 바탕으로 삶에는 다양한 모양이 존재한다는 것을 깨닫고, 서로에게 조심스럽게 다가가고 있다. 꽤나 기분 좋은 조심스러움이다. 

은유작가가 '다가오는 말들'에서 말한다. '상대방의 입장에서 생각하는 사람의 말씨는 다정하니까'

우리는 아주 다정하게 대화를 이어 나가고 있다. 


가족들과, 동네 아줌마들 모임에서, 동창들과의 모임에서 또 일터에서.  이 모든 곳에서의 대화는 유의미하다. 그럼에도 새로운 북클럽 인연이 더 귀중하게 느껴진다. 이들은 잃었던 나를 찾아나가는 여정에 함께하는 동지들이고 우리 사이에 말들에는 다정함이 묻어나니까. 


매거진의 이전글 사브작, 우리는 사유하는 브런치 작가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