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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남봉 May 29. 2023

장비빨 세우는 여자

현미밥이 너무 맛있어서

오늘부터 다이어트 시~~ 작! SNS 광고를 보다 이어트 필수품인 듯 하여 구입한 현미가 당당하게 부엌 한편에서 위용을 뽐내고 있다. 다이어트엔 역시 현미밥이지. 냉동실에 가득 쟁여 놓고 매끼 현미밥을 먹을 요량으로 현미찹쌀까지 야무지게 섞어 3컵 분량의 밥을 지었다. 쫀득쫀득 고소한 구릿빛 현미밥 완성! 밥만 준비했는데도 이미 마음은 5kg 감량 성공이다. 반찬은 닭가슴살 소시지. 좋아하는 진미채도 조금, 시어머님표 파김치까지.  준비는 완벽했다. 식구들과 같이 먹으면 속세(?)의 음식에 손을 댈까 봐 먼저 식탁에 자리 잡고 먹기 시작다. 현미밥은 정성스레 계량까지 해서 130g 퍼담았다.


"엄마는 다이어트 중이라 먼저 먹는 거야." 선언했다. 먹을 땐 건드리지 말라는 일종의 친절한 경고다. 먹다 보니 주먹 한 덩이 만한 현미밥은 금세 동이 나고 반찬이 좀 남는다. 냉동실에 얼려놓으려고 소분했던 현미밥 한통을 져왔다. 이번에는 밥이 남는다. 에라잇. 어쩔 수 없이 새로 산 명란 자반김을 뜯어 부었다. 짭조름한 명란이 입안에서 톡톡 터진다. 먹다 보니 너무 짜다. 급히 밥을 더 넣었다. 그렇게 먹다 보니 어느새 현미밥 두 그릇을 해치웠다. 지나가던 남편이 한 마디 쓱 던진다. "복스럽게 먹네." 

다이어트용으로 야심 차게 '내돈내산' 구입한 현미밥이 리어 살을 찌우는데 일조하다니.




자랑은 아니지만 늘 마음만 앞서서 소위 '장비빨'세우는 사람이 바로 나다.


다이어트 장비빨이 단연 으뜸이다.

그중 하나는 실내 자전거. 구입 전 구매 리뷰를 읽으며, '아니, 왜 사놓고 옷걸이로 쓰냐'며 쯧쯧 했던 나 자신을 매우 친다. 민 옷걸이로 쓰이는대는 다 이유가 있을터. 아무 옷이나 턱턱 걸어놓기 제격이다.


체지방을 측정해 준다는 똑똑한 체중계는 또  어떻고. 몇 번 사용하다 자꾸 선을 넘으며 내 체지방 가지고 왈가왈부하길래 삐져서 처다도 안 보고 있다. 


레깅스도 빠지면 섭섭하다. 1+1 행사 때마다  '어머, 이건 사야 해!' 하며 사모은 레깅스가 이고 여 부여 정림사지 오 층 석탑을 넘을 기세다.


이번에도 요란법석하게 다이어트한다고 난리 치며 장비빨  세우다 또 한 번 머쓱해지고 말았다. 현미밥이 이리 맛있을 줄 알았나.






무구한 장비빨 역사를 자랑하는 다이어트와 다르게 다행히도 글쓰기로는 아직까지 크게 장비발을 세우지 않고 있다. 글쓰기 위한 책상을 사고 싶어 드릉드릉 시동이 걸려 몇 번이나 가구점을 방문하고 심지어 결재 직전까지 갔다. 실없는 농담 치듯 가볍게 시작하고 어이없이 끝내는 다이어트와 달리 글쓰기는 장비를 갖추면 잘 써야 된다는 강박에 시달릴 것만 같았다.  책상이 없어서. 노트북이 없어서.라고 비겁한 변명이라도 하고 싶은 모양이다.


조금은 작가다운 마음가짐과 실력을 가진 자가 되어 장비빨 잔뜩 세우러 구점 문을 힘차게 열리라. 늘도 현미밥 두 그릇을 해치우며 다짐해 본다. 언젠가는 나만의 공간에서 신명 나게 키보드를 두드리고 아하는 책들로 탑을 쌓겠노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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