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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남봉 Jun 10. 2023

벗들을 만나러 갑니다.

똑똑해지기 참 쉽죠

'지이이이이이이잉' 진동이 울린다. 어설프게 아침의 모습을 하고 있는 새벽 6시 30분. 꾸물거리다 퍼뜩 깨닫는다. 아, 오늘 모임~! 갑자기 몸에 용수철이 탑재된다. 띠용~~~ 하고 발딱 몸을 일으켰다.


같이 꼭 껴안고 자는 잠귀 밝은 둘째 위해 모든 준비물은 거실에 전날 옮겨 두었다. 살금살금 고양이 걸음으로 우아하게 침실을 빠져나갔다. 주섬주섬 옷을 챙겨 들고 욕실로 가서 예쁘게(?) 단장했다.




잠시 후, 주말만 일찍 일어나도록 설정된 첫째가 기상했다.

"굿모닝, 오늘 무슨 날인지 알지?"

"그럼요, 오늘 엄마 독서모임 이모들 만나러 가는 날이잖아요. 같이 공부도 하고."

"공... 부? 그.. 그래 공부도 하지~~~"

그래, 아들아. 에미 인생 공부하러 간다. 몇 주전, 이번주말에 자리 비워야 한다는 청천벽력 같은 말을 아이들에게 전하며 엄마도 이제 꿈을 위해 새로운 공부를 해야 한다느니 뭐 그런 말을 구구절절했던 것 같기도 하다.




약속 장소인 용산까지 가는 데 걸리는 시간은 한 시간 반. 빨리 나서야 하는데 책을 한 권 넣느냐 두 권 넣느냐 난제에 빠져 우물쭈물거렸다. 학창 시절에도 다 보지도 못할 거면서 도서관  때 가방에 책 10권씩 넣고 다니던 열정녀. 옆에서 현실주의 남편이 소화기처럼 무모한 열정을 꺼주었다.

"어차피 다 못 봐. 한 권만 넣어."

'예이~'사또  말  듣는 이방처럼 충심 가득하게 답한다. 오늘 하루는 남편에게 아이들을 온전히 맡겨야 하니 말을 잘 듣기로 한다.




지난 모임에는 아침을 차려주다 생각보다 늦게 도착했다. 전략을 바꿨다. 새벽 배송으로 남편이 할 수 있는 몇 안 되는 요리인 냉동밥을 주문했다. 저녁은 데우기만 하는 영양만점 갈비탕이다. 아이들 밥 걱정은 이제 안드로메다로 날려 버리자.




잠시만 안녕. 엄마 똑똑해져서 돌아올게.

문을 나서는 순간 남봉으로 변신 완료.


마침 버스가 바로 왔다. 모두가 합심하여 우리 만남을 돕는구나. 멋대로 생각하며 버스에 올라타 기사님께 큰 소리로 인사했다. 저 아줌마 아침부터 텐션 좋다고 하시겠다. 이른 아침에도 지하철은 많은 이들을 머금고 있다. 아싸. 자리다. 하고 달렸지만 아뿔싸. 임산부석이네. 내 배를 쓰윽 만져본다. 가능하겠는데. 앉고 싶은 유혹을 떨쳐내고 다른 칸으로 이동했다. 이내 자리가 났다. 또다시 아싸. 앉아서 책도 읽고 글도 쓰고 갈 수 있겠구나. 잠시나마 나만의 방이 생겼다. 사방은 뚫려 있지만 착한 사람 눈에만 보인다는 투명막을 사방에 치고 몰입하기 시작한다.




깜박 낮잠에 들었다 깬 것처럼 정신 차려보니 곧 용산이다. 나의 벗들이 산 넘고 물 건너 모여들고 있는 이곳. 하루 종일 내린다던 비도 내리지 않고 화창하기만 하다. 역시 하늘도 우리를 돕는다. 5분 후, 그녀들을 만나 엄청나게 똑똑해질 예정이다. 수많은 글쓰기 고민과 책 이야기. 살아가는 이야기. 그리고 위로와 격려의 대화. 우리의 말과 손짓과 웃음이 겹겹이 쌓여 에너지가 된다. 이보다 더 깊은 공부가 있을까. 다행히 똑똑해져서 온다던 약속을 지킬 수 있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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