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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남봉 Jul 30. 2023

비교하지 말아요

방학을 맞이해 초5, 초1 아이들이 본격 요양 모드에 들어갔다. 일주일 넘어가니 방 안이 우주 대혼돈 상태다. 참다가 한 마디 했다.

"애들아, 방 좀 치우자. 어떻게 너희들 방보다 장롱 정리한다고 난리통인 안방 더럽니!!!"

엥?

첫째가 배고픈 하이에나처럼 눈을 번뜩였다. 

"그래요~ 안방보다 깨끗하니까 그냥 둬도 되겠네요~~ 엄마는 방 좀 치우세요~~~"


아뿔싸. 또 헛소리가 튀어나왔다.

잔소리를 계속하자니 스스로도 어이없어 그만두었다. 비교법을 쓰면 안 되는 여자가 방심했다.




고등학교 시절, 비교하다가 망신당한 적이 있다.

다니던 고등학교는 동아리가 활성화된 학교였다. 벽이 높은 동아리를 넘봤다가 보기 좋게 떨어지고 난 후 친구, 선배들과 합심하여 새로운 동아리를 창단했다. 웬만한 동아리는 이미 현존했기에 특이한 독일어 노래부로 정했다. 정체성 의심을 받으면서도 아랑곳하지 않고 독일어 노래와 요들송을 배우러 다녔다. 매년 개최되는 교내 축제에서 노래는 어설프게 불러 젖혔지만 소속감과 유대감은 점점 높아져갔다. 2학년이 되자 입시체제에 돌입한 고3선배들이 결연하게 동아리 운영 전권을 물려주었다.


번째 참여하는 축제 공연이 코 앞으로 다가왔다. 밤늦게까지 야자를 해야 하는 빡빡한 일정이었지만 식사 시간을 줄이고 틈틈이 연습을 이어갔다. 공연을 앞두고 1학년들이 연습에 무더기로 지각을 하거나 나타나지 않는 일들이 비일비재해졌다. 연습 와서 가만히 있는 아이들도 있었다. 가뜩이나 부족한 실력인데 공연을 무사히 치르기 힘들겠다 싶었다. 2학년들끼리 모여 불성실한 1학년들에게 한 마디씩 하자고 의견을 모았다.


인상 더럽다고 자부하는 친구가 1학년들을 동아리방으로 소집했다. 그녀가 먼저 시작했다.

"너희는 연습에도 맨날 선배보다 늦고, 못 오면 못 온다고 미리 얘기를 해줘야 할거 아니야!"

선도부인 친구는 연습 와서 다리 꼬고 앉아 아무것도 안 하는 수동적인 태도를 지적했다.

목소리만 큰 친구는 "너희는 정말, 어, 진짜, 어, 뭐 하자는 거니!!" 하고 큰 목소리를 자랑했다.

2학년들이 7명이나 있었기에 굳이 나서지 않았다. 동생도 없는 내가 어린애들을 뭐라고 다그쳐야 할지 난감했다. 연년생 오빠와의 전투로 다져진 샤우팅 솜씨와 괴력은 쓸모없었다. 

나 빼고 모든 2학년들이 잔소리를 마쳤다. 자기 소임을 다한 정년 퇴직자들처럼 나를 쳐다보았다.

선도부 친구가 옆구리를 찔렀다. 뭐라도 말하라고. 곤란한 표정을 짓자 귓속말로 알려주었다.

"쟤네들 마이가 너무 작다고 해."

'네 것도 내 것도 작은데?'라고 하고 싶었지만 이미 한 마디씩 한 친구들 입장도 생각해야 했다.

정말이지 이런 일은 구리다고 생각하며 1학년들 앞에 나가 말했다.

"얘들아, 너희들 마이가 내 마이보다 더 커."


갑자기 분위기가 싸해졌다.

고개를 숙이고 있던 후배들이 하나 둘 어깨를 움찔움찔하기 시작했다. 스리슬쩍 손을 뒤로 모아 서로의 손을 꽉 쥐며 웃음을 참고 있었다.


"자자, 이만하고 이따 저녁 연습 시간에는 모두 빠짐없이 오는 거다~!!"

선도부 친구가 1학년들을 서둘러 내보내고 안 보일 때까지 문 앞에서 지켜봤다. 마침내 시야에서 사라지자 선도부애, 험상궂게 생긴 애, 나처럼 기가 좀 부족한 애 모두 정신 놓고 웃기 시작했다.

"야, 니 거보다 작다해야지 크다고 하면 어떡하냐!"

"그래서 내가 안 한다 했잖아!!"

"하긴 니 마이가 더 작은 거 맞아. 양심은 살아있네. 크크크"


우리는 한참을 동아리방에서 키득거리다 나왔다. 어이없는 실수에도 즐거워하는 들을 보며 후배를 심각하게 혼내려던 생각은 없었다는 걸 알았다.  반으로 돌아가던 1학년들도 복도에 멈춰 서서 긴장을 풀고 미친 듯이 웃었을 것이다. '어휴, 쪽팔려.'


후배들 군기 잡기는 수포로 돌아가고 우리는 어설픈 모습으로 무대에 올랐다. 음정이나 동작이 맞지 않아도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공연을 마치고 후배들과 뒤풀이를 하며 깊은 얘기를 나눈 기억만 흐릿하게 남아있다.




또다시 다짐한다.

그래, 비교는 영 아니다. 비교는 결과가 안 좋다. 본질을 흐린다. 결정적으로 말이 꼬인다. 비교 의미가 없는 두 대상을 억지로 엮을 때 그렇다. 학교와 가정을 넘어서 전 세계로 망신살 뻗치기 전에  편협한 표현들을 재정비해야겠다.

내일은 깔끔하게 말해 보련다. "애들아, 방에서 벌레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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