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년 전, 아이들과 집 근처 쇼핑몰 안에 있는 버터 매장에 들렀다. 인형을 좋아하는 참새 삼총사(나와 아이들)는 방앗간을 그냥 지나치는 법이 없었다. 인형을 만지작 거리던 아이들은 한 녀석씩 데리고 가고 싶다고 눈을 반짝였고 나 역시 대찬성이었다. 남편의 잔소리가 들리는 듯했지만 미래의 삼총사가 감당할 터였다.첫째는 큰 파란색 펭귄 인형을 둘째는 작고 귀여운 토끼 인형을 골랐다.
첫째에게 펭귄인형은 뒤늦게 생긴 애착인형이 되었다. 오빠의 펭귄 사랑이 부러웠는지 자기가 고른 토끼인형은 내팽개친 채 둘째가 남의 떡, 아니 오빠 펭귄을 탐하기 시작했다. 호시탐탐 기회를 노려 펭귄을 가져가서 놀고 있다가 오빠에게 혼난 것이 한두 번이 아니었다. 그러다 둘째가 독감에 걸려 비실비실 하던 날, 첫째가 고심하더니 불쌍해 보이는 동생에게 펭귄인형을 며칠간 빌려주었다. 그 이후 둘째는 고난을 함께 이겨낸 펭귄인형과 진짜 사랑에 빠졌고 사달라고 조르기 시작했다. 마침내 집에 한마리가 더 입양되었고 두 남매에 이어 펭귄 남매를 키우게 되었다.
내 집 마련에 성공한 동생 펭귄 '펭구'
이 두 녀석들은 코로나 시절, 집에만 있는 우리 아이들의 든든한 친구가 되어주었다. 특히 둘째는정성스레 동생 돌보듯 핀도 꽂아주고 이불도 덮어주고 여행에도 항상 데리고 다녔다. 심지어 작년 크리스마스 선물로 펭귄집(정확히는 강아지 집)을 주문했다. 강아지 한 번 키워본 적 없는 우리 집에 펭귄집이 생겼다. 아이들 품에 안긴 모습을 보며 그저 귀엽다 정도로 생각했던 펭귄들이 우리가족과 모든 걸 같이하고,함께 놀며 펭귄 흉내도 자주 내다보니 어느새 나도 펭귄들을 진짜 자식처럼 대하기 시작했다. 반려인형이 된 펭귄 남매 덕분에 티브이에서 펭귄이 나오면 내 자식이 나온 것처럼 환호하고, 펭귄 스티커를 사모으기 시작했다.
아이를 낳기 전 시누이에게 들었던 이야기다. 남편의 중국 지사 발령으로 해외에 가게 되자 시누는 짐을 줄이기 위해 아이들이 어릴 적 좋아하던 강아지 인형을 버렸다. 이를 알게 된 초등학교 고학년이던 첫째 조카가 펑펑 울어서 결국 같은 걸로 한 개 더 살 수밖에 없었다고 한다. 똑같이 생겼어도 같은 아이가 아니라 첫째의 화는 풀리지 않았다. 그때는 인형 하나에 펑펑 울고 상처받았다고 하는 첫째 조카가 잘 이해되지는 않았는데 이제는 알겠다. 우리 집에 저 펭귄들이 '지금껏 키워줘서 감사합니다. 이제 남극으로 돌아갈게요.' 하며 제 발로 걸어 나가지 않는 이상 내다 버린다는 것은 상상할 수 조차 없다. 가끔 둘째가 묻는다. "엄마 펭구는 하늘나라에 같이 갈 수 없어요? 인형이니까?" 나는 확신에 차서 말한다. "아니, 펭구는 같이 갈 수 있어. 우린 가족이니까."
여행에도 항상 함께 하는 펭귄
미니멀리즘이 유행하는 틈을 타 집에 있는 물건들을 정리하려 폼만 여러 번 잡았다. 막상 버리려고 하면물건들이 말을 걸어온다. 우리 집에 사는 펭귄 남매처럼.아빠가 인도 여행 가서 사 온13년 된 스카프를버리려 손을 댔다가딸 주겠다고 아줌마들 틈을 비집고 들어가 사 오는 모습이 떠올라 다시 옷장에 넣었다. 더 이상 맞지 않는 작은 원피스는한때는 나도 이런 몸매였다고 할머니가 되어서도 젊은 시절을 기억하고 싶어 버리지 못하고 있다.
어떤 물건에는 사연이 있고 추억이 있다. 물건 없이는 그 안에 담긴 스토리를 기억이나 빛바랜 사진에만 의존해야 한다. 그러다 잊히겠지. 아직은붙잡고 싶은 과거가많다. 그 시절을 마음껏 추억하고 기억해내고 싶다. 앞으로 나아가기에도 바쁜 현대생활이지만 멈춰 서서 뒤를 돌아보고 싶다.손끝으로 전해지는 물건의 이야기에 귀를기울이면 맘 한편이 따뜻해진다.
나중에 아이들이 커서 나를 기억하게 만드는 물건은무엇이려나. 한여름을 제외하고 교복처럼 입고 있는 털이 복슬한 플리스일까, 책장에 쌓인 책들일 수도 있겠다. 그리고 저 두 마리 귀여운 펭귄들이 아이들과 아주 오래오래 함께해 그들의 소중한 어린 시절과 엄마를 생각나게 해주는 매개체로 남아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