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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남봉 Nov 20. 2023

콩나물 해장국 끓여 주세요

아침에 눈을 뜨자 해장국이 당겼다. 전날 신명 나게 술을 마셨기에 뜨끈하면서도 시원한 국물로 성이 난 간을 달래야 했다. 아, 해장국 끓여줄 사람 거기 누구 없소. 하고 목 터져라 외쳐봐야 아무도 없다는 것을 일치감치 깨닫고 알코올을 분해하느라 애쓰는 무거운 몸뚱이를 일으켜 세웠다.


아침밥 메뉴는 뭐냐며 뒤에 따라붙는 아이들을 뒤로하고 냉장고 문을 열어 재료를 확인했다. 반봉지 남은 콩나물이 나를 반겼다. 눈곱도 떼기 전에 물을 올려 코인 육수로 손쉽게 맛을 내고 콩나물을 물에 휘휘 저어 두어 번 씻어내 대기시켰다. 보글보글 물이 끓어오르자 순서를 무시한 채 콩나물, 다진 마늘, 파를 때려 넣었다. 우직한 충신처럼 언제나 나를 보필하는 참치액젓 몇 방울 떨어뜨린 후 청양초 고춧가루를 팍팍 넣으면 10분도 안되어 콩나물국 완성!


먹다가 남겨져 찬밥신세가 된 찬밥을 꺼내 데우지도 않고 콩나물국에 풍덩 빠뜨려 한 숟가락 퍼먹었다. 뜨끈한 국물이 온몸에 퍼지며 강아지 마냥 부르르 떨었다. 대충 끓여도 콩나물은 콩나물인지 시원한 이 알코올에 푹 담가진 간을 회복시키는 듯했다. 콩나물 해장국을 만든 선조의 지혜에 감탄을 표하며 한 그릇 뚝딱 해치웠다.


생각해 보면 한 번도 누군가가 해장국을 끓여 준 적이 없다. 내 손으로 아빠나 오빠, 남편에게 끓여준 적은 많아도.


왜 나는 남편에게 해장국 끓여 달라 말하지 못하는가? 


남편이 라면도 망치는 '요똥이'라서 그런가. 해장을 하고 싶지 니맛도 내 맛도 아닌 물에 빠진 콩나물을 먹고 싶은 건 아니니까. 흑심을 품고 최근 남편에게 요리 학원 수강을 권유했지만 그는 단칼에 거절했다. 매정한 녀석.


호박고구마를 외치던 나문희 님처럼 나도 외치고 싶다.

"콩나물 해장국!! 콩나물 해장국~!!"


해장국 한 그릇 얻어먹을 그날을 위해 오늘도 나는 술을 (적당히) 마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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