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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남봉 Dec 20. 2023

학원 상담을 대하는 자세

어느 날 아들이 선언했다.

"나 이제 수학 학원을 좀 다니고 싶어요."

남편과 나는 누워서 뒹굴다 말고 이게 웬 떡이냐며 반색하며 일어났다. 아이는 그동안 영어나 수학학원에 (몹시) 가고 싶어 하지 않아 집공부를 하고 있었다. 학년이 올라갈수록 집공부 유지가 쉽지 않다는 것을 온몸으로 느끼고 있던 중이었다.


5학년에 들어서자 아이들이 하나둘씩 중학교 선행 문제집을 학교로 들고 왔나 보다. 누구는 벌써 중3학년 진도를 나간다더라, 중1학년 수학 선행을 안 하는 아이는 없다고 전하는 아들에게 그렇구나라고 일관했다. 너는 하던 대로 현행에 집중하고 선행을 하고 싶으면 그때 얘기해 달라 했다.


친구들은 학원 숙제가 없는 우리 아들을 부러워하고, 학원에 가기 싫다던 아들은 미지의 세계에 대한 동경인지 학원에 다니는 그들이 부러운 지경에 이르렀다.




여하튼 반가운 아들의 갑작스러운 선언에 우리 부부는 학원을 알아보기 시작했다. 알아보면 금방 등록할 수 있을 거라 순진하게 생각했던 것과 달리 개강일이 정해져서 정원이 찬 학원도 있었고 레벨테스트 없이는 절대 갈 수 없는 학원이 많다는 사실을 새롭게 알게 되었다.


아이가 가고 싶어 하는 학원은 대치동에서 유명하다는 수학 학원의 분점이었지만, 그곳은 일 년에 단 2번 레벨테스트가 있으며, 현행만 한 상태로는 갈 수 없는 곳이었다. 가까운 게 최고다 생각하고 밖으로 나가 집 근처 학원을 둘러보자 했다. 평소에 눈여겨보지 않아 몰랐는데 집 앞에만 스무 곳이 넘는 수학학원이 있었다. 떨리는 가슴을 부여잡고 전화를 돌려보기 시작했다. 선행을 전혀 하지 않은 아이라 하니 원천 차단하는 학원들이 있어 당황했다. 아이가 원하기는 했다지만 부모의 잘못된 판단으로 이어온 학습방법이 아이가 날아오를 기회를 꺾어버린 것은 아닌지 내심 초조했다. 그나마 초보자에게도 환영의 손을 내밀었던 3곳의 학원에서 레벨 테스트 예약과 상담을 잡았다.



학원 상담을 가는 부모의 마음 가짐이란 무엇일까.

어떤 매섭고 날카로운 질문을 던져야 좋은 학원을 고를 수 있을까 고민하다 보니 어느새 첫 번째 학원 앞에 도착했다.

그런데 아뿔싸. 그 학원은 입구에서 슬리퍼로 갈아 신어야 하는 곳이었다. 아들이 먼저 갈아 신고 나를 채근했다. 망설여졌다. 엄마 왜 그러냐며 옷깃을 당기는 아들에게 귓속말했다. 엄마 양말에 빵꾸 났어. 고백했다. 아들이 잠시 멈칫하더니 어깨를 으쓱했다. 그래, 부끄러움은 너의 몫. 발가락을 최대한 안으로 말아 넣고 슬리퍼를 신고 어기적 걸으며 깨달았다. 학원 상담을 대하는 자세 제1단계는 '양말을 확인한다'였다. 


몇 시간 후, 두 번째 학원을 찾았다. 대형 학원으로 알려진 곳이었다. 레벨 테스트만 1시간이라고 했다. 심지어 핸드폰을 엄마에게 맡기고 시험 장소로 가라고 했다. 난생처음 겪는 상황에 당황했다. 이거 뭐 수능도 아니고 핸드폰 제출이라니. 한 시간 후 얼굴이 벌게져서 나온 아들이 나를 보자마자 어깨를 축 늘어뜨리고 말했다. "엄마, 망했어요. 40문제 중 27문제 밖에 못 풀었어요. 여기가 제일가고 싶던 곳인데..."


상담실로 들어가자마자 선생님이 말씀하셨다.

"어머니, 여긴 20점 이하면 탈락이에요." 

순간 정신이 혼미했다.

"떠.. 떨어진 건가요." 

"아니요. 그건 아니고요."

한국말은 끝까지 들어봐야 한다지만 가슴이 두근거렸다. 아이 점수에 연연하지 않는다고 생각하던 나였는데 왜 마음이 나대는지 알 수 없었다.

"원래 학원을 처음 온 아이들이 문제 유형을 몰라서 많이 틀리기도 합니다. 경시문제도 포함되어 있었어요." 

"그럼 몇 점일까요."

"62점입니다."

선생님의 서론이 왜 그리 길었는지 점수를 듣고 또 깨달았다. 학원 상담을 대하는 자세 제2단계는 '아이의 점수에 당황하지 않는 것'이었다.

아 절반 이상은 맞았군요. 다행이네요. 하며 인자한 어머니의 웃음을 보여드렸다.


상담을 마치고 나오자 동생과 장난을 치고 있던 첫째의 얼굴이 다시 시무룩해졌다.

"엄마 뭐래요. 망했다고 하죠. 여기 못 다니는 거죠." 

"아냐, 너 잘했던데? 심지어 마지막 반도 아니래. 5개 반중 4번째 반이래! 학원 안 다닌 거 치고는 잘했다더라." 호들갑을 떨며 말했다.

아이의 얼굴에 그제야 화색이 돌며 아빠에게 전화해서 62점의 높은(?) 점수를 자랑했다.


레벨테스트 후 파티현장

흥분 상태의 우리는 파티를 하러 갔다. 긴 시간 테스트를 보고 와서 수고했다는 의미에서, 그리고 집공부를 꾸준히 해와서 꼴찌반(?)에 들어가지 않을 수 있었던 것을 축하하는 의미에서.


며칠 후 세 번째 학원에서 레벨테스트를 본 후 아이는 62점 받았던 학원을 최종 선택했다. 대형학원이라 수업시간도 길고 숙제도 많을 건데 괜찮겠냐는 우리의 걱정 어린 시선에 코웃음 치며 아이는 말했다.

"엄마, 저도 이제 이 정도는 해줘야죠"




마지막으로 학원 상담을 준비하는 마음 가짐 3단계. 어디서든 아이가 잘할 것이라는 믿음으로 보낸다. 학원을 다녀보니 아무리 커리큘럼이니 학원 시스템에 대한 설명을 들어도 어디가 최고의 학원인지 모르겠다는 거다. 학원마다 장단점이 있어 보였고 어느 학원이 우리 애와 맞을지 알 수가 없는 노릇이었다. 그저 아이에게도 의견을 묻고 어느 학원이던 아이가 잘할 것이라고 굳게 믿는 것이 정신 건강에 좋다는 것을 깨달았다.




나는 안다. 수학 잘하고 싶은 마음이 그리 길게 가지는 않을 것이라는 것을. 마흔 넘은 나도, 쉰이 다 되어 가는 남편도 작심삼일 하는 일이 수두룩 한데 아이는 오죽하겠는가.


그래도 어린이집 가기 싫다고 울고불고 도로 위에 드러누워 닭똥 같은 눈물 흘리던 네가

학교 가기 싫다고 아침마다 전쟁을 치르던 네가

이제 어느덧 남들 하는 거 흘깃 보며 살길 찾아 나서려는 모습이 애잔하고 고마웠다.


앞으로 수학왕이 될 거라며 어렵다는 최상위 수학책을 스스로 사놓고 어렵다고 발을 동동 구르는 아이의 모습에,

장차 수학왕이 되실 몸께 퇴근 후 수학 숙제 했는지 묻었더니 숙제를 몰라 안 했다고 당당하게 말하는 엄청난 모습에,

속이 터지려다가도 멋쩍게 웃는 미소에 사르르 녹는다.

그래, 오늘 하루 잘 보냈니 사랑한다 하며 엉덩이 토닥여 주고 방 안으로 들여보낸다. 그래도 할 건 해야지.


언젠가 다른 학원도 알아보러 다니겠지. 나만의 학원 상담을 위한 자세 3단계를 되뇌며 그때를 준비해야겠다.


아무튼 이렇게 첫 학원 보내기 성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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