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동안 글을 완성하지 못했다. 아니 않았다고 하는 편이 더 솔직하겠다. 바람에 쉼 없이 나부끼며 춤을 추어대는 가게 앞 풍선 인형 같은 하루를 살았다 해도 아주 잠깐의 여유는 늘 주어졌으니까. 자투리 시간을 글 쓰는데 할애하지 않았을 뿐이다. 어린 시절 꿈이 작가였다 한들 수십 년 만에 처음 쓰는 글이었는데 고작 한 달 남짓 쓰지 않는다고 왜 이리 목에 가시 박힌 것처럼 껄끄러웠는지 알지 못한다. 글 쓰는 행위가 그리우면서도 두려웠다. 놓지 못하고 어설프게 옷자락을 붙잡고 매달렸다.
해가 바뀌자마자 10년 간 있던 부서를 떠나 새로운 부서로 이동했다. 인수인계 기간은 단 3일. 그마저도 예기치 못하게 입원하느라 전임자를 하루 밖에 못 만난 상황이었다. 그도 나도 기존 업무를 서둘러 정리해야 했기에 한 시간 남짓 인수인계를 받고 시작한 새로운 일. 야근과 퇴근 후 재택근무를 반복하며 아이들에게 소홀해지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일에 매몰될수록, 거대한 조직 속 작은 먼지 같이 스스로가 하찮게 느껴질수록 나를 찾고 싶다는 생각에 책을 집어 들고, 글을 써보려 발버둥 쳤다. 아이들이 불러도 건성으로 대답하고 '엄마, 책 좀 읽자. 글 좀 쓰자.'라고 대단한 작가님인 양 시큰둥하게 반응했다.
무채색의 직사각형 지우개 같은 평범한 밤이었다. 둘째 아이와 함께 작은 블록을 치우다 우연히 서로의 옷에 블록이 들어갔고, 그를 계기로 서로 옷에 블록 넣기 게임이 시작되었다. 10분 간 쫓고 쫓기는 대추격전을 벌이며 새우처럼 허리를 굽혀 깔깔대고 웃던 그날 밤. 아이가 자면서 내 손을 꼭 잡고 말했다.
"엄마, 오늘 너무 재미있었다. 그렇지? 우리 내일 또 하자. 나 오늘 정말 행복했어." 아이의 얼굴이 검푸른 밤 꽉 찬 샛노란 달처럼 밝았다. 고작 10분에 세상을 다 가질 수 있었던 아이였다. 그날 밤은 아이에겐 무지개 빛이었다.
아이들이 영유아였을 때보다는 여유가 생기긴 했지만 숨 가쁜 삶이 어디 가겠는가. 어느 영역에서라도 내 삶에 쉼표가 지워지고 있다고 느껴지면 악바리처럼 홀로 시간을 원했고, 아이들의 요구가 귀찮게 느껴졌음을 시인한다.
진심을 반짝이는 눈에 담아 발사하는 아이를 보며 너희를 통해서도 나를 찾을 수 있음을 깨달았다.
살아가며 쓰고 읽는 일을 멈추고 싶지 않기에, 어떤 이유로 그 행위를 쉬어가던지 온몸이 낙엽처럼 바스락거릴 것이다. 그저 멈추지만 말자고 다짐해 본다.
대신 아이들이 내게 달려오는 순간은 더욱 꽉 움켜쥐어 보려 한다. 읽던 책을 내려놓고 노트북을 조용히 닫고 아이의 얼굴을 읽고 우리의 시간을 써 내려가는데 더 열중하겠다. 책에서만, 써 내려가는 모니터에서만, 삶의 의미를 찾을 수 있는 것은 아님을 아이들이 수시로 상기시켜 주기에. 손바닥 만한 작고 빛나는 조약돌 같은 아이들 얼굴에 어쩌면 더 큰 삶의 의미가 박혀 있음을 느낄 수 있기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