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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남봉 Oct 25. 2023

돌아가신 엄마가 꿈에 나온 이유

어제는 엄마 기일이었다.


매년 기일이 있는 직전 주말에 친정 오빠네와 함께 아빠댁에 모여 추모예배를 드렸다. 가을비가 유난스럽게 내리던 날 장례를 치렀기에 아침 공기에 차가운 냄새가 날 때 즈음이면 엄마의 기일이 먼저 떠오르곤 했다. 이번 연도는 무슨 정신이었는지. 이맘때 일이 바쁜 건 매년 같았는데, 아이들은 1년 새 훌쩍 자라 손도 덜 가는데. 지난주 화요일, 헐레벌떡 출근하자마자 울린 핸드폰에 친정 오빠 이름이 뜰 때까지만 해도 아무 생각이 없었다.


"이번 주말에 아버지댁에 올 거지? 토요일, 일요일 중에 너희 편한 날짜로 골라."

"오빠 이번 주말에 아빠 뵈러 가게?"

"담주가 엄마 기일이잖아."

서늘한 날씨에도 갑자기 이마에서 땀이 나는 것 같았다.

"어머, 내 정신 좀 봐. 나 깜박한 거 있지."


아이들이나 가까운 친구들 생일은 줄줄 외면서 엄마가 돌아가신 날을 잊다니. 아직도 전화를 받고 달려가던 그날이 생생한데. 갈아입을 새도 없이 입고 갔던 회색 트레이닝복. 병원이 있던 경기도에서 서울 장례식장으로 가던 구급차의 덜컹거림. 늦은 시간까지 켜진 환한 불빛과 어둡게 내려앉은 침울함이 공존하던 장례식장의 냄새까지. 하나도 빠짐없이 기억나는데 어떻게 잊을 수 있을까.


하루종일 그 생각에 사로잡혔다. 별거 아닌가 싶다가도 가볍게 생각하자니 죄책감이 들었다.


그날 밤은 아이들 재우다 까무룩 잠이 들었다. 오랜만에 엄마가 꿈에 나왔다. 꿈속에서 신혼인 나는 찢어지게 가난하여 바람이 줄줄 새는 작은 창문 한 개만 있는 단칸방에서 살고 있었다. 엄마는 휴지와 식재료를 잔뜩 사서는 집들이를 왔다. 기껏 키워놨더니 이런 집에서 사냐는 듯한 책망의 눈빛이 느껴졌다. 또 오겠다면서 나서는 엄마의 뒷모습을 바라만 보다 잠이 깼다. 이틀 뒤, 또다시 꿈에 엄마가 나타났다. 한 주에 두 번이나 엄마 꿈을 꾼 건 처음이었다.


지난 1년 간 꿈에서 한 번도 만나지 못한 엄마를 만나니 반가우면서도, 혹시 서운했나 싶은 생각도 들었다. 영원히 철들지 않을 것 같다가 나이 들며 사람답게 사나 싶었는데, 요즘 또 정신 못 차리고 일이나 양육에 자꾸 찌들어만 가는 나에게 한소리 하고 싶었나 넘겨짚어 본다. 아빠가 꿈 얘기를 듣더니 말했다. "너보고 기일 까먹지 말라고 계속 나왔나 보네." 그 말이 맞는지 추모예배를 드리고 난 후에는 꿈에 찾아오지 않는다.


슬픔이 옅어진 걸까. 더 이상 그리움에 소리 내어 울지 않은지도 오래되었다. 살면서 느끼는 모든 슬픔을 기쁜 일들로 희석하지 못하고 이고 지고 살 수는 없다.


그럼에도 일 년에 하루쯤은 젖은 마음으로 엄마를 생각할 수 있으면 좋겠다. 함께 했던 빛나는 순간, 아팠던 기억들 모두 질척거리며 만져보고 싶다. 옅어지는 슬픔에 다시 색을 칠하고 싶다. 뒤늦게 엄마의 시간을 사는 내게 필요한 작업이다.


내년에는 코 끝에 느껴지는 가을 공기를 마시며 엄마를 가장 먼저 떠올릴 수 있기를 바래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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