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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남봉 Jan 01. 2024

2024 ONE WORD "여유"

새해마다 우리 가족이 하는 일이 있다. 일명 "작은 행복팀 새해 목표 세우기". 신혼 때 남편과 그렇게 약속했더랬다. 우리는 작은 것에도 행복을 느끼며 살아가는 부부가, 가정이 되자고. 매년 해왔듯이 2023년에도 새해 계획을 세웠다. 가정 내 전반적인 계획을 세우고, 개인 목표를 정했다. 나의 목표 중 하나는 "조급함 내려놓기"였다. 천성은 나무늘보처럼 느려터졌는데, 세상 돌아가는 시간에 맞춰 살다 보니 가랑이가 찢어질 것 같아 세운 목표였다.


어제 한 해의 마지막날을 보내며 아이들과 함께 식탁에 둘러앉아 이루었던 계획, 아쉬웠던 계획에 대해 얘기해 보는 시간을 가졌다. 아이들도 우리 부부도 일부는 지켰고 일부는 시작도 못했다. 

"엄마는 조급함 내려놓기 성공했어요?"라는 아이들의 물음에 부끄럽게 답했다.

"아니, 엄마는 그러지 못한 거 같아. 그래서 새해 목표를 다시 여유로 정했어."


100m 달리기 하던 것을 잠시 멈추고 싶은 것은 아니다. 새해에 시작하고 싶은 일을 생각하면 두 손가락으로 세어도 모자랄 지경인데 멈추다니 그건 아니 되올시다. 


무엇을 하던 마음의 여유를 찾고 싶은 것이다. 


아이들 등교 준비할 때 조급함은 하늘을 찌른다. 군대처럼 박수를 짝짝 치며 "Move, Move, Move!!!" 할 때가 있질 않나, "엄마 옷 갈아입고 나올 때까지 준비 안된 사람은 내복 바람으로 그냥 나간다!"라는 치사한 협박까지. 아이들 습관 형성에 잔소리가 필요할 때도 있다지만 문제는 내 마음이다. 제일 거북이처럼 준비할 인간이 더 어린 인간들 키워내겠다고 본성을 거스르며 행동하다 보니 숨이 턱끝까지 차오른다. 


직장에서는 조급병이 제일 심해진다. 하는 일에 대한 욕심도 있지만, 아이 키우는 엄마들은 이래서 안 된다는 소리를 듣지 않기 위해 더 이 악물고 일하는 것도 있다. 맡은 행정업무의 특성상 한 사람의 인생을 바꿀 수도 있는 치명적인 실수가 발생할 수 있기에 초조함은 극대화된다. 이제는 세상이 변해 대놓고 애엄마 운운하며 뭐라 할 사람은 없지만 내 마음이 또 문제다. 


일도 잘하고 싶고 아이들 양육도 잘하고 싶은 마음이 욕심이라는 것을 알면서도 내려놓지를 못하니 마음이 틈 없이 늘 북적북적하다. 


첫째 출산 전 '하이힐 신고 달리는 여자'라는 영화를 본 적이 있다. 곧 내게 닥칠 미래라는 건 상상도 못 하고 희희덕거리며 봤다. 첫째 낳고 복직하며 이 영화가 생각이 났다. 난 운동화 신고 달리는 여자구만 하며 단화 신고 종종걸음으로 동서남북으로 뛰어다녔다. 숨이 가빴지만 속도를 늦추지 못했다. 후에 이 영화의 영어제목을 알게 된 후에 고개를 끄덕였다. "I don't know how she does it." 불가사의한 힘을 발휘하며 우리 부모들은 각자의 자리를 지켜내고 있는 것이다. 


12월 연말을 입원으로 장식했다. 감기 한 번 안 걸리고 입원 한 번 해본 적 없었건만 마흔 살이 되자 몸에서 이런저런 신호를 보내기 시작한 것이다. 여유 없는 삶을 살아온 것에 대한 거울이다. 


새해에는 심호흡을 크게 하고 내가 정한 속도로 걸어가고 싶다. 초인의 힘을 발휘하지 않아도 되는 삶. 여유를 가지면 보이지 않던 것들이 보일 것이다. 


아파 신음하고 있거나 응원이 필요한 지인들. 좀 더 세심한 마음 돌봄이 필요한 아이들. 50대를 목전에 두고 심난한 남편, 연로하신 부모님. 그리고 어쩌면 가장 중요한 읽고 쓰는 삶을 살아가고픈 내 인생길. 


지금까지는 숲이 우거진 시커먼 정글 속을 두 아이를 옆구리에 끼고 목검으로 수풀을 베고 길을 내며 온몸에 상처투성이인 상태로 살아왔다. 이제는 아이들을 내려놓고 양손을 맞잡고 천천히 길을 걷다 보면 잡아먹을 듯이 덤비던 거대한 숲은 새들이 지저귀고 부드러운 흙냄새가 나는 아늑한 오솔길로 변할 것이다. 가는 길에 다람쥐도 구경하고 시냇물에 손도 담가보며 가다 보면 정상이 나올 것이다. 가장 높은 꼭대기일 필요는 없다. 다른 이들보다 늦게 도착해도 상관없다. 우리가 원하는 그 정상 위에 올라서 가슴을 열어젖히고 시원하게 소리 질러 보고 싶다. 

"야-호, 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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