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요일 아침, 게으른 동작으로 아침을 차려내고는 네 식구가 마주 앉아 식사를 시작했다. 평소 나보다 야외활동에 진심인 남편이 못내 자랑스럽다는 듯이 선언했다.
"얘들아, 아빠가 오늘 두 시 반에 집 근처 얼음썰매장 예약했어~~!!!"
반응은 식어빠진 숭늉처럼 미적지근했다. 그나마 아직까지 생기발랄한 어린 막내가 예의 있는 호응을 해주었다. 나는 열과 성을 다해 외쳤다. '난 너어무 가기 싫어. 너무 싫어!!' 아무도 반응하지 않았다. 왜냐하면 이건 내 마음의 소리였기 때문이니까. 딱히 대안 없이 아이들 앞에서 반대를 해버릴 수는 없었다.
사실 나도 남편만큼이나 외향적이고 활동을 좋아하는 사람이지만 유독 신체 활동을 싫어한다. 어릴 적부터 우리 집에서 '하루라도 콧구멍에 바람을 넣지 않으면 못 견딜 기지배' 취급을 당하며 비가 오나 눈이 오나 매일매일 외출을 실천했다. 하지만, 얼음썰매장처럼 단전부터 에너지를 끌어올려야 하는 야외 신체 활동은 상상만으로도 버겁게 느껴졌다. 그래도 어찌하랴. 맞벌이 부부 자녀로 태어나 가뜩이나 평일 야외 활동이 절대적으로 부족하여 만성 비타민 D 결핍에 시달리는 아이들에게 필요한 활동이라는 것을 상기시켜 내고는 마음속의 반항마저 단념했다.
휘적휘적 거리며 무거운 몸뚱이를 겨우 가누며 얼음썰매장으로 향했다. 나와 비슷한 성향을 가진 첫째가 주차장에 도착하자 토하듯 고백했다. "나, 사실 여기 오기 싫었어요. 이 시간에 집에 가서 종이 접기나 더 하고 싶어요. 난 딱 10분만 탈 거예요." 원하지 않으면 조금만 하고 나와 있어도 된다며 첫째를 달래며 몰래 속닥였다. '사실 엄마도 썰매 별로 안 좋아하는데 운동하려고 온 거야.' 그러니 20분만 타고 같이 오손도손 쉬자고 손을 꼭 붙잡았다. 가족 나들이에 물을 끼얹은 건 아닌지 말하면서도 눈치를 보던 첫째의 얼굴이 해 같이 밝아졌다.
벌써 횟수로 3회 차지만 이곳에 올 때마다 부모들의 모습에 경이로움을 느꼈다. 이 중 그 어느 하나 여유로운 평일을 보낸 이 가 있을까. 이리저리 각자의 자리에서 심히 바빴을 그들은 주말 오후까지도 작은 썰매장에서 고군분투 중이었다. 어떤 이는 썰매에 올라탄 아이를 발에 땀이 나도록 끌어주고 어떤 이는 얼음썰매가 익숙지 않은 아이들에게 즉석에서 썰매 잘 타는 법을 강의하고 있었다. 또 다른 이들은 아이들에게 여기를 보라며 연신 핸드폰 카메라를 눌러대며 추억을 기록하고 있었다. 얼음썰매장은 소중한 생명체들을 향한 애잔한 몸짓과 언어가 뒤섞여 스피커에서 흘러나오는 노래와 함께 영화 한 장면 같았다. 누가 시켰다면 저리 열심히 했을까. 본인 힘듦이나 꿈은 잠시 뒤로 하고 미래 꿈나무들의 강인한 체력과 새로운 경험을 심어주고 싶었을 것이리라. 20대에는 이런 끝없는 자기희생의 삶이 기다리고 있다고 감히 가늠이나 했을까. 아이들을 위한 삶은 스스로 선택한 삶의 일부이고, 여기서 느끼는 행복은 몇 가지 단어만으로 정의할 수 없는 기쁨의 집합체이다. 하지만, 이와 별개로 아이를 낳고 키우는 사이 젊음은 속절없이 흘러갔고 늘어가는 주름과 튀어나오는 뱃살뒤로 숨어버린 그 젊음이 아쉽게만 느껴질 때가 많다.
얼음 위 영하에 가까운 날씨에도 땀을 흘리며 아이들을 위해 기꺼이 애쓰는 부모들 위로 성시경의 희재가 흘러나오고 있었다.
그대 떠나가는 그 순간도 나를 걱정했었나요
무엇도 해줄 수 없는 내 맘 앞에서 그댄 나를 떠나간다 해도 난 그댈 보낸 적 없죠
여전히 그댄 나를 살게 하는 이유일테니
절절한 연애 노래지만 얼음 위에 중년 동지들과 함께 서있는 나에게 노래 '희재'는 새삼 다르게 다가왔다. 사각 썰매장 안을 돌아다니는 우리네 모습이 이입되었다. 여기서 그대는 우리들의 젊은 시절이다. 젊은 시절이 속절없이 지나가며 우리를 걱정했을 것 같다. 하지만 우린 젊음이 떠나간다 해도 젊음을 보낸 적이 없다. 젊은 시절의 추억이 우리를 살게 하는 이유일테니 말이다.
연애 노래를 멋대로 중년 아줌마 삶에 끼워 맞추며 혼자만의 상념에 젖어 있을 때 까무잡잡한 구릿빛 피부의 중년 아저씨가 왕년 얼음썰매대회 우승자처럼 엄청난 스피드로 지나가며 얼음을 사방에 흩뿌렸다. 얼굴에 닿은 얼음 조각들이 차갑게 녹으며 현실로 다시 나를 끌어내었다. 저 아버님도 젊음은 지나갔지만 그 마음은 여전하시구나 하고 멋대로 생각해 버리고는 그만 타겠다는 첫째 손을 잡고 휴게실에서 따뜻한 컵라면 하나를 주문했다. 부모들의 무던한 노력을 알아주지는 않더라도 이곳에서 가족과 함께 컵라면처럼 따끈한 추억 하나 가져가면 그걸로 되었다. 지금 이 추억도 노년이 되어 젊은 시절의 찬란한 추억으로 자리하며 나를 살게 하는 이유가 될 테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