때밀이, 그 시원함에 대하여

by 남봉


"너, 때 밀어 봤니?"


애정해 마지않는 회사 선배가 물어봤다. 코로나로 대중목욕탕에 못 간 지 오래지만 이전에는 이따금씩 했다고 고백했다. 기다렸다는 듯이 선배가 고급진 골드색 봉투를 하나 건네었다. 회사 근처에 새로 생긴 1인 세신 샵인데, 지쳤던 어느 날 힐링이 간절하여 검색해서 찾아낸 곳이라고. 반신반의했는데 너무 좋았다고. 너도 꼭 가봤으면 좋겠다며 이용권을 선물로 주었다. 그리고 꼭 천천히 시간 내어 힐링하고 왔으면 좋겠다는 말을 덧붙였다.



선물 받은 이용권은 총 85분 프리미엄 코스로 구성되어 있었다. 적잖은 시간이 걸린다 하여 일부러 일요일 아침 9시로 예약을 잡았다. 미지의 세계에 대한 기대와 살짝 수줍은 마음으로 세신 샵 문을 열었다. 잘 차려입은 안내 직원이 간단한 설문조사를 내밀었고 이내 'Room 3'이라고 쓰인 방으로 안내해줬다. 1평 남짓한 방에는 옷장과 화장대가 있었다. 새로 생긴 곳이라 그런지 모든 물건이 새것임을 티 내며 영롱하게 빛나고 있었다. 탈의 후 안쪽 욕실에서 15분 정도 몸을 담그고 있으면 전문 목욕관리사가 와서 관리를 시작해 줄거라 했다. 방 안 다른 쪽 문을 여니 'ㄱ' 모양으로 생긴 욕실이 나왔다. 한쪽 구석 욕조에 물이 찰랑찰랑 차 있었고 트레이 위로 따뜻한 차가 놓여 있었다. 손 끝으로 만져보니 물 온도는 적당했다. 한쪽 발을 물속에 조심스레 담그자마자 머리끝까지 쭈뼛거리며 전기가 파르르 하고 오르는 느낌이었다. 주말에 홀로 만끽하고 있는 이 자유에 대한 흥분이었을까, 새로운 세계 경험에 대한 짜릿함이었을까.



bathroom-g73cad785c_1920.jpg




15분 후 목욕관리사님이 들어오셨다. 조심스레 베드에 누웠다. 양손에 때수건을 끼신 듯했다. 부끄러움에 눈을 바로 감아 버려 색은 확인하지 못했다. 초록색이었을까, 노란색이었을까. 쓸데없는 생각을 하며 말없이 기다렸다. 이내 관리사님의 익숙한 손놀림이 시작되었다. 까끌거리는 때수건의 느낌이 낯선 듯 반가웠다. 까칠하게 때를 벗겨내는 그 움직임이 부드러웠다. 아이러니하게도 부드러움에 압도당했다. 관리사님은 두 손을 믿음직스럽게 교차하며 내 몸의 묵은 때를 덜어내기 시작했다. 한 면이 끝나자 돌아누웠다. 자세를 고치며 살짝 실눈을 뜨고는 뜨끔했다. 내가 언제부터 제면소가 되었나. 부끄러움도 잠시 싹 밀어버린 몸의 앞판이 아렸다. 후끈후끈 불타는 몸에서 피어난 얼얼한 아지랑이들이 살랑살랑 아른거리며 몸을 간질였다. 묵은 때와 함께 모든 근심도 잠시 날아간 듯 심신이 깃털 마냥 간들간들 흔들렸다.






어릴 적 목욕탕에서 온몸이 벌게지도록 엄마에게 때를 밀리던 기억이 떠올랐다. 엄마는 왜 그렇게 열심히 어린 딸의 때를 밀어줬을까. 아프다고 징징거리던 내 등짝을 때리기도 하고 바나나우유로 회유도 하면서 참 열심히도 나의 때를 벗겨내주었다. 성인이 되어서도 친구들과는 목욕탕을 트지 않았기 때문에 엄마가 아니고서는 때를 밀어줄 사람은 없었다. 하지만, 엄마는 나의 젊은 시절 내내 병상에 있었다. 가끔 대중목욕탕에서 세신 하시는 분께 몸을 맡겨봤지만 애 둘을 낳았어도 세신 하겠다고 열쇠를 맡기러 가는 일이 어려웠다. 몸이 잘 안 불었다고 다시 오라고 퇴장받은 경험 때문일까. 아직 덜 자라 남에게 때를 밀어달라 부탁하는 게 부끄러운 것이었을까. 다른 이들이 때밀이 베드에 여유 있게 누워있는 모습을 멀리서 망설이며 바라보다 대부분은 세신은 못하고 돌아왔다. 그리고는 집에서 엉성하게 때를 밀어왔다.





내 인생 때 역사에 대해 곰곰이 짚어보는 동안 세신이 얼추 끝나가고 있었다. 관리사님의 때수건이 지나간 모든 구석구석이 기분 좋게 쓰라렸다. 한마디로 거하게 시원했다. 한 여름 뜨거운 삼계탕 국물을 먹으며 크아 소리를 내던 아빠가 이런 기분이었을까. 나이 마흔에 때밀이의 시원함을 느끼게 되었다. 때밀이 하나에 어른이 된 기분이랄까. 출근해서 나의 힐링을 위해 아낌없는 후원을 해준 선배에게 전해야겠다.


'때밀이에 중독된 거 같아.'




*사진출처: Pixabay

이전 01화작은 일탈이 소중할 수 있는 이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