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요일 휴가는 옳다.

by 남봉

오래간만에 월요일 휴가를 냈다.

일요일 아침부터 배실배실 웃음이 났다. 알 수 없는 불안감에 휩싸여 두근거림이 있는 여느 주말이 아니다.

"얘들아, 엄마 내일 휴가다~" 있는 힘껏 자랑도 해본다.


월요일 휴가란 커피숍에 앉아 아메리카노 한 잔에 좋아하는 책도 전시해 놓고 브런치에 글을 쓸 수 있는 여유가 주어진다는 것. 아이들은 월요일 1시부터 2시까지 같이 미술학원에 간다. 학원 스케줄이 없는 수요일에 휴가를 냈다면 꼼짝없이 셋이 부둥켜안고 하루를 보내야 했을 거다.

조금 전 신나게 아이들을 내려놓고 학원 앞 아무 커피숍이나 골라 잡아 들어와, 이미 마신 커피를 또 한 번 시키고 노트북을 켰다.





지난 몇 년간 연차 현황을 살펴보았더랬다.

대부분 0.5일(반차)을 썼던 조금은 쓸쓸한 연차 현황. 하루도 빠짐없이 아이들 돌봄이나 병원 방문을 위해 남편과 번갈아 낸 연차들이다. 반차는 유용하지만 일단 회사에 나가야 하기 때문에 반일의 공백을 메워야 해서 더 바쁜 느낌이라 휴가 기분을 내기가 어렵다. 얼마 전 아이들 겨울 방학 맞이해서 큰맘 먹고 3일 휴가 내고 호캉스를 다녀온 게 다이다. 오롯이 나를 위해 친구들을 만나거나 힐링을 위해 휴가를 낸 적은 없다. 오늘 휴가도 사정은 비슷하지만 나에겐 한 시간이 있다.



아침 느지막이 일어나 게으르게 움직여 조미김에 흰밥을 싸서 아침 식사로 대령했다. 맛에 비해 빈약해 보이는 아침 메뉴에 살짝 죄책감이 들긴 했지만 오늘 하루 눈 감자. 아침부터 배송받은 책을 읽기도 하고, 아이들에게 곧 다시 후회해 버릴 잔소리도 소금 치듯 툭툭 쳐가며 오전을 보내다 애들을 꽁꽁 싸매서는 브런치 집으로 갔다.


내 아지트를 그들에게도 오픈했다.


심심한 아침식사에 대한 보상 하기라도 하듯 아이들이 좋아하는 오믈렛과 프렌치토스트를 시켜주고 아메리카노와 코코아도 잊지 않았다. 두둑이 배 불린 아이들을 미술학원에 넣어 놓고 바로 앞 커피숍에 와서 아메리카노를 주문했다. 배부르다. 커피는 이미 30분 전에 먹었다. 그럼에도 허세의 아메리카노를 시켰다. 글을 쓰는 데는 커피가 필수라며.


아이들이 끝나는 시간은 2시. 이제 50분 남았다. (고쳐 쓰다 보니 이제 20분 남았다. 초조해진다.)

한 시간의(남은 20분의) 행복을 어떻게 쓸 것인가.




이 시간 내가 가장 좋아하는 행위들을 위해 눈과 손을 바삐 움직이다. 책 읽고 밑줄 긋고, 아직 글이라 부르긴 부족하지만 꾸역꾸역 써 내려가 보는 나만의 이야기를 순백 모니터에 더해본다. 노트북의 앏은 키보드 느낌이 싫어서 사무실 키보드는 타자를 치면 아래로 쑤욱 들어가며 존재감을 드러내는 두툼한 녀석으로 구비했는데, 오늘따라 얇디얇은 노트북 키보드느낌이 다르게 느껴진다. 실크스카프 위에 놓인 마냥 손가락이 자유자재로 미끄러져 내리며 생각의 속도가 손가락 속도를 따라가지 못해 허덕이는 사태가 나타났다. 역시 키보드가 문제가 아니었군.






잠시 후, 미술을 끝낸 아이들은 아침에 잔소리한 엄마는 온데간데없고 힐링과 홀로의 시간을 통해 정제된 언어를 구사하게 된 베리 나이스한 엄마를 만나게 될 것이다. 모두에게 이득인 한 시간의 마법.


월요일의 휴가는 로마의 휴일보다 달콤하고 전역휴가만큼이나 짜릿하다.

2023학년도에도 잘 부탁해. 내 연차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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