님아, 신발을 짝짝이로 신지 마오.

by 남봉

얼마 전 소식이 뜸해졌던 친구가 톡으로 안부를 물었다. 소아과에서 어떤 엄마를 보니 내 생각이 났다며. 어떤 연유인지는 몰라도 그 엄마가 신발 한쪽은 어그 부츠, 다른 한쪽은 크록스를 신고 왔다고 한다.



놀람도 잠시 한동안 잊고 있던 흑역사가 떠올랐다. 그렇다. 나도 짝짝이 신발 패션을 세상에 선보인 적이 있다. 그날은 무려 내 생일 다음 날이었다.




사회 초년생으로 엄마 보호자로 바쁘게 살아가면서 할 건 다 한다고 연합 신입사원 연수에서 남자친구를 사귀었다. 사귄 지 8개월 정도 지났을 때였다. 생일날 아침, 기분 좋게 전화 통화를 하며 출근하는데 그가 돌을 던지듯 툭 무심하게 물었다.


"생일 선물 뭐 받고 싶어?"

"..........."


난 예나 지금이나 식욕은 왕성하지만 물욕은 없는 처자이다. 결혼식 때는 다이아반지를 받고 싶지 않다고 선언해 남편을 몹시 기쁘게 해 줬으며, 화장품도 가방도 그저 그런 별 관심의 대상이 아니다. 아무리 그래도 생일 당일에 당사자에게 생일 선물을 묻는다니 기가 막히지 않은가. '이 인간이 나랑 헤어지고 싶으면 말을 하던가' 열불이 났지만 속으로 꾹꾹 눌러 삭히며 물었다.


"장난치는 거지? 서프라이즈야?"

"아니.. 진짜 아직 안 샀어. 이따 퇴근하고 사려고."


그때부터 뭔가 꼬였다 싶었다.

퇴근 후 명동에서 만났다. 뭐 먹으러 갈지 묻기에 선물도 미리 안 사, 식당 예약도 미리 안 해. 도대체 뭘 한 건지 속으로 그를 원망했지만 애써 바빠서 그랬을 거라며 이해하려 했다. 그리고 담담한 척 주변을 두리번거리며 고기 파는 곳을 찾았다. 고기를 좋아하는 건 그도 알고 나도 알고 하늘도 땅도 아는 사실이었다.


그런데 그가 갑자기 '저기 가자!' 하며 내 손을 잡아 이끈 곳은 바로.... 명동 칼국수였다. 시그니쳐 빨간 마늘 김치를 먹고 나면 고춧가루가 이 사이사이에 끼어들어 존재감을 드러내고 , 숨을 내쉬면 드라큘라도 물리칠 갈릭파워를 내뿜는 것은 자명한 사실. '여기 맛있잖아.' 하며 해맑은 눈동자를 내비쳤던 그였다. 마치 맑은 눈의 광인처럼. 그리곤 아무 곳에서 커피를 마시며 기억도 안나는 성의 없는 선물을 받았던 것 같다.


결국 그는 피곤하다며 지하철 안에서 먼저 내리는 나를 또다시 해맑게 손을 흔들며 배웅했고, 난 집에 허탈하게 돌아왔다. 이런저런 생각에 쉬이 잠이 오지 않아 새벽녘까지 깨어 있다 결국 늦잠을 잤다. 방문을 두들기는 아빠의 재촉에 허둥지둥 안경을 찾다 포기했다. 마이너스 시력을 뽐내던 나였지만 도망간 안경을 찾을 시간도 렌즈 낄 시간도 없었다. 당시 회사는 딱딱한 마른오징어 같은 분위기여서 지각한다는 것은 오전 내내 칼 같은 비난을 받음을 뜻했기에 1분 1초가 아까웠다. 렌즈를 가방에 던져 넣은 후 아무 옷이나 꺼내 입고 발을 구두에 욱여넣으며 지하철 역으로 달렸다.


급한 마음에 발걸음이 불편한 것은 생각도 못했다. 집에서 지하철 역까지 10분, 그리고 승강장까지 아래로 내려가는데 2-3분 남짓. 뛰며 걸으며 승강장에 발을 내딛자 겨우 안도감이 몰려왔다. 그제야 발이 불편한 것을 느끼고 아래로 시선을 떨구었다. 그리곤 내 눈을 믿을 수가 없었다.


신발이 짝짝이였다.


단아함이 돋보이는 검은색 6cm 구두

오른발은 면접용으로 구비했던 앞코가 둥그렇게 생겨 단정한 느낌이 나는 6cm 구두







뾰족한 앞코와 일렁이는 뱀무늬가 인상적인 플랫 구두



왼발은 앞코가 뾰족한 짙은 보라색 뱀무늬(무려!) 플랫 구두 (실제 신발은 사진보다 더 뾰족했다.)










고개를 들지 못하고 좌우로 곁눈질을 했다. 아직 렌즈를 끼지 못해 사람들의 표정이 보이지는 않았지만(차라리 다행이다!) 나를 쳐다보고 있었음이 분명했다. 세상 멀쩡하게(심지어 다소 얌전하게 생긴 편이다.) 생겨서는 짝짝이로 구두를 신고 나온 여자를 보며 그들은 무슨 생각을 했을까. 맑은 눈의 광녀쯤 되었을 거다.


일단 냅다 계단 위로 뛰어 올라갔다. 그리고 개찰구 구석에서 숨겨지지 않는 발을 숨기려 노력하며 아빠에게 전화를 걸었다.


"아빠, 급해요. 신발장에 있는 검은색 구두 있죠. 그거 한 짝만 있을 텐데 그거 가지고 역으로 와주세요. 신발을 짝짝이로 신고 나왔어요."

"뭐라고??"


아빠는 잠시 침묵했다. 일단 알았다며 전화를 끊으셨다. 그리고 10분 후, 바람처럼 뛰어온 아빠가 내 앞에 나타났다. 까만 봉지에 구두 몇 켤레를 넣어오셨다. 그렇다. 무슨 구두인지 잘 모르니 일단 신발장에 있는 구두는 다 가지고 온 것이다. 그중에 제대로 된 구두 한 짝을 찾아서 서둘러 바꿔 신었다. "아빠, 감사해요!" 어릴 적부터 화 한번 안 내고 늘 딸바보 모습을 보여 주던 아빠에게서 어두운 표정을 읽었다. 아빠는 대답 없이 뒤도 안 돌아보고 한 걸음에 사라졌다. 내 생에 가장 빠른 아빠의 모습이었다.




친구들이 15년 여 지난 지금 아직도 이 에피소드를 기억하고 있을 만큼 짝짝이 신발 사건은 모두에게 충격이었다. 이 날 퇴근길에 많은 생각을 했다. 신발을 잘못 신고 나간 것은 명백한 내 실수지만, 밤새 잠 못 이루며 괴로워했던 지난밤과 자꾸 뒤엉켰다. 당시, 사회초년생과 환자 보호자의 무게가 심히 무거웠던 터라 남자친구에게 심적으로 의지하며 내 욕구는 스스로 묵살하고 관계 유지를 위해 전전긍긍했었다. 그래서 명동칼국수는 맛있지만 생일날까지 먹기는 싫다는 말은 하지 못했고, 다음번엔 당일에 생일 선물을 묻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말도 못 했다. 아무리 소문난 덤벙이라고 해도 신발 짝짝이는 한계치를 넘어선다는 생각이 들자 정신이 번쩍 들었다.


사람도 좋아하고 사람으로 마음이 치유되는 경험도 해봤지만, 나를 존중하지 않는 사람과의 관계는 독약과도 같음을 알았다. 이후에도 변화가 없는 그의 모습을 보고 이별을 통보했다. 그 사건 이후 나와 남자친구를 분리하여 생각하려고 노력했기에 맺고 끊기를 어려워하던 내가 다행히 용기를 낼 수 있었다. 나 자신을 먼저 사랑하지 않으면 남을 사랑할 수 없다는 것을 그제서야 절실히 느꼈다. 다행히 이 날 이후 크고 작은 실수를 저지르며 살아왔지만 적어도 신발을 짝짝이로 신고 나오는 일은 없었다. (생각해 보니 한 번 더 있다. 그래도 거의 같은 모델에 색만 살짝 다른 것이었으니 진정한 짝짝이 신발로 인정하지 않겠다.)




아이들이 아직 어려서 그런지 엄마를 세상에서 제일 사랑한다고 1순위라고 기쁘게 고백해 준다. 찬물을 끼얹는 것 같아서 미안하지만 꼭 강조하는 게 있다.


"원래 자신을 제일 사랑해야지 남도 사랑할 수 있는 거래. 우리 이쁜이들은 스스로를 제일 사랑하고 그 담에 엄마를 사랑해 줘."


다음 날 둘째가 나에게 와서 속삭여 준다. "엄마, 내가 0순위고 엄마가 1순위야."

봄날 같은 아이들이 있으니 이런 아이들의 엄마인 내가 당연히 사랑스러워진다.


@사진 출처: Pixabay








이전 04화월요일 휴가는 옳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