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어짐의 슬픔과 재회의 기쁨
오랜만에 입은 외투 주머니에서 현금 오만 원을 발견했다.
앗싸!!
해맑게 노오란 신사임당을 흔들며 아이들에게 자랑했다.
"좋겠다. 엄마는 맨날 공짜돈 생겨."
아이들이 부러워하자 부담스러운 궁둥이까지 흔들어가며 기쁨을 뿜어낸 후 맛있는 간식을 쏘겠노라 호기를 부렸다. 원래도 내 돈이었지만 다시 발견한 오만 원은 더 이상 오만 원이 아니었다. 한 십만 원 정도의 가치를 느꼈달까.
나는 다른 이들보다 발견의 기쁨을 더 빈번히 느끼는 사람으로 살아가고 있다. 자주 잃어버리기 때문이다.
몇 주 전 일이다.
검은 모자를 눌러쓴 셰프가 커피숍 문을 열고 손을 쑤욱 내밀었다.
손에 검은색 작은 숄더백을 달랑달랑 들고 말없이 우리 일행을 응시했다. 커피를 주문하다 불쑥 들어온 손에 깜짝 놀라 셰프를 쳐다보다 이내 그것이 내 가방임을 알아차렸다.
"앗, 가방을 놓고 갔군요. 가.. 감사합니다." 황급히 가방을 받았다. 셰프는 멋짐을 뽐내며 아무 말 없이 퇴장했다.
직장동료들과 1인 셰프가 운영하는 작은 이탈리안 레스토랑에서 점심식사를 마치고 바로 옆에 있는 커피숍에서 주문을 하고 있었다. 가방을 레스토랑에 놓고 왔지만 마음은 깃털처럼 가벼웠다. 그것이 마치 원래부터 내 것이 아닌 양, 까맣게 잊어버렸다.
옆에 있던 동료가 외쳤다.
"아니, 매번 얘기하지만 버릴 거면 날 주라니까요."
그렇다. 동료들은 이미 수없이 분실 사건 현장을 목격해 왔다. 가방뿐이랴. 지갑, 핸드폰, 카드, 외투, 물건이 들어있는 쇼핑백. 덤벙거리는 게 귀여울 땐 한참 지났다는 생각에 늘 정신 차리려 눈을 부릅떠보지만 그때뿐이다.
주변에 애 좀 출산해 봤다는, 그래서 건망증 좀 있다는 애엄마들도 명함을 내미려다 쑥 집어넣게 만드는 경지의 내 건망증.
여전히 세상은 살만한 것인지 대부분 물건들이 되돌아온다.
그때마다 다정한 인류애를 다시금 느끼며 발견의 기쁨을 누려본다.
잃어버렸다가 만나는 물건에게는 새로운 이름이 주어진다.
'음식점에 놓고 왔지만 셰프님께서 친히 찾아준 가방'
'화장실에 놓고 왔지만 다음 이용객이 지갑 속 카드를 보고 카드사에 연락해서 나에게 돌아올 수 있었던 지갑'
'커피숍에 두고 나왔지만 1시간 동안 카운터 서랍에서 고이 잠자고 나온 핸드폰'
비록 사물일지라도 이제는 단순한 '가방, 핸드폰, 지갑'이 아닌 스토리를 머금은 다정한 물건이 된다.
그러고 보면 사람과의 관계에서도 새로운 발견을 하곤 한다. 대학교 교직원으로 근무하는 터라 사무실에 오가는 인연이 많다. 특히, 조교로 근무하던 학생들은 휴학이나 군입대 등으로 자주 들고나간다. 한 학기, 길게는 1년, 2년 함께 시간을 보낸 조교들이 떠날 때는 오랜 친구를 보내는 것처럼 마음이 헛헛하다. 오늘 새 학기가 시작하며 떠났던 그들이 돌아왔다. 그들은 더 이상 그냥 조교가 아니라 '1년 휴학 후 여행하다 돌아온 조교', '공군 제대 후 2년 만에 돌아온 조교', '변리사 준비하다 돌아온 조교'가 된다. 그들과 내가 공유했던 과거는 함께 곱씹을 수 있는 추억이 되고, 그간의 공백을 채우려 나누는 근황토크에 관계의 깊이가 깊어진다.
물건도 사람도 한 번 떠나보내고 나면 소중함을 깨닫게 된다. 그래서 그들이 다시 돌아올 때는 다른 모습으로다가온다. 새 학기에는 유난히 만나는 인연뿐 아니라 떠나보내는 인연도 많다. 다음에 만날 때 더욱 소중하게 느껴질 그대들을 위해 진심 어린 인사를 하고 다음 만남은 어떤 이름으로 만나게 될지 기대하며 두근거림을 간직해 본다.
그래도 인간적으로 가방은 그만 잃어버리자!
*사진 출처: Pixabay, 내사진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