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봄비가 토독토독 창문을 두드리는 소리에 아침잠이 깼다. 아침부터 마음이 산란했다. 회사까지 지척이지만 운전 실력이 영 바닥이라 비 오는 날 운전이 부담인데 어쩌랴. 먹고살기 위해 분주히 아이들 손잡고 집을 나섰다. 좁은 차들 사이를 비집고 몸을 구겨 넣어 시동을 걸었다. 차가 출발하길 기다렸단 듯이 앞유리가 삽시간에 우유탄 것처럼 뿌옇게 변했다. 또 시작이군. 훗. 하지만 난 이제 당황하지 않지. 운전석 오른편에 자리한 수많은 버튼 중 'front' 버튼을 능숙하게 눌렀다. 순식간에 김서림이 걷히기 시작했다. 다시 앞이 환해진다. 별것도 아닌 거 알지만 왠지 모르게 자기 유능감에 폭 빠져 버렸다.
사람 사는 데에도 버튼 하나로 앞 길에 놓인 안개가 걷힌다면 얼마나 좋을까.
살면서 버튼 하나로 리셋하고 싶은 순간들이 무수하다.
글을 쓰고 맞춤법 검사 버튼을 누르면 클릭 하나에 수많은 오탈자가 바뀐다. (내가 이리 맞춤법을 몰랐던가)
미처 검토하지 못한 장문의 이메일을 실수로 발송해 버렸을 때. 다행히 발송 취소 버튼이 날 살린다.
방금도 정리되지 않는 구제 불가한 문장 몇 개를 선택해 'Delete' 버튼 하나로 날려 버렸다.
아쉽게도, 버튼으로 해결되는 일들이 있는 것처럼 해결이 되지 않는 일들도 넘쳐난다.
아이에게 나도 모르게 날카로운 눈빛과 말투를 쏘아 보낸 후 '아뿔싸' 해도 돌이킬 버튼이 없다.
직장에서 잘못된 정보로 보고서를 올렸을 때. 이미 상사 손에 종이가 들려 있는데 미친 척하고 면전에서 낚아 채 올 수도 없고 난감하다.
수십 년간 잘못된 자세로 앉아 있어 목이 거북이가 되었지만, 사람목으로 단숨에 돌아오긴 글렀다.
방법을 몰랐을 땐 한파 속에서도 창문을 내리고 달리는 무식한 용감함을 선보이기도 했다. 버튼이 없어도 시간이 지나면 차 안 습기는 걷혔다. 단지 내가 좀 춥고 또 많이 추웠을 뿐이다.
오늘도 많은 어려움과 고민들을 마주한다. 한 방에 속 시원하게 해결될 때도 있고, 안갯속에서 추위에 떨며 헤매고 있기도 한다.
'고생 끝에 낙이 온다.'는 속담도 있지만, 고생은 최대한 덜 하고 싶은 욕심쟁이다. 야근 중에 일은 안 하고 feel 받아 글만 쓰고 있다. 어디 거기 버튼 하나로 남은 일 모두 끝내주는 기똥찬 거 없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