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목을 다쳤습니다.

예쁜 신발은 덤이에요.

by 남봉

어린 시절, 오빠가 롤러스케이트를 타고 집 앞 작은 언덕을 내려가다 넘어져 한쪽 팔 통깁스를 했던 적이 있다. 부모님이 나보다 큰 오빠에게 밥도 먹여주고 씻겨 주고 하며 금이야 옥이야 대접을 받는 모습을 보고는 질투가 났더랬다. 그런데 나는 아무리 넘어지고 다쳐도 깁스는 하지 않았다. 철없는 마음에 저도 깁스하게 해 주세요. 하는 어이없는 기도도 했었다.




30년이 넘어서 소원(?)이 이루어졌다. 며칠 전, 계단이 한 개 더 있는 줄 알고 발을 잘못 내디뎠다가 넘어져 발목을 접질렸다. 살면서 몇 번 넘어지고 구르고 했지만 이렇게까지 걷기 힘들 정도로 아픈 건 처음이었다. 다음 날 발목이 퉁퉁 부어 찾은 정형외과에서는 인대가 꽤 많이 늘어났고 부분 파열도 있다고 진단했다. 반깁스는 꼭 해야 한다고. 철부지 소녀는 이제 마흔이 넘어 더 이상 깁스 따위는 하고 싶지 않았지만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최대한 움직이면 안 된다고. 그래야지 빨리 낫는다고 했다. 한 번 다친 인대는 약해져서 계속 다칠 수 있으니 조심하라는 의사 선생님의 정성 어린 충고도 있었다. 반깁스라고 해서 투박한 붕대를 친친 감는 줄 알았더니 나름 어여쁜(?) 신발을 주어서 그나마 위로가 되었다.


그러나, 인간은 왜 이리도 먹고사는 문제가 힘든 것인지. 다친 당일에도 애들 밥은 차려줘야 했고 다음 날은 회사 연수가 1박 2일로 예정되어 있었다. 잠시 고민했지만 연수 전날 빠진다고 얘기하는 것도 어려운 상황이라 집에서 대중교통으로 2시간 반 걸리는 곳을 꾸역꾸역 다녀왔다.




남의 아픔은 겪기 전에는 모른다. 이제야 깁스한 오빠를 질투했던 내가 조금은 부끄럽다. 어려서 철이 없었다고 애써 합리화해 보지만. 엄마, 아빠가 잘해준 것도 한두 번이지 한 여름 통깁스를 하고 얼마나 힘들었을까. 오빠에게 반깁스 사진을 보냈다. 오빠는 새언니와 바로 전화를 주었다. 괜찮냐고. 그리고 아픈데 요리하지 말고 시켜 먹으라고 배달앱 쿠폰을 선물로 보내주었다. (이 다리로 밥상 차리는데 가만히 앉아있는 우리 집 양반 각성하라.)


질투심이 가득했던 10살 여동생이 커서 오빠에게 마음속으로 사과를 건네본다.

'오빠, 깁스한 팔에 메롱 이라고 낙서해서 미안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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