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수술 전 검사를 받기 위해 서울에 위치한 대학 병원을 방문했다. 금식이라 아침부터 받고 싶었지만 일이 그리 쉽게 풀릴 리가 있나. 급하게 처리할 일이 있어 일단 출근하고 오후 반차를 냈다. 반깁스 한 다리로 꾸역꾸역 한 시간 반 거리의 병원에 도착했을 땐 이미 기진맥진이었다.
첫 검사는 피검사와 소변 검사. 다른 검사처럼 두어 통 뽑겠거니 하고 채혈실에 들어갔다 큰코다쳤다. 피 뽑는 장면을 굳이 보고 싶지 않아 고개를 돌려 다른 쪽을 보고 있었다. 그런데 아무리 기다려도 끝이 안 나는 거였다. 이게 뭔가 싶어 둘러보니 검사통이 무려 7통이나 쌓여있었다. '악, 내 피!! 내 피!! 저 빈혈 있어요~!!'를 마음속으로 외쳤지만 결국 7통 모두 채우고야 말았다. 피까지 왕창 뽑아 더욱 피곤해진 몸뚱이로 휘적거리며 나머지 검사도 어찌어찌 잘 마쳤다
병원 근처 10분 거리에 자주 가는 빵집이 있다. 자타공인 빵순이에게 그 순간 가장 필요했 던 건 바로 '빵수혈'. 가게에 들어서자마자 19시간의 공복을 깨워줄 빵을 거침없이 고른 후 계산대로 향했다. 대여섯 명 정도가 줄을 서 있었다. 한 남학생 뒤에 빵을 가득 담은 쟁반을 들고 서있었다. 잠시 기다리니 내 차례가 코앞이었다. 그때 갑자기 앙칼진 소리가 어깨를 내리쳤다.
"저기요!"
깜짝 놀라 저 말인가요 하는 얼굴로 뒤돌아보니 한 여학생이 몹시 불쾌한 얼굴로 날 노려보고 있었다.
"죄송한데 언제부터 여기 서 계셨어요?"(응, 하나도 안 죄송해 보이는데)
"저, 아까부터 서있었어요."
"분명 제 앞에 저 남자분이 계셨거든요????"
이때부터 감이 왔다. 내가 줄을 설 때 이 사람이 가게 뒤쪽에서 빵 쟁반과 집게를 집어 드는 것을 보았던 기억이 난다. 난 훨씬 더 앞쪽에 있었기에 줄을 바로 섰는데, 이 사람은 자기가 쟁반들 때 스캔한 마지막 사람만 기억하고 있는 것 같았다.
"아까 쟁반 집으실 때 제가 줄 섰어요."
그녀는 마뜩잖은 표정으로 계속 노려보며 분명 남자 손님이 자기 앞에 있었다고 재차 주장했다. 다른 손님들도 궁금한 듯 우리를 쳐다보기 시작했다. 참 억울하기 짝이 없었다. 갑자기 개념 없는 아줌마로 몰리는 것 같았다.
나로 말할 것 같으면 수백 수천 가지의 단점이 있는 사람이지만, 수줍게 명함을 내밀고 있는 열 개 남짓의 장점이 있는데 그중 하나가 준법정신이다. 차가 오지 않아도 빨간 불에는 건너지 않고 기다린다. 새치기는 기억이 나지 않는 어린 시절을 제외하고는 해 본 적이 없다. 그런데 하필 이리도 힘들고 지친 날 새치기의 오욕을 뒤집어쓰게 되다니.
"저 안 급해요. 먼저 계산하세요." (사실 피가 모자라 쓰러지기 직전이지만요.)
쿨한 척 먼저 계산하시라 했다. 난 새치기하는 사람이 아니란 것을 증명이라도 하고 싶었나 보다.
여전히 뾰로통한 그녀는 끝끝내 필요 없다고 하며 굳은 얼굴을 풀지 않았다.
여유롭게 가게 안에서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마시며 커피 수혈까지 하고 싶었지만 왕소심자인 나는 쫓기는 심정으로 빵집을 나와버렸다.
집에 오는 길에 이 일이 계속 맴돌았다.
억울함보다는 '왜 난 잘못하지 않았는데 그 사람처럼 당당하게 말하지 못했는가.'에 대한 속상함이 더 컸다. 그녀는 잘 알지도 못하면서 따따따 하고 따지기까지 했는데. 나도 눈을 치켜들고 카랑카랑한 목소리로 '저 새치기 안 했는데요.'라고 왜 당당히 말하지 못했는가. 나이 마흔 넘어서 그것도 못 하는가 하는 자책감이 나를 잠식했다.
그날 밤, 머리를 식히려 꺼내든 은유 작가의 '다가오는 말들'에 나오는 문장이 큰 위로가 되었다.
내 나약함을 혐오하지 않기 위해 목표를 바꾼다. 울지 않고 말하는 게 아니라 울더라도 정확하게 말하는 것. "내 내면에 대한 권한을 스스로 가짐으로써 다가오는 침입자에 맞서서 훌륭한 문지기가 되는 것. 최소한 '왜 그런 걸 묻죠?'라고 재깍 되물을 줄 아는 사람이 되는 것이다." (p53)
그래, 내 나약함을 탓하지 말자. 나를 건드리는 사람에게 맞서지 못했다고 내가 잘못한 건 아니다. 몇 번을 되뇌었다.
무례하게 대하는 사람에게 아직은 당당하게 맞서진 못하더라도, 떨려서 양이되는 목소리일지라도 말해보겠다 마음먹었다.
"저 새치기 안 했는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