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남댁 Nov 19. 2022

04. 강제성 부여하기

정 힘들면 돈으로라도 만들던지.

매 년 이맘때쯤엔 단 한 번도 빠지지 않고 하는 실수가 있다. PLANNER 장만하기. 가열차게 쓸 것처럼 0.38mm 펜도 사고 아주 그냥 정성스레 뭔가를 쓴다. 한 2월 정도까지만. 남은 10개월치 플래너는 텅텅 비어 있고 그렇게 1년이 흐른 뒤 분리수거장에 버려진다.


이런 꼬락서니를 스스로도 너무나 잘 알기에, 최근에는 딱 한 달짜리 Task Manager라는 녀석을 사봤다. 매일매일 체크리스트 정리하는 형식의 플래너였다. 재택근무 중이던 일주일간 잘 쓰더니 출근하자마자 버려졌다. 하여튼 자의에 의해 행해지는 모든 활동은 지속성을 가지기가 너무나 어렵다.




어느새, 플래너에 꾹꾹 눌러쓴 그 '할 일'을 해내는 건 흔하지 않은 일이 돼버렸다. 하긴 플래너에 꾸욱꾹 '눌러쓰는' 일조차도 점점 안 하게 되는 마당에 뭘 기대하랴. 강제성을 갖추지 못한 의지들은 한낱 의지에 머물다 끝나는 경우가 많다. 나만 그런 거 아닐걸?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기 싫어 죽상이지만 어떻게든 해내는 때가 가끔 있다. 언제? 출근 안 하면 짤리는걸 알 때. 적지 않은 돈을 들였음을 알 때. 안 하면 찝찝함 정도만 생기는 일들과 달리, 이들은 안 하면 탈 나는 Task들이다. 안 하면 안 되는 일들. 강제적인 일들.


때려치울 거라는 말을 달고 사는 직장인 라이프야 뭐 어쩔 수 없으니 논외로 하자. (사실 회사를 때려치우고 나와서도 루틴하게 생활하지 않으면 금방 피폐해질 거다.) 우리 스스로가 더욱 발전하기 위해서 필요한 '할 일'들이 있는데, 이 녀석들은 직접 강제성을 부여해야만 한다. 그중 가장 효과적인 수단이 바로 '돈'을 쓰는 거다.


한 때 블로그 키우기에 목말라서 무작정 1일1포하던 때가 있었다. 1일1포는 무슨! 1일 1포기였다 항상. 그랬는데, 한 번은 뭐에 홀린 건지 유료로 진행되는 블로그 강의에 돈을 투입한 적이 있었다. 알려주는 커리큘럼에 따라 1일1포 올리면 피드백을 주고받는 형태였다. 바꿔 말하면, 1포가 없으면 강의의 핵심인 라이브한 피드백도 아예 없는 수업이었다.


2주의 기간 동안 엉엉 울면서 1일1포스팅 미션을 했었다. 주말도 포함해서 정말 매일. 풀야근 때리고 집에 오니 밤 11시. 그래도 자리 앉아서 글을 썼다. 그렇게 2주 했더니 200명 정도 오던 블로그가 1,000명 오는 블로그로 변해있었다.


사실, 안 해도 대단히 잘못될 일은 없었다. 그저 내가 투입한 돈만큼의 가치를 얻지 못했을 거다. 실제로 같이 수강한 사람들 모두가 1일1포에 성공한 것은 아니었다. 누군가는 스스로 부여한 강제성에 스스로 예외를 뒀을 거다. 


지금 내 블로그는 다시 400명대 수준으로 내려와 있다. 왜냐고? 글을 안쓰니까. 1일1포를 유인할 강제적인 수단이 없는 상태라서 그렇다. 누군가 1일1포로 한 달 개근하면 백만 원 줄게! 하면 또 엉엉 울면서 해낼 거다 분명. 허나 지금은 그런 강제성이 없다. 그래서 루틴이 무너진 상태다.


강제성을 스스로에게 부여하는 건 생각보다 어려운 일이다. 안 하면 뺨을 한 대 갈겨야지! 안 하면 내가 사람도 아니다! 따위는 강제적인 축에 끼지도 못한다. 뺨 톡 치고는 한 대 갈겼다고 셀프위로하면 그만이니깐. 보다 강제적인 수단을 강화하기 위해서, 우리는 '돈'에 '사람'을 더하는 방법도 생각할 수 있다.


너랑 내가 똑같은 목표를 미션으로 하는 거다. 각자 30만 원씩 보증금 내놓고, 먼저 무너지는 놈은 한 푼도 못 가져감 ㅇㅇ. 이런 게 돈과 사람을 기반으로 강제성을 더 키우는 방법이다. 너와 내가 혹은 우리가 함께 한다면 한층 강제성을 강화할 수 있다. 너와 내가 서로 눈치를 보거나, 또는 서로를 경쟁상대로 여기는 우리네 인간성이 굳건하기 때문이다.




솔직히 말하면 난 아직 돈으로 묶은 미션도, 사람으로 연결한 목표도 없다. 앞서 말했듯 블로그는 비실비실거리는 중이다. 배꼽 근처의 러브핸들은 어느새 포동포동함이 남다르다. 그래 놓고 또 플래너를 하나 샀다. (아직도 상품준비중이다!!)


그래도 용케 두서없는 에세이를 4주째 정기적으로 쓰고 있다. 사실 오늘은 여러 일정이 많아서 스킵할까 했는데, 굳은 의지로 노트북을 열었다. 기억하는 이 없겠지만 '주제도 모르고' 매거진을 처음 론칭할 때, 매주 토요일마다 발행하기로 선언적인 다짐을 했었다. 지금 4주째 강제적인 장치 없이 자발적으로 하는 중인데, 나도 나를 믿지 못하므로 하루빨리 뭔가 수단을 만들어야 할 것 같다. 돈이든 뭐든.


제 때 등장하는 매거진이 되기 위하여. 강제성을 부여하자.

열이면 열 흐지부지해지는 당신의 결심과 다짐. 이번에는 체크리스트 빼곡히 V 표시를 만들기 위하여. 강제성을 부여해보자. 이렇게 저렇게 안될 듯하다면 돈으로라도 만들자. 한 10만 원 뚝 떼서 부모님께 의탁하던 애인에게 의탁하던 아무튼. 발전하고 싶다면 스스로에게 강제성을 부여하자.

매거진의 이전글 03. 귀찮지 않은 루틴은 없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