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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와 르메르디앙서울 혹은 리츠칼튼서울과의 인연

르메르디앙서울 매각되면서 2월말로 영업 종료...추억의 책장 사라져

by 남다른디테일

최근 급작스러운 뉴스를 접했다. 강남의 르메르디앙서울이 현대건설 컨소시엄에 7000억원에 매각됐다는 소식. 게다가 호텔 영업을 2월말까지하고 영업을 종료한다는 거다. 정말 메리어트 앱으로 조회해보니 3월부터 가격 조회가 되지 않았다.


매각이 진행 중인 것은 알고 있었으나, 이렇게 급작스럽게 진행될 줄은 몰랐다. 현대건설 측도 르메르디앙서울의 부동산 가치를 높이 봤는지 예상보다 높은 가격에 산 거 같다.


호텔도 이렇게 빨리 영업을 종료할 줄은 몰랐다. 서울 출신도 아니다 보니, 르메르디앙서울에 자주 갔거나 큰 추억은 있지 않지만, 이 호텔에 대한 많은 생각이 떠오른다. 내 인생의 한 페이지가 사라지는 느낌이라고 해야 할까. 외국 영화에서 전쟁 등으로 사라진 호텔을 재건하기 위해 지역 주민들이 나서는 걸 가끔 본 적이 있는데, 그때는 호텔 하나 가지고 왜 저리 애착을 둘까 이해가 안 되었는데, 나도 나이가 들었는지 이제는 이해가 된다. 호텔에서 식사하고 커피 마신 기억, 돌잔치를 하고 소개팅했던 추억 등 호텔은 누구에게나 추억으로 자리하고 있을 것이다.


호텔에 갈 때마다 항상 마시던 커피, 항상 앉던 자리...이제는 다시 갈 수 없다는 게 너무 아쉽다.

아주 미약하게나마 이 호텔에 대한 나의 '기억의 습작'을 짧게나마 기록해 보고자 한다.


리츠칼튼서울 시절


르메르디앙서울에 대한 기억은 호텔에 대해 잘 모르던 시절, 리츠칼튼호텔 때부터 기억을 찾아보게 된다. 르메르디앙호텔이 없어진다는 소식을 듣고 오래된 사진첩을 뒤져보며 옛 리츠칼튼때 찍어 놓은 사진이 없나 열심히 찾아보았다.


어렵게 한 장을 찾았다. 피트니스를 이용했다가, 사우나 휴게실에서 리츠칼튼 로고가 있는 가운을 입고 있는 걸 찍은게 있다.


당시 호텔 피트니스와 사우나에 갔었다는 걸 자랑하고 싶어, 사진을 찍은 거 같다. 어린 시절 호텔 피트니스를 간다는게, 마치 부자가 된 듯한 느낌을 준 거 같다. "부산 촌놈 서울 와서 출세했네" 뭐 그런 생각도 하곤 했던 거 같다.

리츠칼튼서울시절 사우나 가운 로고


그 이전 지인들과 강남역 쪽에서 저녁 식사를 하고 지인이 차를 가지러 어디로 갔다. 그때 함께 갔었는데, 지금 생각해보면 거기가 리츠칼튼서울이었다.


당시 차도 없었고 호텔 발렛파킹이 뭔지, 호텔 발렛파킹이 되는 신용카드가 뭔지 모르던 시절, 그 지인은 강남역쪽에서 약속이 있으면 차를 리츠칼튼서울에 맡기고 강남역으로 나온거 같다. 그때 그 사람은 호텔 발렛파킹 제휴 신용카드가 있어서 리츠칼튼에 차를 맡겼다.


이 호텔은 강남역에서 매우 가까운 호텔이고, 호텔 이용 영수증도 검사하지 않았던 호텔이다. 원칙적으로 그러면 안 되지만, 세월이 지나 나 역시 강남쪽에 갈 일이 있으면 그 호텔에 발렛을 맡기고 뒷문으로 나가 강남역 쪽에서 볼일을 보는 일이 많았다. 이제는 그러고 싶어도 못하는 호텔이 됐다.


또 그때는 호텔을 이용하지 않으면서도 호텔 발렛파킹 제휴를 이용했지만, 지금은 호텔에 일이 있어서 이용하는 경우가 더 많아졌으니, 어쩌면 나도 확실한 호텔 고객으로 자리 잡은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지금은 그럴 수 없다고 하던데, 이전에 발렛파킹 맡긴 차를 기다리는데, 호텔 단골 같은 분이, 이달 발렛파킹 제휴가 남았다면 한꺼번에 서너 번 카드를 긁어주는 거다. 지금 생각해보면, 만약 신용카드 제휴가 3번 남았는데, 그걸 그냥 놔두면 누구에게도 이익이 안 되니, 그 고객이 호텔 측 매출을 올려주려고 그랬던 거 같다. 발렛 제휴카드를 이용하면, 신용카드사에서 호텔 측에 일정 금액을 지급하는 거로 알고 있다.


나도 친한 발렛 직원이 있으면 카드 2개 주면서 "두 번 긁어주세요"라고 말하는 경우가 있다. 한 카드로 여러 번 긁는 건 안될 거다.


그리고 리츠칼튼 시절에 투숙도 해보고 클럽라운지를 갔었던 기억도 난다. 당시에 낡은 호텔 느낌이었지만, 테라스가 있는 룸이었고 강남 시내가 다 보이는 경치가 매우 좋았던 기억이다.


클럽라운지는 상당히 고풍스럽고 오래되어 "뭐 이리 낡은 데가 다 있어"라는 생각을 했던 거 같다. 의자, 테이블, 커피잔 등 옛날 다방에 들어온 듯한 느낌이었다.


무엇보다 리츠칼튼 때 자주 갔었던 곳은 #옥산뷔페 가 아니었나 생각한다. 행사가 있어서 이용한 적도 있었지만, #티몬 #위메프 #쿠팡 등에서 가끔 옥산뷔페 반값 딜이 번쩍번쩍거리면 바로 구매하곤 했었다.


벌써 쿠팡, 위메프, 티몬이 생긴 지 10년이 넘었다. 당시에 반값딜을 잡으려고 밤 12시에 컴퓨터를 켜고 기다리곤 했었다, 당시만 해도 어찌나 얼리어답터였는지.


당시 리츠칼튼이 얼마나 럭셔리한 브랜드인지도 몰랐고 호텔에서 저렴한 가격에 배불리 먹을 수 있다는 기대감이 컸다.



특히 뷔페 레스토랑은 일반 고객과 반값으로 산 고객을 차별하는 일이 없으니, 믿고 갈 수 있었다.


당시 기억으로 옥산뷔페는 가격 대비 음식들이 매우 만족스러웠다. 오래된 느낌, 럭셔리한 느낌은 덜 했지만, 음식들은 매우 풍족했다는 기억. 어릴 때 호텔뷔페를 가면 "인간은 왜 배가 불러야 하나" 아쉬워 하며 배가 터지기 직전까지 음식을 먹었다.


없이 살다 보니 "본전 뽑아야해"라며 먹는것에 강한 의지도 있었죠. 지금 리츠칼튼호텔에서 반값 뷔페를 판매하면 어떻게 럭셔리 브랜드에서 그런 가격을 내놓지라며 욕했을텐데, 그때는 뭐가 뭔지 몰랐다. 이제는 모든게 추억이다.


또 리츠칼튼때 자주 갔던 곳은 피트니스와 사우나 시설이다. 호텔로비에 들어서면 직원이 로비에서 정중하게 인사를 하고 4층의 피트니스와 사우나로 올라가는 게 마치 성공한 사람 느낌도 들고 기분이 좋았다.


호텔은 좀 낡았지만, 피트니스나 사우나는 꽤 괜찮았다. 특히 사우나에 안마의자도 아닌, 인체공학적으로 설계된 의자가 있었는데 거기서 앉아서 휴대폰을 하는 재미가 매우 컸다. 주말에 거기서 노닥거리던 시절이 매우 행복했던 기억이다. 어릴땐 도서관에서 공부하면 성공할 수 있다는 생각도 들었지만, 이때는 책도 읽기 싫었고 공부도 하기 싫었고 내가 편한 '지금 이 순간'을 즐기자는 기분이었다. 미래에 대한 큰 꿈도 사라져 가던 시절.


지금도 그렇지만, 주말이면 호텔 어딘가에서 밥을 먹고 커피를 마시고, 운동하고, 사우나를 했던 거 같다.


리츠칼튼때 호텔 지하에 있는 에덴이라는 클럽도 많이들 기억하겠지만, 나는 거기 가본 적은 없다. 어릴 때부터 어찌나 착하게 살았는지. 그러나 춤 하나만큼은 정말 잘 췄다. "너가 살면서 항상 1위였던 건 뭐냐"라고 물어본다면 '춤'이라고 말할 거 같다. 정해져 있지 않고, 질서도 없고, 정형화되지 않은 나의 춤을 췄던 기억(이건 다음에 회고록을 쓸 기회가 있다면 더 자세하게 말하겠다)


지금 리츠칼튼서울을 회고해 보면, 분명 오래되었고 낡은 호텔은 맞으나, 리츠칼튼의 아이덴티티가 느껴지던 호텔이었다. 리츠칼튼의 고풍스러움도 잘 살렸고 화장실에는 휴지 하나에도 리츠칼튼의 로고가 박혀 있었다. 지금 #리츠칼튼오사카 와 비슷한 느낌. 당시에 리츠칼튼호텔 중에 평가가 제일 낮다. 메리어트에서 리츠칼튼 브랜드 뺄려고 한다 등 여러 얘기가 있었지만, 그때 대기업도 아닌 기업에서 리츠칼튼이라는 브랜드를 가져온 건 정말 대단했던 거 같다. 서울에 리츠칼튼이 있었고 W가 있었다는 건 정말 놀라운 일인 거 같다. 지금은 모두 철수했다.



아 그리고 지금도 그렇지만, 리츠칼튼때도 호텔에 있던 미술 작품들이 보통이 아니었다. 미국 팝아트 작가들의 작품도 많았고 중국 작가들, #마광수 의 작품도 걸려있었던 기억이 난다.


르메르디앙서울 시절


그리고 리츠칼튼서울이 없어지고 2017년 르메르디앙서울이 오픈했다. 그때 '르메르디앙'이라는 브랜드도 매우 낯설었다. 미국식 호텔에 익숙해져 있던 우리에게 유럽식 호텔 브랜드는 매우 낯설었다.


호텔 인테리어도 영국의 데이비트 콜린스 스튜디오라는 디자인회사가 맡았는데 아주 신선했다. 녹색과 골드를 메인 컬러로 신선하지만, 빈티지한 느낌도 드는게 꽤 잘 빠진 호텔.


그때부터 호텔 디자이너가 호텔에 얼마나 중요한지 알 수 있었다.

르메르디앙서울의 메인 컬러도 티파니 컬러와 같은 민트 그린과 핑크를 메인으로 썼는데 아주 예뻤다.

르메르디앙 철학은 예술을 사랑한다는 거다. 그래서 투숙 고객들에게 예술의 경험을 제공하기 위해 지역에 있는 미술관 티켓을 제공한다거나 미술관을 직접 운영한다.



그래서 르메르디앙서울은 호텔 지하에 M컨템포러리라는 미술관을 운영했다.


당시 운이 좋게도 2017년 호텔 개관과 M컨템포러리 오프닝에 갔었다. 마침 내가 투숙한 날이 미술관 오픈식이어서 오프닝에도 참석을 했었다. 당시 '하이팝'이라는 미국 중심의 팝아트 전시를 했고 앤디워홀 등 아주 값비싼 작품들을 많이 경험했다. M컨템포러리는 미술관 이름처럼 미국 중심의 컨템포러리한 전시를 많이 개최했다.


당시 스위트룸에 묵으면서 전시 오프닝에 참석했더니, 높으신 분들이 많이 참석하셨다. 술도 공짜로 주고 음식도 공짜로 먹고 멋진 전시도 보고 너무 좋았다. "서울에 사니 이런 혜택도 있네"라며 즐거워했던 기억이 난다. 당시 전원산업 회장님도 만났었다. 회장님은 의외로 튀지 않고 조용하신 분 같았다.


그 외에도 르메르디앙서울 리뉴얼하면서 더 자주 갔던거 같다. 셰프팔레트도 자주 갔었고 허우도 갔었고, 라운지는 수도 없이 간 거 같다. 물론 주차 때문에 간 적이 더 많았다.


3월부터는 더 이상 르메르디앙서울을 갈 수 없다고 생각하니, 아주 아쉽다. '내 추억의 책장 몇 페이지를 찢어 버리게 되는 느낌'이라고 해야 할까.



문을 닫기 전에 마지막으로 호텔에 가서 벽도 만져보고 의자에도 앉아보고 직원들과 인사도 할 겸 예약을 했다.


내 고향은 아니지만, 고향이 없어지는 느낌이 이런 걸까. 지금 시간 새벽 7시. 르메르디앙서울에 대한 여러 생각이 들어 밤잠을 못 자고 이렇게 글을 쓰게 된다. 이제 좀 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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