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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남세스 Sep 04. 2023

96. 한강의 중2들, 뿌듯함과 걱정 공존

직장맘 상담소(가족 편)

중2 아들이 자꾸만 밤늦게 나가려고 한다.


"공원에서 농구하고 올게."

"이 시간에? 거기 사람은 있니?"

"얼마나 많은데, 형들이 와서 농구하고 있어."


"한강에서 라면 먹고 올게."

9월이 막 시작한 토요일 밤 9시반넘어서 한강을 가겠다고 한다.

너희들끼리는 못 간다. 절대 안 된다.

이미 고지가 여러 번 된 상태여서 그런지,  친구들끼리 간다는 말은 안 하고.

이번에는 친구 아빠가 같이 가주신다고 한다.

확인차 친구 엄마에게 전화한다.

"OO야~ 오늘 한강 가?"

"언니, 아닌데 나 방금 마트 다녀와서 아는 바가 없어. 남편에게 물어볼게."

안 가기로 했단다.

4명의 남자아이를 태우고 가자니 차가 너무 부족할 거 같다고 한다.  

잘됐다 싶어서

"응. 그래 밤늦게 전화해서 미안해."

하고 전화를 끊었다.

5분도 채 안되어서 그녀에게 다시 전화가 왔다.

"언니 가기로 했어. 나도 같이 갈 거야."

"차는 좀 큰 차에 태워갈게요."


너무 안심이 된다. 그녀도 간다고 하니.

"그래? 미안해서 어쩌지?"

"고마워."

"나중에 우리가 애들 데리고 다녀올게."

"곧 보자."라며 전화를 끊었다.


그리고 한 시간도 채 안 걸려 카톡이 왔다.

여러 장의 사진이 첨부되어 있다.

아이들의 뒷모습이다.

한강의 중2들


180cm 내외의 고만고만한 큰 중2들이 걸어가는 뒷모습.

대견하기도 하고 뭉클하기도 하고

아직도 더 키워야 하는데 쩌나 싶기도 하고

아직도 살아갈 날이 많은 너희들이 부럽기도 하고

검정 바지에 슬리퍼, 하얀 티, 발목을 넘어선 긴 양말까지 똑같은 유니폼에 웃기기도 하고

손을 잡은건지 팔 움직이는 사진이 그렇게 찍힌건지 친한 모습에 안도하고


많은 생각들이 지나갔다.


얼마나 하고 싶은 것들이 많을까?

얼마나 즐거울까?

4명이서 저렇게 걸어가면 무서울 것은 없겠다.

나도 저런 시절이 있었는데.

그냥 꺄르륵 꺄르륵거리던 시절이 있었는데.

너무나 이쁜 뒷모습에 뭉클함이 꽤 오래간다.



요즘의 중2들의 생일파티는 게스트하우스에서 한다.

단지 내 30평대의 게스트하우스가 있다.

5만 원의 비용을 내면 전날 오후 3시부터 다음날 11시까지 사용이 가능하다.

생일파티에 무던한 녀석이 이번에는 생일파티를 하겠노라 게스트하우스를 빌려달란다.

13명 정도의 친구들을 초대했고

치킨과 피자만 시켜주면 된단다.

중2 남자아이들 13명이서 우글우글 무슨 생일파티를 한다는 건지 의아하지만

알아서 잘 놀 테니 신경 안 써도 된다고 한다.

친구들끼리 있는 게 재미있는 나이이다.



'이제는 우리가 헤어져야 할 시간, 아쉬움을 남긴 채 돌아서지만~(이젠 안녕 , 015B)'

'둘이 걸어요.(두 사람, 성시경)'

'단지 널 사랑해 이렇게 말했지.(캔디, HOT)'

울 아들이 흥얼거리는 노래가 내 귀에 박힐 때가 있다.

"너 그 노래 어떻게 알아?"

"너 015B 알아?"

"아니 그게 뭐야?"

투마로바이 어쩌고 암튼, 그 가수가 리메이크했단다.

내 학창 시절의 노래가 중2의 입에서 나올 때면 나도 모르게, 행복하다.

공유할 수 있는 뭔가가 있다는 것은 대화거리가 있다는 거니까.

울 아들이 날 아무리 노인취급해도 이런 공감대는 희열이 된다.



요즘엔, 아이를 낳지 않는 것이 최고의 재테크라고 한다.

돈 먹는 기계, 키우기엔 너무 많은 체력과 시간이 들기에 나오는 소리가 아닌가?

하지만 저 사진 하나에 또 그래. 아이들이 무슨 죄가 있나.

저 아이들이 행복한 세상을 만들어주자.

다짐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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