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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3. 초6의 애착점퍼, 밝은 파란색 패딩

직장맘 상담소(가족 편)

by 남세스

아들 둘 엄마다.

어렸을 때는 항상 같은 모양의 옷을 입혔다.

같은 옷을 입고 있는 아이들을 보고 있자면 흐뭇했다.

둘이 형제예요.라고 알리고 싶었나 보다.

귀여운 녀석들!



딸이 없어서 그런가, 아기자기하게 입히지 못해도

같은 옷을 입히면 행복했다.

그 이유는 모른다.


큰 아이와 작은아이는 4살 터울이다.

큰 아이가 초등학교 6학년, 작은 아이가 2학년,

밝은 파란색의 롱 패딩을 사줬다.

동네 아이들이 모두 검은색 아니면 회색 패딩을 입고 있어,

어렸을 때 아니면 언제 입혀보려나 싶어서 나는 자주 밝은 색깔의 옷을 사준다.

중학교 가면 어차피 검은색, 회색, 흰색만 입고 다닐걸, 아이들의 환한 모습을 사진으로라도 남겨놓고 싶었다.


둘째는 물건을 잘 버리지 못하는 습관이 있다.

누가 봐도 쓰레기통에 넣어야 할 법한 물건인데, 항상 주머니나 가방 안에 넣고 다닌다.


2학년때는 패딩을 열심히 입고 다녔지만 좋아하지는 않았다. 둘째의 패딩은 4학년까지 입고 내 친구의 아들에게 주었다.

5학년이 되어서 형아의 패딩을 입고 다니기 시작했다.

벌써 4년째 같은 패딩이다.

보는 나는 지겹다.


항상 축구하기에 편한 옷을 추구하는 그가 이 옷에는 진심이다.

왜 그럴까?

물어보았다.

"밝은 색깔이고, 형아가 입던 옷이라 좋아."


적당히 좋아해야 하는데 너무 좋아한다.

마치 애착 인형을 들고 다니는 것처럼.

옷도 4년 동안 살다 보니, 매우 더러워졌다.

세탁을 아무리 해도 찌든 때는 지워지지가 않는다.

세탁소에 맡겨보아도 소용없다.

손목과 몸통 군데군데가 찢어져서 안에 있는 솜털과 깃털이 날아다니는 지경까지 왔다.

눈에 가시다.

처음에는 바느질을 해주고 세탁소에서 휘갑치기도 해주고 살려보려고 노력하였으나

도무지 살아날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겨울에 하루도 빼놓지 않고 입고 다니니, 그럴 만도 하다.


6학년이 되고 3월이 되었다. 꽃샘추위가 어느 날은 기승을 부렸지만 제법 따뜻해졌다.

하지만, 아무리 새 옷을 사줘도 옷을 바꿔 입을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엄한 아빠 찬스를 써봐도 요지부동이다.

이를 어쩐다.

그래 입고 다닐 수 있을 때까지 입어라.

더우면 언젠가는 벗겠지.

집에 오면 소복한 눈처럼 하늘을 날아다니는 솜털!

로봇청소기가 움직여야 사라진다.


4월 어느 날!

학부모 면담이 있어, 학교로 향했다.

"선생님, 안녕하세요."

"날이 많이 따뜻해졌지요?"

선생님께서 웃으신다.

"어머니, 그렇지 않아도 어제도 둘째가 패딩을 입고 왔어요"

"네, 그 녀석은 언제쯤 그 패딩을 안 입을까요? 선생님, 엄마 없는 아이라고 생각할 거 같아요."

대조되게 나는 엄청 꾸미고 갔다.

베이지색 오버핏 정장에 넥타이까지.

"아니에요, 어머님. 재미있어요."

친구들에게 제가 물었어요

"오늘 교실에 눈이 내리네. 4월인데"

아이들이 대답하더라고요.

"둘째예요" "둘째가 입고 온 패딩에서 자꾸만 털이 빠져요."

키득키득 거리는 아이들의 얼굴이 선하다.


선생님과 나는 동시에 웃음이 터졌다.

생각만 해도 상상이 된다.

하늘을 날아다니고 있는 눈 같이 생긴 하얀 솜털!

그것도 한 군데가 아닌 손목, 몸통 여기저기서 터진 구멍으로 삐져나와 날라다니는 깃털!


이 사랑스러운 아이를 어쩐단 말이냐.

나는 오늘도 그 녀석을 생각하며 얼굴에 미소를 머금고 있다.

푸훗

참으로 웃긴 아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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