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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황상호 Apr 11. 2018

정신 똑띠 차리고, 저축 재활기

5화 밑 빠진 독, 고정비용 줄이기(2)

나는 '저축 포기자'였다. 충북 청주에서 전셋집을 얻어 방세가 많이 나가지는 않았지만 식비에 기름값에 생활비, 술값, 각종 암 보험료 등 허리가 휘청거렸다. 여기다 1천만 원을 훌쩍 넘은 대학원 학자금 대출금까지 갚아야 했다.


내가 일하던 곳은 지역 중소규모 방송사였다. 방송 업계 평균에 못 미치는 월급을 받았다. 수습 6개월 동안은 정상 월급의 80퍼센트만 받았다. 새벽 6시부터 일을 시작해 저녁 8시까지 입에 단내가 나도록 일했다. 하지만 방송업계 특수성 때문에 통상 임금에 묶여 추가 근무수당 따위는 없었다. 부족한 월급에 적금도 들고 연금 보험 상품도 가입했지만 돈은 늘 나를 갑갑하게 했다. 이따금씩 밀린 돈을 내라는 카드 회사의 독촉 전화도 받았다. 일주일만 기다리면 되는데 채권자는 게으르지 않았다. 나는 가끔 짜증을 확 내버리고 전화를 끊어 버렸다.



"히피로 살자. 있으면 쓰고 없으면 말고. 노후 걱정? 늙어서는 천국 못 가나 걱정이겠지"



미국으로 오기 전인 2016, 17년 지출이 최고점에 달했다. 없는 놈이 돈 쓰는 재미에 빠져 한 달에 20만 원이나 하는 운동을 배우기도 하고 오디오도 사고 소고기도 먹으러 다녔다. 외제차를 타보고 싶어 무리해 쉐보레 말리부를 샀다. 정지 신호에 차량 엔진이 잠시 꺼지는 오토스탑 기능을 보며 '역시 미제는 달라'라며 혼자 황홀해했다. 지역 지상파 방송사 기자인 만큼 '소공자'쯤 하고 다녀야 격이 맡겠다 생각했다.  


타임슬립, 시계를 그 당시로 돌려본다. 2016년 봄, 입사 7년 만에 첫 후배가 들어왔다. 그것도 무려 3명씩이나. 새벽 시간 후배들이 경찰서를 돌고 뉴스룸으로 오면 후배들이 취재해 온 쪼가리 정보를 엮어 아침 뉴스용 짧은 기사 썼다. 아침 뉴스를 마치고 나면, 아니 업계 표현대로 아침 뉴스를 '막고 나면' 후배들과 24시 기사식당이나 분식점으로 가서 아침을 먹었다. 회사에서 따로 후배들에게 사주라고 식비를 주지 않았지만 지갑은 내가 열었다. 그게 리더십이라 생각했다. 이렇게 하루를 시작해 낮 동안 각자 일을 한 뒤 가끔 모여 회식을 했다. 1차에 가서 술과 고기를 먹고 2차에 가서 고기와 술을 먹었다. 주종은 소맥! 한 자리 당 술값이 10만 원 정도 나왔다. 늘 내가 계산했다. 그게 리더십이라 생각했다.


아무튼 버는 것 이상으로 쓰고 살았다. 그게 가능하게 했던 것은 할부제도 때문이었다. 8만 원쯤 넘는 것은 대부분 무이자 할부로 지불했다. 블루투스 오디오, 병원 CT촬영비, 스포츠센터 이용료, 휴대전화 기계비 등 조금이라도 부담스러우면 모두 채 썰어  납부했다. 할부는 품이 넓었고 자애로웠다. 그리하여 마침내 한 달 수입의 3분의 1은 할부 빚으로 나갔다. 이미 계산한 술값 밥값도 리볼빙 카드 서비스로 쪼개 높은 이자를 붙여 상환했다.


2016년 6월 청원 상주 간 고속도로 교통 사고 사망 현장을 보도하고 있다. 고속도로 현장은 차량이 빠르게 달려 늘 위험하다.



인터넷 백과사전 언사이클로피디아(Encyclpedia) 등의 자료를 보면 할부 거래는 농경 시대부터 있어 왔다. 유럽 식민주의 시대 때는 소매업자들이 소비자에게 외상(Open-book credit)으로 물건을 팔았다. 그러다 1850년 재봉틀이 등장하면서 시장에 큰 변화가 나타났다. 그 당시 여성들은 셔츠 한 장을 만들기 위해 평균 14시간을 바느질을 해야 했다. 하지만 재봉틀의 등장으로 1시간 만에 옷을 만들 수 있게 됐다. 엄청난 노동력 절감 효과였다. 빠듯이 사는 주부를 위해 이곳저곳에서 재봉틀이 할부로 판매됐다. 1890년이 돼서는 할부판매가 가구점으로 확대했고 미국 남북전쟁 이후에는 피아노, 오르간, 스토브 등 상품 대부분을 할부로 판매됐다. 20세기 초반에 이르러서는 자동차 할부 판매가 대중화하면서 프로그램도 다양해졌다.



         "나는 조상이 천년 동안 살아온 것보다 50년 동안 더 많은 생활을 변화시켰다"



할부제는 미국 이민사회도 흔들었다. 큰 변화는 미 동부로 이민 한 유태인들이 맞이했다. 19세기 서유럽을 중심으로 유태인 수만 명이 뉴욕행 배에 몸을 실었다. 그들은 전통적으로 경제관념이 철저하고 사업 수완이 좋았다. 1888년 유럽에서 뉴욕으로 이민한 유태인 루이스 볼게닉은 의류업으로 큰 성공을 거뒀다. 그는 "나는 조상이 천년 동안 살아온 것보다 50년 동안 더 많은 생활을 변화시켰다"라고 말했다. 뉴욕 로우어이스트 빈민가에 터전을 잡은 유태인들은 식료품점, 카페, 레스토랑, 옷가게 등을 열어 소매점 붐을 일으켰다. 자연스럽게 유태인 커뮤니티가 생기고 힘도 커져갔다.


소득이 늘어나자 그들의 물질적 기준은 미국인에 가까워졌다. 점차 자기 치장(greening oneself out)을 하고 과시적 소비에 눈을 돌렸다. 1890년대 이민 온 유태인들은 한 달에 10달러 이하짜리 작은 방에 살았지만 점차 방 3개짜리 호화 아파트로 이주했다. 부자들은 오래된 건물을 부수고 방 4, 5개짜리 아파트로 들어갔다. 1902년 건설 붐까지 일었다. 집에 개인 화장실이 들어가고 아파트에 엘리베이터가 대중화했다. 남들에게 어떻게 보이느냐, 그것이 유태인새로운 물질 기준이었다.


할부는 미 경제의 성장 촉진제였다. 책 '미국 역사 속 소비자 사회(Consumer Society in Amercan History)'에 에피소드가 하나 등장한다. 1902년 영국에서 뉴욕으로 이민 아나키스트 유태인 토머시 이지스는 젊은 국가 미국이 어떻게 10년에 걸쳐 세계 최고의 부자 나라가 됐는지 궁금했다. 그는 계약에 관한 첫 법률 수업에서 교수에게 물었다. 교수는 이렇게 말했다. 모든 사람들이 정직하다고 가정하는 것, 그것이 미국 경제의 원칙이다. 이처럼 할부제는 자본주의의 중요 작동 원리가 됐다. 1920년 유태인 스트라우스 가문은 뉴욕 대형 백화점 메이시스에서 중산층을 대상으로 할부 판매를 시작하기도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유태인들은 철저하게 저축을 했다. 할부를 이용해 소비 계획을 조정하고 저축은 저축대로 이어 나갔다. 할부가 저축과 소비 사이 발생하는 갈등을 해소하고 실제 소득보다 훨씬 부유하게 살게 했던 것이다. 유태계 언론들은 '버는 것보다 더 잘 사는 가족들'에 대해 집중 보도했다.


그렇더라도 할부는 그들에게 부담이었다. 소비가 늘어날수록 저축은 배로 힘겨웠다. 그들 역시 한국 이주 노동자들처럼 돈을 벌어 해외에 있는 친척들에게 돈을 보내야 했고 친척들도 그 돈을 모아 미국으로 오고 싶어 했다.


2017년 미국으로 이주한 뒤 처음 맞는 크리스마스다. LA 그로브몰에 화려한 트리와 대형 과자 집이 설치됐다.


할부가 시장 경제의 덩치를 키우는 효과는 있지만 경제 구성원의 건강성은 담보하지 못한다. 미 이민사회는 그렇다. 미국 생활을 흔히 '페이먼트 인생'이라고 말한다. 한 달 벌어 한 달 쓰는 삶이다. 한국과 달리 집 월세, 자동차 리스비, 보험비, 401K 연금 상품 등 매달 내야 할 돈이 많기 때문이다. 주변에 누가 저축을 한다고 하면 토끼눈으로 보는 분위기다. 매달 페이먼트를 하며 살다 노년에는 저렴한 노인 아파트에 들어가 연금을 받으며 사는 삶, 이것이 보편적인 아메리칸 라이프다.


나는 생존을 위해 각종 할부금을 없애야 했다. 먼저 한 것이 휴대전화비 절약이다. 우리 부부는 매달 통신비로 127달러를 냈다. 인터넷 무제한 요금제도 아닌 데이터 3기가짜리 저렴한 요금제를 쓰며 기기 2대 을 매달 할부로 내야했다. 연초 세금 환급으로 돈을 받아 한 대 기기 값 600달러를 일시불로 냈다. 매달 내던 통신비는 94달러로 떨어졌다. 입 안의 가시를 빼낸 느낌이었다.


집 인터넷 요금도 깎았다. 그동안 매달 통신사 스펙트럼 이용비로 49.99달러를 지출했다. 인터넷 공유기인 라우터를 직접 사서 쓰면 할인이 된다는 말을 들었지만 우편 내역서에는 라우터 임대비 항목이 없었다. 1년 가까이 무료인 줄 알았다. 이른바 숨겨진 요금이었다. 아마존에서 35달러에 라우터를 사서 임대한 라우터를 스펙트럼에 반납했다. 인터넷비는 45달러로 깎였다. 1년에 60달러 절약한 것이다. AT&T 등 속도가 느리면서 저렴한 인터넷 업체도 있지만 내 생활 습관이랑 달라 이용하지 않았다.


회원권도 일종의 할부금이다. 실제 소비한 것이 아닌 가상의 1년 치 이용료를 꼬박꼬박 나눠내는 것이기 때문이다. 코스트코 회원권을 취소했다. 3년 치 선급금으로 냈던 120달러도 돌려받았다. 대형마트 쇼핑은 신혼 생활의 아이콘 같은 것이다. 아내와 카트를 끌고 다니며 식료품을 가득 채우는 쾌감! 하지만 1년 가까이 코스트코를 이용한 결과 음식물 대부분을 다 먹지도 못하고 버렸다. 원 플러스 원, 대량 포장된 빵이나 소시지, 냉동 야채 등은 질릴 정도로 많았다. 가게도 멀어 차를 타고 30분 정도 나가야 했다.


악마는 디테일에 숨어 있다. 가계부의 메피스토는 할부다. 저축과 소비 사이 끊임 없는 악마와의 거래가 좋다면 할부를 권한다. 다만 할부는 당신보다 치밀하며 성실하고 집요하다.




참고자료


1. Encyclpedia

https://www.encyclopedia.com/history/dictionaries-thesauruses-pictures-and-press-releases/installment-buying-selling-and-financing


2. getoutofdebt

https://getoutofdebt.org/14344/the-history-of-credit-debt-early-installment-sales


3. Consumer Society in American History ; 저자 Glickman ; Chapter 11


4. 달러이야기 ; 홍익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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