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숙기: 4단계 ①우리 알던 성공방식이 독이 된다.

성공방식의 관성이 모이면 관료주의가 된다

by Serena

"앞으로 메기역할을 해주길 기대할게요!"

입사 후 경영진과 티 미팅이 있던 날. 상무님께서 내게 건넨 말이었다.


"우리 조직에서 메기가 되길 바라고, 신사업과 관련된 일을 잘해주길 바래요"

그 회사는 M&A로 연속적인 성공을 거두고 주력사업이 독보적으로 자리 잡으면서 성장의 궤도를 그려온 조직이었다. 뛰어난 사업조직과 전문성 높은 구성원들에, 게다가 오너로 이루어진 경영철학과 메시지로 한 시대를 풍미했던 회사였다.

이제는 성숙기인 주력사업을 이을 신사업을 내부에서 키우면서 외부의 M&A를 모색 중이었고,

'성공 DNA'라는 말이 어울릴 정도로 내부에는 자신감이 흘러넘쳤다.

그러면서 한편에서는 한 시대를 풍미했던 시절에 대한 향수와, 다시 그때의 성공으로 이끌고 싶은 열망이 있었다.

개인적으로는 오래전부터 이 회사가 가지고 있는 조직문화와 인사제도를 배우면서, 그것들을 만들어낸 동료와 선배들과 함께 일을 해보고 싶다는 나름의 로망도 있었더랬다.

그렇게 입사한 회사였다.


입사 후 얼마 지나지 않아 묘한 긴장과, 이따금 불쑥 올라오는 갈등을 느꼈는데,

모두가 열심히 일하고 있었지만 대화 속에는 보이지 않는 무게 중심축이 느껴진 것이다.

오랫동안 주력사업을 이끌어온 이들이 자연스럽게 중심에 있었고, 신사업은 중요하다고 말하면서도 어디까지나 '아직 성과를 보여주지 않음'의 위치에 머물러 있었다.

당연히 주력사업은 이미 성과로 검증된 영역이었고, 신사업은 아직 결과로 증명되지 않은 미래의 영역이었다. 겉으로는 두 영역이 나란히 언급되었지만, 수면 아래에서는 "성과가 아직 없는 사업에 기존사업 수준 이상의 보상을 줘야 한다는 게 과연 맞을까?"라는 공감대가 조용히 자리 잡고 있었다.


그리고 종종 "신사업이 뭐가 다른가요? 결국 우리가 그동안 했던 것처럼 하면 돼요."

다수 동료들의 이 말은 악의 없는 조언이었지만, 그 안에는 오랜 성공의 자신감이 스며 있었다.

튀지 말라는 시선, 검증된 길을 따르라는 암묵적 메시지. 누구도 그걸 강요하지 않았지만, 모두가 그런 메시지 안에서 서로를 묶고 있었다.

이런 공기가 신사업에 동력을 불어넣고 추진하는 데에서는 머뭇거리는 요소로 자리 잡고 있었다. 그리고 누구도 나서서 그 일에 힘을 넣지 않고 있었다.

생각보다 훨씬 미묘한 방식으로, 새로운 시도는 곧 "튀는 것"이라는 부정적 인식으로 굳어지고 있었다.


관성의 언어


내가 합류했을 때는 이미 수년 전 외부 컨설팅을 통해 신사업을 위한 사업 분석과 인사제도 초안을 다듬어 놓은 최종 보고서가 있었다.

그러나 컨설팅이 끝난 뒤에도 내부에서는 아무런 변화가 일어나지 않았고, 당시의 담당자들조차 이대로 해야 하는가에 대한 확신이 없었다.

일부 방안은 내부에서 이미 추진했지만 효과가 없었다는 것이고, 일부는 내부에서도 선뜻 의사결정하기 어려운 제도였다고 생각한다.(한국의 노동법 특성상 보상제도는 한번 도입하면 되돌리기 어렵다는 현실도 한 이유였을 것이다.)


신사업은 이미 추진이 되었지만 인사제도 차원에서는 기존사업과 다를 것이 전혀 없었다.

"컨설팅 결과에서 좋은 방향성이 나왔다"는 평가만 있었을 뿐, 사업적 실행을 제외한 제도적 실행이 진행되지 않고 추가 검토 단계에 머물러 있었다.

그로부터 시간이 흐른 뒤, 내가 그 조직에 합류했고, 내게 주어진 미션은 명확했다. "우리 그룹의 신사업에 맞는 인사제도와 보상체계를 만드는 것."

물론 기존에 있는 동료들은 다들 내로라하는 우수한 인재였고, 책임감과 조직에 대한 로열티가 강했다. 회사와 조직에 대한 믿음이 우수한 만큼 '회사의 기존 성공했던 방식에 대한 확신'이 단단했다. 그들은 이미 여러 차례 성공을 경험한 사람들이었고, 그 성공의 기억이 곧 '다른 성공의 기준'이 되어 있었다.


그러나 신사업은 전혀 다른 환경이었다.

기존의 성공 방정식이 통하지 않았고, 심지어 기존 인력 중에서도 신사업으로 이동한 인력들은 새로운 방식으로의 성과기준과 새로운 보상 철학과 구조가 필요하다는 것을 느끼고 있었다.

하지만 그런 말로 대화를 하게 되면, 순간 조직의 공기가 미묘하게 변했다.

"우리가 못해서 000님을 채용한 게 아니에요"

"밖에서 온 사람이 우리 회사에 대해 얼마나 안다고…"

그리고 그중 일부는 감정 섞인 불만을 토로하기도 했다.

"굴러온 돌이 박힌 돌 빼내는 거죠."


돌이켜보면, 그들의 우려는 매우 합리적인 선택에서 나온 반응이었다.

지금까지의 모든 난관과 고비를 극복해 온 축적된 방식이 있었고, 그 방식이 이미 '회사 전체의 정체성'이 되어 있었다. 그들은 회사에 대한 로열티만큼이나 그러한 방식에 대한 신뢰가 있었다.

그럼에도 여기서 중요한 점은, 바로 그 점이 뭔가를 진행하지 못하게 하는 역설이라는 것.

그들의 성공 경험이 깊을수록, 새로운 환경에서 다른 방식이 필요할 수 있다는 가능성을 받아들이기는 더 어려웠다.

이것은 누구의 잘못도 아니었다.

성공의 공식이 오랫동안 축적되었을수록, 그 공식을 의심하는 것은 점점 더 어려워진다.


메기 역할의 진짜 의미


경영진이 말한 "메기 역할"의 의미를 나는 나중에서야 제대로 이해했다.

(사실, 당시에는 이 말을 듣고 무척이나 서운했었다. 나는 조직 안에 녹아들고 싶었는데, 마치 경력직으로 입사한 나를 정서적으로 밀쳐내는 것처럼 느껴졌었다.)


메기는 혼자서 생태계를 바꾸는 존재가 아니다.

오히려 메기의 역할은 조직 안에 이미 잠재되어 있던 변화의 필요성을, 밖에서 들어온 사람의 새로운 시각으로 드러내는 것뿐이었다. 실제로 기존 구성원들과 경영진도 변화의 필요성을 느끼고 있었다. 다만 그것을 어떻게 시작할지, 무엇부터 바꿔야 할지에 대한 구체적인 그림이 필요했던 것이다.

나는 제도를 설계하는 과정에서, 기존 주력사업들을 이끄는 그들의 완벽한 제도가 신사업에는 적합하지 않을 수 있는지를 함께 대화해야 했다.

그 과정은 단순히 제도의 논리를 설명하는 것을 넘어서는 일이었다.

오랜 시간 함께 일해온 동료들이 쌓아온 신뢰와 성공의 경험을 존중하면서도, 새로운 환경에서는 다른 접근이 필요할 수 있다는 것을 함께 모색해야 했다.

외부에서 온 내 입장에서는 그들이 경험하지 못한 다른 산업의 사례를 공유할 수 있었지만,

동시에 나는 이 회사의 깊은 맥락과 역사를 아직 충분히 알지 못했다.

서로가 가진 다른 시각을 연결하는 과정이었고, 때로는 그 과정이 서로에게 불편함을 주기도 했다.


사실, 어쩌면 기존에 있던 구성원과 경영진도 알고는 있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나는 단지 외부의 시각을 가지고 있는 내부 직원으로서 작은 넛지를 심는 역할이었을 수도 있다.

변화는 한 사람이 만드는 것이 아니라, 시스템 전체가 준비되었을 때 비로소 일어난다.

그러나 다행히도, 경영진은 끝까지 방향을 유지해 주었고, 결국 그 프로젝트는 완성되었다.

그 후 신사업은 그 새로운 제도 위에서 빠르게 성장했고, 몇 년 뒤, 그 신사업은 IPO에 성공하며 그룹의 새로운 주력사업으로 자리 잡았다. 당시 주식시장의 주목을 받았던 그 상장은, 사실 몇 년 전 조직 내부의 조용한 전환에서 시작되었던 것이다.


돌이켜보면, 내가 겪었던 가장 큰 과제는 조직의 성공 경험을 너무도 깊게 가지고 있는 조직 그 자체였다. 성공의 기억이 너무 분명했기에, 그것을 '다른 방식으로 해석할' 필요성이 쉽게 느껴지지 않았던 바로 그 조직.

그것은 일종의 관료주의였고, 관료주의는 곧 성공을 지키려는 선의가 관성으로 작용하면서 축적해 낸 단단한 구조물인 것이다.


완벽함이 만든 정지 상태


질풍노도의 시절과 같았던 조직성장 3단계를 성공적으로 지나온 조직은 이제,

'성공한 회사'의 면모를 갖추게 된다. 그리고 이 시기의 회사들은 우리가 익히 잘 알고 있고 들어봄직한 다수의 대기업과 그룹사들이 속한 단계이기도 하다.

이들은 어떻게 하면 조직이 통합되어 성장할 수 있는지를 몸소 체질로 쌓아오면서 그 힘으로 점차 조직을 확대하고 계열사를 거느리며 성장한 회사들이다. 그들의 시스템은 정교하고, 의사결정은 단계적이며, 경영관리 프로세스는 탄탄하다.

성과관리 체계와 평가제도, 리스크 관리 시스템까지... 모든 것이 효율적으로 작동하고 있다. 누가 봐도 벤치마킹 대상이고, 모범적인 기업이고, 회사에 대한 로열티와 만족도가 높다.


그러나 모든 진화하는 것들이 그러하듯이, 성숙기란 영원할 수 없다. 경영은 늘 새로운 비즈니스를 찾고, 조직은 설립 초기부터 도전과 극복을 반복하며 성장해 왔다. 그런데 그간의 어려움을 뚫고 성공의 신화를 써온 조직에게, 다시 처음처럼 도전하라는 것은 — 쉽지 않다.


"우리는 이렇게 잘하고 있는데, 굳이 새로운 방법으로 시도해야 하는 걸까?"

분명 시스템은 완벽하고, 프로세스도 체계적이다. 하지만 어느 순간부터 도전이 마치 이 완벽한 체계에 구멍을 내는 것과 같고, 잘 쌓인 레고블록을 무너뜨리는 것 같이 느껴진다.

현장에서 새로운 제안이 나와도 "단계적 검토가 필요하다"를 번복하게 된다.

말뿐이 아니라, 실제로 새로운 도전에는 지금의 안정적 시스템을 일부 부정하거나 조각난 것과 같은 상태로 만들어야 하는데, 그걸 개인이 나서기란 용기가 필요하고 설득이 쉽지 않다.

"굳이 왜 그래야 하는가?"에 대한 것을 이성적 논리로만 설득하란 개인도 집단도 어렵기는 마찬가지일 것이다.


그래서 이 시기에는 혁신을 외치지만, 정작 먼저 나서서 실행으로 옮기는 것이 쉽지 않다.

안정적인 기반 하에서 뻔히 나올 성과를 포기하고, 언제 성과로 나타날지 모르는 도전이란 눈앞의 먹이를 포기하는 것처럼 느껴질 수 있기 때문이다.

이것이 바로 4단계 조직이 마주하는 거대한 벽이다. 성공이 만든 관성, 그리고 그 관성이 만들어낸 보이지 않는 족쇄이다.


모든 조직이 이 현상을 지나게 되어 있다


대기업만의 문제는 아니다.

모든 조직은 성숙하면서 4단계의 관료주의에 진입하게 되어 있다. 즉, 꽃이 피면 열매를 맺듯이 자연스러운 현상인 것이다. 빅테크도, 스타트업도.... 규모가 커지고, 성공의 스토리를 쌓아가면서 이러한 상황은 언젠가 마주하게 된다.

조직이 성장하면 자연스럽게 기획, 재무, HR과 같은 지원부서의 역할이 많아지고, 이들은 자연스럽게 자신들의 전문성으로 조직에 기여하기 위해 더 많은 규칙과 절차를 만들게 된다.

문제해결 '도구'였던 시스템은 어느덧 시스템 유지를 위한 '목적'이 되어 버린다.

앞에서 언급했던 관료화가 되어가는 조직들은 대체로 다음의 세 가지 상황을 경험하면서, 그들의 성공에 대한 합리적 선택을 더욱 강화하게 된다.


첫째, "해본 대로 하는 게 안전하다"

"내가 해본 것이 성공해 온 길인데, 굳이 새로운 도전으로 다른 위기를 불러올까?"

심리학에서는 이를 '현상유지 편향(Status Quo Bias)'이라고 부른다.

사람들은 현재 상태를 특별한 이득이 없으면 바꾸지 않으려는 경향이 있으며, 이는 손실회피(loss aversion)와 부존효과(endowment effect) — 이미 가진 것에 더 높은 가치를 부여하는 경향 — 에서 비롯된다.

"우리가 못해서 새로운 사람을 데려온 건 아니잖아?"라는 말 뒤에는, 검증된 방식을 버리는 것에 대한 깊은 불안이 있었던 것이다.

4단계 조직의 구성원들은 유능하고 합리적이다.

그들은 3단계의 혼란을 극복하며 '검증된 성공 공식'이 무엇인지 정확히 알고 있다. 바로 그 공식을 따랐기에 지금의 성공이 있었다. 그런데 이제 새로운 방식을 시도하라고 하면서, 성공할지 불확실한 실험에 조직의 소중한 자원을 투입하라고 한다.

그들의 입장에서 이것이 합리적인 선택이라고 쉽게 여겨질까?


둘째, "지금, 이것이 최선이다"

이 조직이 더욱 새로운 시도가 쉽지 않은 이유는, 현재 이 상태가 너무 "딱 좋음"이기 때문이다.

"현재가 너무 딱 좋은 합인데, 굳이 새로운 것으로 합이 흐트러질까 봐."

이게 대부분 이 단계의 조직에서 구성원들이 느끼는 정서적 상태이다.

심리학에서는 '체제 정당화 이론(System Justification Theory)'이라고 한다. 사람은 단순히 현상을 유지하려는 것을 넘어, 현재 상태를 적극적으로 옹호하고 정당화하려는 경향을 갖는다는 것이다. 원래는 불이익을 받는 집단이 오히려 기존 체제를 방어하는 현상을 설명하기 위해 제안된 개념이지만, 조직 안에서 성공을 경험한 구성원들이 기존 방식을 강하게 옹호하는 패턴에도 같은 메커니즘이 작동한다.

변화를 제안하는 사람의 의견에 반발하는 것이 자신이 속한 조직의 성공 방식을 지키려는 본능이라는 것이다.

신사업 인사제도를 위해 기존 제도의 적용을 부정하고 새로운 시도를 하는 것이 기존 구성원들의 눈에는 조직의 정체성을 흔드는 것처럼 보였을 것이다.

그래서 4단계 조직에서는 변화를 제안하는 사람이 때로는 조직 내에서 '앗싸' 혹은 '이단아'가 되기도 한다.


셋째, "단계적 검토가 필요하다"

4단계 조직의 구성원들은 신중하다. 함부로 결정하지 않으며, 충분한 검토와 협의를 거쳐 최선의 선택을 하려 한다. 이것은 분명 조직의 성숙함을 보여주는 모습이다.

하지만 바로 이 '신중함'이, 역설적으로 가장 중요한 순간에 아무도 결정하지 못하는 의사결정 마비를 만들어낸다.

고객의 중요한 보상 요청이나 직원의 절실한 조정 요구가 있어도, '더 신중하게 검토해야 한다', '관련 부서와 충분히 협의해야 한다'는 명분 아래 결정은 계속 미뤄진다.

더 나아가 이러한 신중함은 "단계적 검토"라는 절차가 자칫 "책임의 무한 분산"이 될 수도 있다.

그리고 책임의 소재가 불분명할수록, 결정은 지연된다.

그 지연이 반복되면서, 조직 전체에 미묘한 문화가 형성된다.

"빠른 결정을 내렸다가 문제가 생기면 비난받지만, 신중하게 검토하다가 기회를 놓쳐도 비난받지 않는다"

결국 구성원들은 자연스럽게 '신중한 검토'라는 가장 안전한 방패 뒤에 머물게 된다.

이는 결코 무책임해서가 아니다. 오히려 조직의 기대에 부응하려 하고, 완벽함을 추구하려는 성실한 전문가들의 합리적 선택인 것이다.


벌써 눈치챘겠지만,

조직성장 4단계에 속한 구성원들은 합리적 선택을 하고 있는 것이다.

게다가 톱니바퀴와 같이 서로의 공감대와 업무에서의 합이 아주 잘 맞는 상태이기 때문에, 현장에서는 개인들의 선택이 모인 조직 전체가 하고 있는 선택에 균열을 주기 힘들게 된다.

그러나 이러한 개인들의 합리적 선택이 집단적으로 모였을 때, 역설적으로 조직 전체로는 비합리적인 결과를 낳게 된다. 경제학에서는 이를 '구성의 오류(fallacy of composition)'라고 부른다 — 개별적으로 합리적인 선택들이 모이면, 집합적으로는 최선이 아닌 결과를 만들어낸다는 것이다.

즉, 모든 구성원이 합리적이고 책임감 있게 행동하면, 오히려 집단 전체는 변화와 혁신을 잃게 되어 결국은 비합리적인 선택지를 갖게 되는 것.

스탠퍼드 경영대학원의 제임스 마치(James March)는 이를 이렇게 설명했다. 조직이 검증된 방식의 효율적 운영에 몰두할수록, 새로운 가능성을 탐색하는 역량은 서서히 고갈된다. 단기적으로는 효과적이지만 장기적으로는 자기 파괴적이 되는 것이다. 성공이 쌓일수록 그 성공 방식에 더 깊이 의존하게 되고, 결국 그것이 다음 성장을 가로막는 함정이 된다.

즉, "효율의 합리성은 혁신에게는 비합리성"이 되는 것이다.

성공은 언제나 한 시대의 답이었다.


그리고 그 답이 다음 시대에는 '정답'이 아닐 수도 있다.

따라서 조직이 성장의 각 단계를 지나며 배워온 모든 원칙과 체계는, 언제든 다시 의심할 수 있어야 한다. 그리고 조직은 성장 과정을 거치며 매번 다른 형태의 용기를 요구하며 진화해 왔다.

1단계에서는 혼돈 속에서도 구조를 세우는 용기, 2단계에서는 권한을 나누고 신뢰를 배우는 용기, 3단계에서는 조정과 통합으로 전체를 하나로 묶는 용기.

그리고 지금, 4단계 안에서 이제 필요한 것은 '더 좋은 정답'이나 '새로운 정답'을 제시하는 것이 아니다. 기존의 정답을 해체하고 다시 조립할 수 있는 용기이다.


성공의 균형을 깨뜨릴 수 있는 용기, 그것이 4단계의 본질이자 다음 성장의 문을 여는 열쇠이다.

그러나 이때 말하는 용기는 단지 한 사람의 결단이나 리더의 개인적 담대함을 뜻하지 않는다.

용기가 조직 안에서 지속적으로 발현될 수 있도록 뒷받침하는 구조,

즉 실패를 감당할 여유, 실험을 허락하는 제도,

그리고 다른 방식의 시도를 가능하게 하는 시스템이 함께 설계되어야 한다.

용기를 요구하는 조직이 아니라, 용기를 가능하게 하는 조직. 그것이 4단계를 넘는 첫걸음이다.

그렇다면 4단계를 넘어서기 위해 필요한 것은 무엇인가?


조직은 각 성장 단계마다 전환의 열쇠가 되는 구조적 장치가 있었다.

1단계에서는 혼돈 속에서 최소한의 '역할과 책임'이라도 명확히 하는 것이 시작이었다.

2단계에서는 리더십이 제대로 발휘될 수 있는 토대를 마련하는 것, 그중에서도 '성과관리와 평가제도'가 핵심이었다.

3단계에서는 부분 조직들 간의 '조정 메커니즘'을 통해 전체 최적화를 지향하는 운영 흐름을 만드는 것이 관건이었다.

그렇다면 4단계는?

이전 단계들이 '무엇을 더 만들 것인가'에 집중했다면, 4단계는 '무엇을 하지 말아야 하는가'를 정하는 것이 더 중요해진다. 성공한 조직일수록, 완벽한 체제를 완성하는 것보다 의도적으로 빈 공간을 두고 불완전함 속에서 계속 진화하는 것이 핵심이다.


"당신은 이제, 당신이 이루어 온 성공 방식을 의심할 수 있겠는가?"

그 물음을 품고 나서야, 구조를 다시 설계하는 일이 시작된다.


#관료주의, #대기업, #변화관리, #신사업, #합리적선택, #성숙기



위 글의 참조 및 참고자료

현상유지 편향 (Status Quo Bias)

Samuelson, W., & Zeckhauser, R. J. (1988). "Status quo bias in decision making." Journal of Risk and Uncertainty, 1, 7–59.

Kahneman, D., Knetsch, J. L., & Thaler, R. H. (1991). "Anomalies: The Endowment Effect, Loss Aversion, and Status Quo Bias." Journal of Economic Perspectives, 5(1), 193–206.

체제 정당화 이론 (System Justification Theory)

Jost, J. T., & Banaji, M. R. (1994). "The role of stereotyping in system-justification and the production of false consciousness." British Journal of Social Psychology, 33(1), 1–27.

Proudfoot, D., & Kay, A. C. (2014). "System justification in organizational contexts." Research in Organizational Behavior, 34, 173–187.

조직학습과 성공의 함정

March, J. G. (1991). "Exploration and Exploitation in Organizational Learning." Organization Science, 2(1), 71–87.

Levinthal, D. A., & March, J. G. (1993). "The myopia of learning." Strategic Management Journal, 14(S2), 95–112.

조직 성장 단계 이론

Greiner, L. E. (1972). "Evolution and Revolution as Organizations Grow." Harvard Business Review, 50(4), 37–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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