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의 논리"로 오늘을 살 수는 없다
"격변의 시대에 가장 큰 위험은 격변 그 자체가 아니라,
어제의 논리로 행동하는 것이다."
앞에서 우리는 4단계 조직이 마주하는 세 가지 현상을 살펴보았다.
"해본 대로 하는 게 안전하다"는 현상유지 현상,
"지금, 이것이 최선이다"는 현재 체제의 정당화,
그리고 "빈틈없는 단계적 검토가 필요하다"는 의사결정의 체계.
이 모든 현상의 뿌리를 들여다보면, 하나의 공통된 원인을 발견할 수 있다.
피터 드러커는 격변의 시대에 가장 큰 위험은 현실을 부정하려는 유혹이라고 했다. 4단계 조직에서 그 유혹은 다름 아닌 "어제의 논리"의 형태로 찾아온다.
창업초기부터 조직을 여기까지 오게 한 성공 공식, 검증된 시스템, 익숙한 방식.
이것들이 과거에는 분명 최선이었다. 하지만 조직의 규모가 커지고, 환경이 복잡해진 지금, 그 동일한 논리는 더 이상 작동하지 않는다.
이미 확인했듯이, 4단계 조직의 구성원들은 결코 무능하거나 게으르지 않다. 오히려 매우 유능하고 논리적이며 높은 수준의 지식을 지녔다.
각자는 자신에게 주어진 역할에서 최선을 다하는 것은 물론이고, 가장 최선의 빈틈없는 논리와 다양한 경우의 수를 모두 검토하며 일하고 있다. 경험 많은 전문가들이 신중하게 판단하고, 책임감 있게 행동하며, 조직의 원칙을 따르려 노력한다.
"해본 대로 하는 게 안전하다"는 무책임한 회피가 아니라, 검증된 방법을 따르는 합리적 선택이다. "지금, 이것이 최선이다"는 안일함이 아니라, 실제 성공을 만들어낸 시스템에 대한 정당한 신뢰이다. "빈틈없는 단계적 검토의 필요성"은 경직성이 아니라, 신중함과 빈틈없는 일을 추구하는 성실함이다.
그렇다면 왜 이렇게 합리적이고 선의를 가진 사람들이 모였을 때, 조직 전체는 관성에 빠지는가?
앞서 언급한 세 가지 현상을 다시 떠올려보자.
현상유지 편향으로 검증된 방식을 고수하고,
체제 정당화로 현재 상태를 적극 옹호하며,
빈틈없는 신중함이 만든 의사결정 마비로 결정을 계속 미루게 된다.
이 모든 현상에서 개개인은 자신이 속한 조직의 논리 안에서 가장 합리적인 선택을 하고 있었다.
그러나 여기서 핵심은, 개인의 역량이나 의지와 관계없이, 문화나 리더십만의 문제도 아니며, 우리가 성공하면서 축적해 온 노하우와 그것이 만들어낸 구조 그 자체가 조직을 관성에 빠지게 하고 있다는 것.
조직 안에서 개인은 조직의 논리와 흐름 안에서 판단하고 결정하고 행동하게 된다.
아무리 혁신을 외치고, 변화를 강조해도, 구조가 바뀌지 않으면 사람들의 합리적 선택은 여전히 조직 안에서 현상을 유지할 수밖에 없다. 몇몇 중간관리자의 리더십으로 문화를 바꾸려는 노력만으로는 충분하지 않을 수 있다. 조직이 구조적으로 해결하지 않으면 실질적인 변화로 이루어지는데 한계가 있다.
물론 조직성장 4단계의 현실은 더 이상 몇 가지 구조적 모델이나 단편적인 해법으로 완벽히 설명될 수 없을 것이다. 여러 사업부와 제품, 다양한 지역과 문화가 뒤섞인 복잡한 조직에 하나의 일관된 제도를 적용하려는 시도 자체가 현실적이지 않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이 시기는 절정의 성장과 새로운 위기가 동시에 찾아오는 전환점이자 재도약의 기로에 서 있는 중요한 시점이다. 성공의 정점에서 다음 성장을 위한 변화를 선택해야 하는 조직의 운명이 갈리는 순간이기도 하다.
그렇다면 이 완벽함을 유지하려는 관성을 어떻게 깨뜨릴 것인가? 조직이 구조적으로 무엇을 바꿔야 다음 단계로 나아갈 수 있는가?
이제부터는 이 관성을 깨고 다음 단계로 나아가기 위한 구조를 어떻게 가져가야 할지를 하나씩 알아보도록 하자.
4단계 조직의 문제를 한두 가지 원인으로 단정하기는 어렵다.
어떤 조직은 리더십이 조직 규모에 맞게 진화하지 못한 채, 여전히 2단계의 방식으로 4단계 조직을 이끌고 있을 수 있다. 또 어떤 조직은 제도는 10년 전 그대로인데 조직만 4단계 규모로 커져버렸을 수 있다. 통제가 문제인 조직이 있는가 하면, 오히려 통제의 부재가 문제인 조직도 있다. 조직문화의 경직성, 리더십의 미성숙, 산업 환경의 급변, 구성원의 피로감까지 — 수많은 요인이 복잡하게 얽혀 있다.
하지만 이 복잡함 속에서도, 겉으로 드러나는 증상은 제각각이지만 그 밑바닥을 파고들다 보면 결국 두 개의 공통된 지점으로 수렴한다. 그 가운데에는 성장하며 축적되어 온 성공 스토리와 관행, 관습, 절차, 체계 등의 구조들이 '관성'으로 자리 잡고 있다.
이러한 관성이 나타나는 형태는 크게 두 개의 축으로 정리할 수 있다.
하나는 개인의 합리적 선택이 만드는 집단적 관성이고, 다른 하나는 과거 성공의 DNA가 만든 구조적 함정이다. 이 두 가지를 이해하지 않고서는 4단계의 어떤 문제도 근본적으로 해결하기 어렵다. 동시에 이 두 축을 이해하고 나면, 지금 우리 조직이 어떤 지점에 서 있는지, 무엇이 가장 시급한 문제인지를 스스로 진단하기 시작하는 발판이 될 것이다.
앞서 본 4단계 조직에서 공통적으로 보이는 세 가지 현상 - 현상유지 편향, 체제 정당화, 의사결정 마비 - 을 떠올려보자.
각각의 현상을 보면 개인들은 모두 각자 합리적으로 행동하고 있었다.
검증된 방식을 따르는 것. 성공을 만든 시스템을 신뢰하는 것. 신중하게 검토하는 것.
이 모든 것이 그 조직 안의 개인들 관점에서는 지극히 합리적인 선택이다. 그러나 이러한 합리적 개인들이 모였을 때 조직전체의 입장에서는 과연 합리적인가?
사람들은 이득보다는 손실에, 불확실한 것보다 확실한 것에 주의를 기울인다. 4단계 조직에서 이 메커니즘은 더욱 강력하게 작동한다. 왜냐하면 이들은 실제로 실패한 경험과 성공한 경험들이 누적된 수많은 사례를 알고 있고, 그 결과는 조직의 의사결정과 업무프로세스 안에 담겨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그들에게 "이 방식이 우리를 성공시켰다"는 확신은 단순한 편향이 아니라 조직 안에서 오랜 시간 수많은 경험으로 증명된 사실이다.
더 나아가 사람들은 단순히 현상을 유지하는 것을 넘어 적극적으로 현재 상태를 옹호하고 긍정하려는 경향이 있다. 조직 차원에서 이것은 집단적 합의로 더욱 견고해진다.
"우리는 이렇게 해왔고, 이것이 우리의 정체성이다."
결국 개인의 합리적 선택이 모여 "새로운 시도=위험"이라는 집단적 관성을 만들어낸다.
이것은 단순히 심리적 저항의 문제가 아니라는 것이며, 아무리 구성원들의 마인드셋을 바꾸려 해도 조직의 구조 자체가 이러한 선택을 강화하고 있다면 소용이 없다.
따라서 본질적인 원인은 개인들이 아니라 조직이 축적해 온 관행과 관습, 시스템, 체계 등의 구조에 있다.
그렇다면 조직의 구조가 어떻게 관성을 만들어내는 걸까?
흥미로운 것은 조직이 조직성장 3단계의 위기를 어떻게 극복했느냐에 따라 4단계에서 마주하는 구조적 함정의 모습도 달라진다는 것이다.
이를 크게 보면 두 가지로 나누어 볼 수 있다.
1. 통제 강화형 조직의 함정
조직성장 3단계의 혼란을 강력한 시스템과 관리 체계로 극복한 조직들은 '성공 = 정교한 시스템'이라는 강한 믿음을 갖게 된다. 그래서 조직 안에 문제가 발생할수록 더욱 완벽한 규칙과 절차를 만드는 데 집중한다.
그런데 시스템은 자기증식하는 경향이 있기 때문에, 기획/재무/HR과 같은 지원 부서는 자신의 전문성을 발휘하여 조직에 기여하기 위해 더 많은 규칙을 만들어낸다. 문제 해결을 위한 '도구'였던 시스템은 어느덧 시스템 유지를 위한 '목적'이 되어버린다.
이는 조직의 규모가 커질수록 '객관성'과 '공정성'을 위해 측정 가능한 단기 성과 지표가 가장 중요한 기준이 되고, 실패는 곧 그들이 전문성으로 기여하지 못하는 것이자 '불필요한 비용'으로 인식하게 된다.
2. 자율성 추구형 조직의 함정
이와 반대로, 3단계의 위기를 각 사업부나 팀의 빠른 의사결정과 시장 대응력으로 극복한 조직들은 다른 형태의 함정에 빠진다.
각 사업부가 알아서 시장을 개척한다는 성공 공식에 따라, 전사적인 방향성을 제시하는 컨트롤 타워의 역할은 더욱 의도적으로 최소화된다. 각 팀은 자신들의 전문 영역에서 최고의 성과를 내는 것을 가장 중요한 가치로 여기고, "우리 팀의 성공이 곧 회사 전체의 성공"이라는 인식이 지배적 문화가 된다.
이때 리더는 각 팀의 전문성과 자율성을 존중하는 '조력자'가 되지만, 이것이 점차 리더십의 면책부로 작용하기 시작한다.
"각 팀이 가장 잘 아니까 그들의 판단을 믿어야 한다."
"자율성을 침해하면 사기가 떨어질 것이다."
각 팀이 알아서 잘하고 있다는 믿음. 그들이 전문가이니 내가 개입하는 것이 오히려 방해가 될 것이라는 생각. 자율성을 존중하는 것이 좋은 리더십이라는 확신.
이러한 신념이 강해질수록, 전사적 조정이 필요한 순간에도 리더는 주저하게 된다.
각 사업부가 서로 다른 방향으로 가고 있는 것이 보이는데도, 시장 환경이 급변하여 전사차원의 전략 전환이 필요한데도, "각 팀을 믿고 기다려야 한다"는 명분으로 필요한 개입이 어렵게 된다.
두 유형의 공통점
겉으로 보기엔 정반대 같지만, 두 유형은 본질적으로 같은 문제를 안고 있는 것이다.
두 유형 모두 선의를 가지고 각자의 성공 경험과 전문적 신념에서 출발한다. 하지만 바로 이 검증된 성공 공식이 구조로 굳어지면서, 결국 "합리적 개인이 만드는 비합리적 조직"이라는 4단계의 근본적 모순을 만들어낸다.
결국 앞서 살펴본 두 개의 축 - ①개인의 합리적 선택과 ②과거 성공의 DNA가 만든 구조 - 은 서로를 강화하며 조직을 관성 속에 가두게 되는 것이다.
개인은 구조가 만든 논리 안에서 합리적으로 선택하고, 그 선택이 다시 구조를 더욱 견고하게 만드는 것. 이것이 바로 4단계 조직이 빠지는 구조적 함정이다.
3단계의 위기를 극복하게 해 주었던 바로 그 강점이, 조직의 규모와 환경이 바뀌면서 이제는 성장을 가로막는 약점으로 전환되는 것이다.
지금까지 우리는 4단계 조직의 관성이 어디서 오는지 살펴봤다.
조직 안에서의 개인은 검증된 방식을 따르고, 현재를 옹호하며, 신중하게 판단한다. 각자는 합리적이지만, 이것이 모여 "새로운 시도=위험"이라는 집단적 관성을 만든다.
동시에 조직의 구조 또한 개인들의 이러한 선택을 강화한다. 통제 강화형 조직은 더 완벽한 시스템을 만들고, 자율성 추구형 조직은 각 팀의 독립성을 극대화한다. 두 유형 모두 과거의 성공 DNA를 구조로 굳혀가며, 개인의 선택과 조직의 구조는 서로를 강화한다.
그 결과는 이렇다.
톱니바퀴처럼 정교하게 맞물린 완벽한 시스템.
빈틈없이 작동하는 조직. 모두가 한 몸처럼 움직이는 합.
3단계의 혼란을 극복하게 해 준 바로 이 완벽함이, 이제는 새로운 것이 들어올 공간을 막고, 실험할 여지를 없애며, 다른 의견을 배척하는 함정이 되었다.
그렇다면 어떻게 이 함정에서 벗어날 것인가.
완벽함이 만든 관성. 그렇다면 이를 극복하려면 무엇을 해야 할까?
보통 더 좋은 제도로 만들기 위해 개선하고 더 보완하는 작업을 하거나, 아예 다른 제도로 전환하기 위해 통합적으로 외부의 컨설팅을 쓰거나 내부에서 엄청난 규모의 프로젝트를 하게 된다.
그런데, 아이러니하게도 무언가를 더할수록 조직은 더 견고하게 체계화되고, 조직 내에는 일을 하기 위해 제도를 쓰는 게 아니라, 제도를 따르기 위한 일을 하는 것이 돼버릴 것이다.
무엇보다 조직 내 피로도가 높아지고 더욱 신중하게 되면서 관성이 높아질 것이다.
역설적이지만, 이때는 더 완벽한 시스템을 만드는 것이 아니라 의도적으로 불완전함을 설계하는 것이 필요하다.
빈 공간을 만들어야 한다. 불편함을 허용해야 한다. 다른 목소리를 위한 자리를 마련해야 한다.
그러나 이것은 문화나 구호로 되지 않기 때문에 그를 위한 구조의 재설계는 반드시 필요하다.
여기서는 4단계 조직이 반드시 고민해봐야 할 세 가지 설계 방향을 제시할 것이다.
이를 각 조직의 상황에 맞게 적용할 수 있는 사고의 틀로 활용해 보기를 바란다.
왜 이것이 필요한가
안정적인 운영과 혁신적인 실험은 근본적으로 다른 논리로 작동한다. 가령, 기존 사업은 예측 가능성과 효율성을 추구하고, 신사업은 불확실성 속의 빠른 학습을 필요로 한다.
특히 많은 계열사를 거느리고 있는 대기업이나 그룹사의 경우 이 두 가지를 하나의 시스템으로 관리하면서, 성공한 DNA를 심고자 한다. 그러면서 이미 성공한 기존사업처럼 새로운 사업이 또 다른 성공사업의 클론(복제)이 되길 희망한다. 기존사업에서 성공한 노하우가 심어질 것으로 기대하는 것이다.
과거 어느 시점에서는 이 방법으로 수많은 회사들을 M&A로 통합하고 사업을 확대하고, 신사업을 추가로 확장해 가며 성장을 해왔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적어도 최근 수년간의 시간 안에서는 오히려 부대끼며 의도하지 않은 결과가 나오거나, 때로는 부작용으로 인해 곤경을 겪기도 하는 모습들이 자주 목격되고 있다.
기존 사업의 논리가 강하면 혁신은 '검증되지 않은 위험'으로 배척당한다.
혁신의 논리가 강하면 안정적 운영이 흔들린다.
그런데 이 두 가지를 하나의 시스템으로 관리하려니, 의도한 성과와 결과가 나오지 않거나 문제가 발생하는 것이다. 결국 어느 한쪽을 택해야 하는 상황에 내몰린다.
사피 바칼(Safi Bahcall)은 그의 저서 '룬샷'에서 이를 '프랜차이즈'와 '룬샷'의 관계로 설명한다.
프랜차이즈는 검증된 사업 모델을 효율적으로 운영하는 것으로 관리, 최적화, 안정성이 성공의 핵심이 된다.
반면 룬샷은 아직 검증되지 않은 혁명적 아이디어를 실험하는 것이다. 불확실성, 빠른 시도, 실패 허용이 본질이다. 따라서 이 둘이 조직 안에서 섞이기 어렵다는 것이다.
프랜차이즈의 관점에서 룬샷은 '위험한 도박'이고, 룬샷의 관점에서 프랜차이즈는 '혁신을 가로막는 관료주의'가 되는 것.
그러므로 두 조직을 구조적으로 분리하되, 서로를 지원하도록 설계하는 것이 필요하다.
즉, 혁신을 추구하는 팀과 안정적 운영을 담당하는 팀을 구조적으로 분리하되, 두 그룹이 서로를 지원하도록 설계하는 것이다.
어떻게 구조를 설계할 것인가
진정한 분리는 단순히 혁신팀을 만드는 것으로 끝나지 않는다.
많은 조직이 '껍데기만 분리하고 속은 그대로 둔' 실수를 반복한다. 가령, 혁신팀을 만들어놓고도 기존과 동일한 평가 기준, 보상 체계, 승인 라인을 적용하는 것이다.
진정한 분리는 그 팀이 작동하는 방식 자체를 다르게 설계하는 것이다.
의사결정 구조, 성과평가 기준, 보상체계, 리더십 스타일까지. 사업만 분리하는 것이 아니라, 그 사업을 뒷받침하는 모든 운영 시스템을 새로운 목적에 맞게 재설계해야 한다.
예를 들면, 삼성전자의 C-Lab이 성공한 이유가 바로 여기 있다고 볼 수 있다.
실패해도 본래 직무로 복귀할 수 있고, 아이디어가 검증되면 스타트업으로 독립할 수 있는 구조. 기존 조직의 승인 라인에서 자유로워 스타트업처럼 빠르게 의사결정하는 독립성. 이것이 진정한 구조적 분리인 것이다.
핵심은 완벽하게 분리하되, 서로를 지원하는 연결고리는 유지하는 것.
이것이 의도적인 분리를 통해 내부의 다양한 사업을 모두 성장시키고 싶은 4단계 조직의 제도적 변화인 것이다.
왜 이것이 필요한가
이 시기 조직의 가장 큰 딜레마 중 하나는 '높은 위계와 복잡한 승인 구조'이다.
조직이 커지면서 의사결정 라인이 길어지고, 수많은 규칙과 절차가 생겨난다. 이것은 공정성과 일관성을 위한 것이었지만, 결과적으로 속도와 유연성을 잃게 만든다.
여기서 규칙과 원칙의 차이를 이해하고, 이를 활용하는 것이 중요할 수 있다.
규칙은 과거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만들어진다.
"작년에 이런 문제가 있었으니, 앞으로는 이렇게 하지 말자"는 식이다. 규칙이 늘어날수록 조직은 과거에 묶이게 된다. 즉, 과거에서 경험했던 모든 상황을 교훈 삼아 미래를 예측하고 통제하려 하지만, 결국 예측하지 못한 새로운 상황 앞에서는 무력해진다.
게다가 모든 행동을 규칙으로 명문화하려는 시도는 사실상 불가능하며, 규칙이 쌓일수록 서로 상충하면서 오히려 경직을 만든다.
원칙은 미래를 향한다.
"우리가 추구하는 가치는 이것이다. 상황에 맞게 판단하라" 이것은 원칙이다.
원칙은 개인의 판단을 신뢰하고, 그 판단이 조직의 방향과 일치하도록 가이드를 제공한다.
완벽한 행동을 통제하는 대신, 방향에 맞게 지속적으로 가도록 의지를 부여한다.
행동을 통제하는 것이 아니라 행동을 하게 하는 마음과 의지를 움직이는 것으로써, 불확실한 미래의 모든 행동에 대해서 스스로 판단을 생성해 낼 포괄적 방향을 통제하는 것과 같다.
넷플릭스가 직원 100명에서 10,000명으로 성장하면서도 관료주의를 피할 수 있었던 비결도 바로 이러한 원칙에 있다.
연차 규정 대신 "성과만 달성하면 휴가는 자유롭게"라는 원칙.
수십 페이지 비용 규정 대신 "회사 이익을 위해 행동하라" 다섯 단어.
어떻게 적용할 것인가
원칙 중심 운영은 추상적인 구호가 아니라 구체적인 제도로도 만들 수 있다.
가령, 역할을 세부 업무 목록 대신 '추구해야 할 결과'로 정의한다. 의사결정 권한을 '누구의 승인'이 아니라 '무엇을 결정할 수 있는가'로 명확히 한다. 성과평가도 '절차 준수'가 아니라 '올바른 판단'을 기준으로 전환한다.
그리고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실패를 학습으로 전환하는 구조를 만드는 것이다. 예를 들어 구글의 '사후 분석(Postmortem)'처럼, 실패를 개인 책임이 아닌 조직 학습 자산으로 만드는 공식 프로세스를 마련하는 것과 같은 기능이 있어야 구성원들이 원칙에 따라 판단할 용기를 갖는다.
즉, 조직 안의 구성원을 믿고 신뢰하면서 동시에 통제의 불완전함을 의도적으로 받아들이는 것부터 시작해야 한다.
왜 이것이 필요한가
관료주의의 가장 안 좋은 현상 중 하나가 조직의 시선이 바깥의 '고객'에서 내부의 '우리'로 돌아오는 것이다.
가령 통제 강화형 조직에서는 고객 문제가 발생했을 때 '어떻게 해결할까?'보다 '어떤 절차를 따라야 하는가?'가 먼저 떠오를 수 있다.
자율성 추구형 조직은 전체 고객의 만족보다 '우리 팀의 성과 지표'에 집중하게 된다.
결국 구성원들은 고객을 위한 실질적 문제 해결보다는 내부 누군가에게 '우리는 잘하고 있다'를 보여주기 위한 보고에 더 많은 시간을 쏟게 될 수도 있다.
내부 시선만으로 보면 완벽해 보이는 조직.
하지만 이 내부 완벽함으로 무장된 폐쇄회로에 외부 시선, 즉 고객의 목소리를 의도적으로 침투시키면 그 완벽함에 균열이 생긴다.
"우리끼리는 완벽해"라는 폐쇄성에 구멍을 뚫는 것, 그것이 고객 중심으로의 전환이다.
과거 마이크로소프트의 Stack Ranking은 이를 보여주는 극명한 사례이다. 강제 상대평가 때문에 직원들은 동료의 성공을 자신의 실패로 인식했고, 회사 내부가 협력의 공간이 아니라 생존을 위한 전쟁터가 되었다.
내부 경쟁이 극단화될수록 고객은 시야에서 멀어졌다.
어떻게 만들 것인가
고객 중심을 단순한 구호가 아닌 구조로 만드는 방법은 다양하다. 하지만 그 원리를 보면 어렵지 않게 재구성을 통해 실행할 수 있다. 바로 구성원들의 합리적 선택이 자연스럽게 외부를 향하도록, 일하는 방식 자체를 재설계하는 것이다.
첫째, 일의 방향을 바꾼다.
이때 가장 강력한 방법은 성과관리와 평가 제도를 바꾸는 것이다.
조직 안에서 구성원들은 성과관리에 따라 일의 목적을 지향하고, 무엇에 의해 평가받는지가 대부분 행동에 영향을 준다.
만약 팀의 성과를 '우리 팀 매출'로만 평가하면, 구성원들의 시선은 당연히 팀 안에만 머물 것이다. 하지만 평가 기준에 '타 부서 협업', '고객 만족도', '전사적 기여'를 포함하면, 자연스럽게 시선이 밖을 향할 수밖에 없다.
사티아 나델라는 마이크로소프트의 성과평가 기준을 바꾸었다. 개인 성과만이 아니라 타 부서와의 협업, 다른 팀의 성과에 기여한 정도를 평가에 포함시켰다. 구호나 문화 캠페인이 아니라 구조 재설계의 결과였다. 평가 기준이 바뀌자 구성원들의 합리적 선택도 바뀐 것이다.
둘째, 조직에 의도적으로 균열을 낸다.
완벽하게 맞물린 조직에 외부 관점을 침투시키는 방법도 다양하다.
조직을 의도적으로 섞는 것. 오랜 기간 같은 팀에서 일하던 사람들을 다른 팀으로 로테이션하거나, 크로스펑셔널 프로젝트를 통해 다른 관점을 가진 사람들이 함께 일하게 만드는 것이다.
또는 새로운 인력을 전략적으로 투입하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앞에서 살펴본 "메기"의 역할이 바로 그것이다.
다른 산업, 다른 배경을 가진 사람이 들어오면 "우리는 원래 이렇게 했어"라는 관성에 자연스러운 질문이 생긴다.
그리고 실패를 학습으로 전환하는 장치를 만드는 것. 완벽함이 깨고 새로운 시도를 한 것을 의도적으로 인정하는 행위가 조직에 다른 결을 부여하는 계기가 될 수 있다. 예를 들어 "올해 최고의 실패 교훈상"을 시상하는 등의 것들이 실패를 숨기는 대신 공유하게 만드는 구조이면서, 완벽함에 균열을 주는 넛지가 될 것이다.
셋째, 정보의 흐름을 바꾼다.
"알아야 할 사람만 안다"는 원칙을 버린다.
고객 데이터와 피드백을 전 조직에 실시간 공유한다.
재무 데이터, 시장 동향, 경쟁사 분석을 투명하게 공개하여 업무와 관련한 사람들이 정보를 활용한 다른 관점을 제시할 수 있는 구조를 만드는 것이다.
정보가 일부 리더에게만 집중되면, 의사결정도 그들에게만 집중된다. 하지만 모든 구성원이 전체 그림을 볼 수 있을 때, 각자의 위치에서 고객 관점으로 판단하고 행동할 수 있게 된다.
이처럼 조직에서는 작은 방법부터 체제를 변경하는 것까지 다양한 방법으로 조직에 새로운 시도를 부여할 수 있다. 여기서 핵심은 "우리끼리는 완벽해"라는 내부 완벽함을 깨고, 외부 시선이라는 균열을 내는 것. 그것이 고객 중심으로의 전환이다.
“조직은 외부환경에 맞춰 적응하도록 설계되지만,
시간이 지나면 그 구조 자체가 관성으로 작용한다”
여기까지 읽으면서 혹시 이런 의문이 들지 않았는지?
"조직을 분리하고, 규칙을 줄이고, 내부 시선을 흩트린다... 그럼 조직이 제각각 흩어지는 것 아닌가?"
의도적 불완전함은 무질서가 아니어야 한다.
통제를 풀되, 방향은 잃지 않는 것.
톱니바퀴를 의도적으로 느슨하게 하되, 완전히 분해하는 것이 아니다.
바로 이 지점에서 거버넌스를 정리하는 것이 중요해진다.
거버넌스는 통제가 아니며, 완벽함을 추구하는 것도 아니다.
거버넌스는 서로 다른 논리로 작동하는 조직들이 각자의 자율성을 유지하면서도 하나의 방향으로 나아가게 하는 뼈대인 것으로 봐야 한다.
어느 그룹차원에서 외치는 "따로 또 같이."처럼,
각자 자율적으로 성장하되, 함께 시너지를 만들어내는 것. 이것이 거버넌스가 만드는 균형이다.
누가 무엇을 결정하는가?
어디까지 자율이고, 어디서부터 조정이 필요한가?
서로 다른 조직이 어떻게 대화하는가?
4단계에서 이 질문들에 대한 명확한 답이 없다면, 의도적 불완전함은 그저 혼란이 될 뿐이다.
거버넌스는 빈틈 있는 구조를 만드는 동시에, 그 빈틈이 무질서로 이어지지 않도록 하는 최소한의 질서이다.
모든 것에서 관성을 풀고 새로움과 변화를 심어 넣되, 이 부분은 4단계 시기에서 반드시 정립해야 함을 잊지 말아야 한다.
(이에 대해서는 이후 2권의 '조직의 격 - 거버넌스'에서 자세히 살펴볼 것이다.)
4단계의 관성을 극복하는 것은 의도적 설계를 통해서 가능했다.
구조를 재설계해서,
서로 다른 논리가 각자 작동할 수 있는 공간을 만들고,
과거를 고정하는 규칙에서 미래를 여는 원칙으로 전환하며,
내부가 아닌 고객을 향한 시선을 다시 만들어내야 한다.
그리고 이 모든 변화가 무질서가 아닌 새로운 질서로 작동하도록 거버넌스를 설계해야 한다.
이것들이 갖춰질 때, 비로소 조직은 성공의 관성에서 벗어나 다음 단계로 진화할 수 있다.
그리고 4단계를 성공적으로 극복한 조직이 이제 조직이 더 큰 비전을 꿈꾸게 되는 5단계로의 새로운 도전을 맞이하게 될 것이다.
독립성과 자율성을 되찾은 팀들을 더 큰 비전 아래 어떻게 다시 묶어 시너지를 창출할 것인가?
이 질문이 다음 이야기인 조직성장 5단계의 출발점이다.
Samuelson, W., & Zeckhauser, R. J. (1988). "Status quo bias in decision making." Journal of Risk and Uncertainty, 1(1), 7–59.
Kahneman, D., Knetsch, J. L., & Thaler, R. H. (1991). "Anomalies: The Endowment Effect, Loss Aversion, and Status Quo Bias." Journal of Economic Perspectives, 5(1), 193–206.
Jost, J. T., & Banaji, M. R. (1994). "The role of stereotyping in system-justification and the production of false consciousness." British Journal of Social Psychology, 33(1), 1–27.
Bahcall, S. (2019). Loonshots: How to Nurture the Crazy Ideas That Win Wars, Cure Diseases, and Transform Industries. St. Martin's Press.
헤이스팅스, R., & 마이어, E. (2020). 『규칙 없음: 넷플릭스, 자유와 책임의 문화』. RHK.
Nadella, S. (2017). Hit Refresh: The Quest to Rediscover Microsoft's Soul and Imagine a Better Future for Everyone. Harper Business.
Greiner, L. E. (1972). "Evolution and Revolution as Organizations Grow." Harvard Business Review, 50(4), 37–4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