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맘대로 되는 건 없다. 단지,

영화 '리틀 포레스트'

by 글쓰는 PD

“사람들은 뭘로 행복을 느끼면서 살아?”

대뜸 친구에게 던진 질문이다. 장염에 걸려 며칠을 죽만 먹다 보니 세상 그렇게 우울할 수가 없는 거다. 세상에 이렇게 맛있는 음식이 많은데 고작 죽 따위로 하루를 버티다니! 자극적인 음식만 먹어대니 그만 좀 괴롭히라고 몸이 시위하는 거였을까. 여하튼 배달음식과 인스턴트에 찌들어 있는 1인 가구의 삶은 슴슴한 죽으로는 그 공허감을 채울 수가 없었다.


그런데, 그런 나와 반대되는 이가 있었다. 인스턴트로는 허기를 채울 수 없었다는 혜원. 자극에 익숙해진 내게 영화 ‘리틀 포레스트’는 산다는 건 바로 이런 것이라고 가르쳐준다. 밭에서 갓 캐내고 시간과 정성을 들여 만들어낸 음식으로 눈길을 잡는 영화. 건강하고 예쁜 음식에 마음을 빼앗겼다가 이내 혜원을 비롯한 수수한 청년들의 삶에 동화되는 영화다.


영화 속 요리는 눈 속에 파묻힌 배추를 서걱서걱 베는 것에서 시작한다. 오래된 것을 베고 남은 것을 긁어모아 음식을 해먹은 후, 모든 것이 바닥나자 혜원은 스스로 작물을 심기 시작한다. 오랜 기억 속 엄마의 요리를 가이드 삼아 혜원만의 요리를 창조해가면서 말이다. 혜원과 혜원의 친구들이 심은 작물은 튼튼한 열매를 맺기도, 비바람에 떨어지기도 한다.


“세상에 내 맘대로 되는 건 운전이랑 이 머리카락 빠마하는 것밖에 없어”


예전 회사에서 새 프로그램 메인 선배와 첫 만남에서 그가 한 말이다. 그땐 그저 웃고 말았는데 곰곰이 생각해보니 곱씹어볼 만한 말이었다. 폭탄머리가 잘 어울리는 그는 일이 잘 안 풀릴 때마다 머리카락을 괴롭히는 모양이었고, 의도한 것 인진 모르겠으나 덕분에 그만의 스타일이 확고했다. 그는 뜻대로 되지 않는 세상에서 자신만의 작은 숨 쉴 구멍을 찾은 것이리라.


그렇다. 세상은 내 마음대로 되지 않는 것 투성이인데, 혜원이 ‘요리를 하는 행위’ 만큼은 원하는 것을 결과 값으로 내어준다. 신선한 재료를 쓰고 시간과 정성을 들인 만큼 건강하고 맛있는 음식을 얻을 수 있다. 배가 고파서 시골로 돌아왔다는 혜원은 아마도 음식 자체보다, 노력을 들인 만큼의 결과를 얻을 수 있는 요리를 통해 위안을 얻었을지도 모른다.


인간에게 가장 필요한 능력이야말로 자정능력이 아닐까. 스스로 정화하는 능력. 인생의 바닥을 쳐도 스스로 딛고 일어나 원래의 균형을 유지하는 능력. 치열하게 스스로를 위로할 방법을 찾고, 스스로 치유해 앞으로 나아가는 능력. 그 수단이 친구가 되었든, 음식이 되었든, 반려동물이 되었든, 일이 되었든 말이다.


그러니 혜원이 서울 생활을 뒤로하고 시골로 내려온 건 도망이 아니라 용기다. 어둡고 깊은 바다로 침잠하지 않고 한 템포 쉬어가기 위한 용기. 결국 혜원 엄마의 바람처럼 혜원은 그곳에 단단히 뿌리내리는 것에 성공했다. 스스로의 속도를 알고, 스스로가 지치는 지점을 알고 잠시 멈추어 충전한 후 발을 내딛는 혜원은 너무나도 단단한 청춘이다.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