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연출을 뽑아보면 잘할 것 같은 친구가 하루 만에 그만두기도 하고 오래 못 버틸 것 같았던 친구가 끝내 살아남기도 한다. 방송국의 얼굴들은 자주 바뀌고, 연차가 쌓일수록 새로운 인물에 무덤덤하다. 강한 자가 살아남는 게 아니라 살아남는 자가 강하다더니, 방송일을 하다 보면 그게 눈에 선명히 보인다. 개인차가 있긴 하겠지만 살아남는 이들의 공통점은 '일 자체에 재미'를 느꼈다는 것이다.
방송일은 '좋아서' 하지 않으면 오래 할 수 없는 일이다. 체력적으로, 정신적으로 노동의 강도가 매우 세고 노력한 만큼 시청률이 응답해주지도 않는다. 뜻밖의 자막 하나 때문에 욕을 먹기도 하고, 댓글 등의 피드백이 실시간으로 들어오기 때문에 일희일비하다간 멘탈이 와장창 무너지기 일쑤다. 때문에 일 자체가 좋지 않으면 오래 버티기가 힘들다.
그래서 좋은 점은 방송국에 있으면 '좋아서' 일하는 이들의 열정이 내 삶에 자극을 준다는 것이다. 걷다가 밥 먹다가 자다가도 아이템 생각에 벌떡벌떡 일어나는 이들. 서울에서 처음 발을 들여 6년을 일한 방송국은 타깃 시청층이 2049였다. 20대에서 40대까지 젊은 감각을 사로잡는 것이 목표. 이건 나만의 가설이긴 한데, 방송일을 하는 사람들 중에는 동안이 많다. 아마도 트렌디한 생각을 가지고, 트렌디한 것이 무엇인지 찾아다니고, 젊은 에너지로 일하기 때문이리라.
물론 늘 긴장감 속에 살기 때문에 이렇게 긴장하다 수명이 다하는 건 아닌가 섬뜩할 때도 있다. 나는 연차가 쌓일수록(책임감이 늘어날수록) 촬영장에 가는 것이 너무 두려웠다. 늘 불확실성에 대한 불안을 안고, 내 판단 하나에 많은 이들이 고생을 하고, 아무리 편집을 잘하더라도 촬영본이 엉망이면 심폐소생이 불가하기 때문이다. 도대체 촬영 전날의 불면은 연차가 더 쌓이면 없어지는 것인가 했더니, 20년 차 선배가 아직도 촬영 전날 잠을 설친단다. 아, 이 생은 그냥 이렇게 살아야 하는 것이구나.
젊게 사는 대신 단명할 것 같은 그 긴장감은 고통도, 즐거움도 모두 준다. 온 신경을 곤두세워 준비를 하는 만큼 성취감이 정말 크기 때문이다. 아직 출산을 해본 경험은 없지만 방송 하나하나가 내 배 아파 낳은 내 새끼들 같고 그렇다. 좀 더 많은 이들이 봐줬으면 좋겠고, 그저 예쁘게 봐줬으면 좋겠고, 그 방송으로 인해 누군가의 삶에 조금이라도 긍정적인 변화가 생겼으면 좋겠다. 시청률표의 작은 수치 하나, '잘 봤다'는 인사치레 같은 댓글 하나가 몇 주간의 밤샘과 근육통을 씻어주는 명약이다.
"일은 세 가지 중 하나만 충족돼도 버틸 수 있다.
돈을 많이 주거나, 마음 잘 맞는 동료가 있거나, 일 자체가 너무 좋거나."
지역 방송사에서 일할 때 들은 말 중 가장 오래 마음에 남았던 이야기다. 다행히도 나는 동료 복이 있었고, 일에 재미를 느껴 지금까지 살아남아있다. 그리고 연차가 쌓이고 조금씩 능력을 인정받으면서 돈도 따라왔다. 한편으로는 열정을 가지고 일하는 이들이 모여있는 환경에서 일할 수 있다는 건 참 복이구나 싶다. 열정과 작은 성취감이 모여 내 삶 전체의 만족도를 높여줄 테니 말이다.
어쨌거나 일단 아직도, 일이 재밌다.